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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24-38 소금기둥 뒤에 남겨진 슬픈 자화상 - 수치스러운 역사도 안으시는 하나님

.

신앙은 과거의 화려했던 기억이 굳어진 소금기둥을 지나, 두려움의 동굴 속에서도 끝내 생명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

검은 연기가 치솟는 아침입니다. 화려했던 문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준엄했고, 그 파국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목격합니다. 그런데 이 비극의 한복판에 기이한 조형물 하나가 서 있습니다. 바로 뒤를 돌아보다 굳어버린 '소금기둥', 롯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을까요? 송민원 목사는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의 맥락에서 이 '돌아봄'을 과거에 대한 집착, 즉 자신을 지탱해주던 익숙한 세계와의 결별을 거부한 몸짓으로 읽어냅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처럼, 우리는 파괴된 잔해를 응시하며 뒷걸음질 칩니다. 소돔은 죄악의 도성이었지만, 동시에 롯의 가족에게는 안락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빈손으로 떠나는 일은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공포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타락한 도시가 아니라, 두고 온 자신의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주 뒤를 돌아봅니다. "왕년에는 좋았는데..." 하며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를 묵상하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신앙은 이 '기억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과거가 굳어버린 소금기둥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낯선 미래를 향해 등을 돌릴 용기가 필요합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롯과 두 딸의 행방은 더욱 처참합니다. 롯은 소알 성에 머무르기를 두려워하여 산으로 들어가 굴에 거합니다(창 19:30).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섰던 그 산이 아니라, 단절과 공포의 공간인 '동굴'로 숨어든 것입니다. 그 어둡고 습한 곳에서 끔찍한 근친상간의 비극이 벌어집니다. 딸들은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에게 들어올 남자가 없다"며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고 동침합니다. 이는 홍수 이후 노아의 실수(술과 벌거벗음)를 연상케 하는 타락의 재현입니다.

송민원 목사는 이 지점에서 뼈아픈 통찰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삭)을 기다렸지만, 롯의 딸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존의 씨앗(모압, 암몬)을 만들어냈습니다. 믿음이 사라진 자리는 이토록 비루한 '생존 본능'만이 남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려 할 때, 그 결과는 윤리의 붕괴와 괴물 같은 역사로 귀결될 뿐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실패한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는 벗님들.

창세기 19장의 결말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수치스럽습니다. 롯은 실패한 가장이요, 도덕적으로 파산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부끄러운 역사를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왜일까요? 놀랍게도 이 불륜의 씨앗인 모압의 후손에서 훗날 '룻'이 태어나고, 그녀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역사를 망가뜨리고 스스로 동굴 속에 갇히지만, 하나님은 그 오물 뒤집어쓴 역사조차 들어 올리셔서 구원의 재료로 삼으십니다. 롯의 이야기는 "그러니 막 살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너희가 망쳐놓은 그 자리에서도 나는 역사를 이어간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언입니다.

우리는 롯처럼 두려움에 떨며 동굴 속에 숨을 때가 있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과거에 매여 있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더 큽니다. 비루한 동굴의 어둠 속에서도 기어이 생명의 빛을 길어 올리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시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9:24-38 뒤를 돌아보는 슬픈 습관과 두려움의 동굴, 그 너머의 은총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굳어버린 우리의 마음과 두려움 때문에 숨어버린 절망의 동굴 속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실패한 우리 인생을 다시금 거룩한 역사로 엮어 가시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

샬롬! 바람 끝에 매달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오늘 하루도 치열한 삶의 현장