창세기 21:01-21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언약의 집 :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광야를 들으시는 하나님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사라를 돌보시니 사라가 임신하여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낳아줍니다(1-7절). 아이가 자라 젖을 떼는 날 잔치를 베풀 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사라는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근심하나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씨가 될 것임을 확증하시며,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8-12절).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사자를 보내어 위로하시며 샘물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며 그를 광야의 사람으로 키우십니다(13-21절).

*

#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젖을 떼는 시기(보통 3세)는 유아 사망률이 높은 고대 사회에서 아이가 생존의 고비를 넘긴 것을 축하하는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또한 정실부인의 자녀와 첩의 자녀 사이의 상속권 갈등은 당시 누지(Nuzi) 토판이나 함무라비 법전 등에서도 다루어지는 실제적이고 법적인 문제였습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은 창세기 12장부터 이어진 ‘자손 언약’의 클라이맥스(이삭 출생)이자, 선택(이삭)과 유기(이스마엘)라는 구속사의 냉정한 분리가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택받지 못한 자(이스마엘)에게도 보편적인 은총과 돌보심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 이 본문은 아브라함 가정 내의 ‘수평적 갈등’(사라 vs 하갈/이스마엘)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갈등 속에서 일방적으로 명령만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쫓겨난 자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수평적 감수성), 그들의 생존을 책임지시는 세밀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

# 1-2절 하나님의 방문과 약속의 성취 :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가 끝난 시점에 말씀하신 그대로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은 우리의 조급함과 불가능한 현실을 넘어, 당신이 정하신 때(기한)에 찾아오셔서(파카드)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습니다.

.

본문은 '말씀하신 대로'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이 사건이 우연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돌보셨다'(히브리어 '파카드')는 단어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가의 삶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여 운명을 바꾸시는 행동을 뜻합니다. 송민원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시간(크로노스) 속에 침투하여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을 만드시는 수직적 개입입니다. 100세와 90세라는 생물학적 불가능성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조급함에 밀려 인간적인 방법(하갈)을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파카드'(돌보심)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그때까지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일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

# 3-4절 아브라함의 순종 - 이삭과 할례 : 약속의 성취 앞에서 언약의 표징(할례)을 행하며 하나님께 소유권을 드리는 믿음의 반응.

하나님은 선물을 주실 때 그 선물이 우상이 되지 않고 언약의 증거가 되도록, 철저한 말씀의 순종(8일 만의 할례)을 요구하시는 거룩한 분입니다.

.

아브라함은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이 지어주신 대로 '이삭'이라 하고, 난 지 8일 만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합니다.

.

아브라함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16장)와 달리, 그는 철저히 하나님이 17장에서 명령하신 규례를 따릅니다. 이름(이삭=웃음)과 할례(언약의 표징)는 이 아이가 아브라함의 사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확증하는 행위입니다. 가장 기쁜 순간에 가장 엄숙한 예식을 행함으로써, 그는 기쁨을 방종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거룩으로 승화시킵니다.

.

큰 성공이나 오랫동안 기도했던 응답을 받았을 때가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때일 수 있습니다. 성취의 기쁨에 취해 하나님을 잊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성공하고 자녀가 잘될 때, 오히려 영적인 '할례'를 행하여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성공 이후의 태도가 그 사람의 진짜 신앙입니다.

*

# 5-7절 사라의 웃음 - 비웃음이 기쁨으로 : 인간의 냉소와 슬픔을 참된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시는 반전의 은혜.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라고 반문하던 우리의 씁쓸한 비웃음(18장)을 "누가 알았으리요"라는 감탄의 웃음으로 바꾸시는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

사라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자식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알았겠느냐며 감격해합니다.

.

창세기 18장에서 사라의 웃음은 '냉소(비웃음)'였습니다.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라며 자신의 늙음을 한탄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냉소를 참된 '환희의 웃음(이삭)'으로 바꾸셨습니다. 수평적 읽기로 볼 때, 사라의 웃음은 "듣는 자가 다 함께 웃으리로다"라는 고백처럼, 개인의 기쁨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수평적 간증'이 됩니다. 그녀의 마른 가슴에 젖이 도는 것은 생명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

지금 내 입술에 있는 웃음은 어떤 종류입니까? 세상을 향한 냉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의 찬양입니까? 우리 삶에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들이 풀릴 때, 우리의 탄식은 변하여 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를 씻기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웃과 함께 웃게 하시는 '웃음의 근원'이십니다.

*

# 8-12절 갈등과 분리 - 근심하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안 : 언약의 계승을 위해 인간적인 정(情)을 끊어내는 아픔과 하나님의 주권적 정리.

하나님은 가정 내의 복잡한 갈등 속에서 인간의 근심을 아시지만, 구속사의 대의를 위해 단호한 결단(떠나보냄)을 명하시되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

이삭이 젖을 뗄 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립니다. 사라는 분노하여 그들을 내쫓으라 하고, 아브라함은 근심합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말을 들으라 하시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씨가 될 것이지만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

여기서 '놀리다'(메자헤크)는 '이삭'(이츠하크)과 어원이 같은 언어유희로, 단순한 장난을 넘어 상속권을 위협하는 행위 혹은 희롱을 암시합니다. 송민원 박사의 관점에서, 이 장면은 언약 가정 내의 적나라한 '수평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로서의 정(Humanity)과 언약적 결단(Divinity)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하나님은 이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분리'를 명하십니다. 이는 매정함이 아니라 구속사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동시에 이스마엘을 독립적인 한 민족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적인 정(情)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결단해야 할 때가 옵니다. 교회 내의 갈등이나 가정 내의 종교적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때로 아픈 이별이나 분리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고 떠나보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해결책이 실패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인 정리가 시작됩니다.

*

# 13-21절 광야의 하갈과 이스마엘 - 들으시는 하나님 : 버림받은 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치 않으시고 살 길(샘물)을 여시는 긍휼.

하나님은 언약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약자들의 신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며, 사막 한가운데서도 생명을 보존하시는 '엘 로이(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방황합니다. 하갈이 아이의 죽음을 차마 보지 못해 소리 내어 울 때, 하나님이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천사가 하갈을 위로하고 눈을 밝혀 샘물을 찾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셨습니다.

.

이 단락은 하나님의 시선이 선택받은 이삭에게만 머물지 않고, 버림받은 이스마엘에게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송민원 식의 수평적 읽기는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는 대목에 주목합니다. 하갈도 울었지만, 하나님은 약하고 작은 자인 아이(이스마엘=하나님이 들으심)의 신음 소리에 반응하십니다. 19절에 하갈의 '눈을 밝히셨다'는 표현은, 절망에 빠지면 바로 옆에 있는 해결책(샘물)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그들과 '함께 계시며'(20절) 그들을 살게 하셨습니다.

.

우리 사회에는 이스마엘처럼 주류에서 밀려나고, 구조조정 당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물 한 가죽부대"(인간의 대책)가 떨어진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작은 신음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귀와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광야 같은 인생길, 자원(돈, 건강, 인맥)이 다 떨어진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샘물을 발견할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 밖 광야에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기도 하심을 기억하십시오.

*

# 거둠의 기도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 

그리고 고통받는 자들의 신음을 들으시는 위로의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백 세의 시간에 찾아오셔서, 

약속하신 대로 생명을 주시고 

사라의 비웃음을 참된 웃음으로 바꾸어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 삶의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기다리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 때로는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처럼 풀리지 않는 아픔과 관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정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고민할 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또한 우리 눈을 밝혀 주셔서, 

내 힘과 자원이 다 떨어진 것 같은 광야에서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의 샘물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 

하갈과 이스마엘처럼 밀려난 이웃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들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선택받은 자의 교만이 아니라, 

빚진 자의 겸손으로 세상을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창세기 21:01-21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언약의 집 :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광야를 들으시는 하나님 new 평화의길벗 2026.01.29 0
978 창세기 20:01-18 두려움의 반복 속에 임한 보호 : 닫힌 태를 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부끄러운 선지자 평화의길벗 2026.01.28 2
977 창세기 19:24-38 뒤돌아보는 욕망과 굴 속의 비극 - 소돔은 불탔으나 소돔의 윤리는 남았다 평화의길벗 2026.01.26 2
976 창세기 19:24-38 뒤돌아보는 욕망과 굴 속의 비극 - 소돔은 불탔으나 소돔의 윤리는 남았다 평화의길벗 2026.01.26 2
975 창세기 19:12-23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끄시는 '강권적인 자비' : 심판의 아침에 드러난 구원의 본질 평화의길벗 2026.01.25 5
974 창세기 19:01-11 문(Door)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상 : 환대의 식탁과 폭력의 거리 평화의길벗 2026.01.25 2
973 창세기 18:16-33 질문하는 인간, 응답하시는 하나님 : 공의와 긍휼 사이에서 피어난 거룩한 중보 평화의길벗 2026.01.24 2
972 창세기 18:01-15 한낮의 정적을 깨우는 방문 : 환대(Hospitality) 속에 임한 약속과 웃음의 회복 평화의길벗 2026.01.23 5
971 창세기 17:01-27 : 몸에 새긴 언약, 한 사람을 넘어 열방의 아버지가 되는 길 평화의길벗 2026.01.22 5
970 창세기 16:01-16 엇갈린 욕망의 시선, 그 사각지대를 찾아오시는 ‘살피시는 하나님’의 질문 평화의길벗 2026.01.21 3
969 창세기 15:01-21 질문하는 인간, 응답하는 횃불: 어둠을 가르는 언약의 신비 평화의길벗 2026.01.20 3
968 창세기 14:01-24 : 제국의 전쟁터에서 형제됨을 지키는 힘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소유한 자의 자유 평화의길벗 2026.01.19 3
967 창세기 13:01-18 욕망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시작되는 평화와 약속의 지평 평화의길벗 2026.01.18 5
966 창세기 12:10-20 생존의 본능이 만든 비겁한 침묵, 그리고 세상의 책망을 통한 하나님의 역설적 보호 평화의길벗 2026.01.17 4
965 창세기 11:31-12:9 질문을 품고 걷는 순례자의 길 평화의길벗 2026.01.16 4
964 창세기 11:31-12:9 멈춰 선 아버지의 자리에서 떠나, 약속의 땅으로 걷는 질문과 응답의 여정 평화의길벗 2026.01.16 5
963 창세기 11:10-30 바벨의 소음을 뚫고 흐르는 침묵의 은혜, 그리고 불가능의 끝에서 시작되는 약속 평화의길벗 2026.01.15 9
962 창세기 11:01-09 멈춰 선 제국의 욕망, 다시 흐르게 하신 수평의 은혜 평화의길벗 2026.01.14 5
961 창세기 10:01-32 흩어짐을 통해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의 파노라마 평화의길벗 2026.01.13 8
960 창세기 09:18-29 덮음의 신비와 노출의 비극 : 관계의 정원에서 다시 길을 묻다 평화의길벗 2026.01.12 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9 Next
/ 4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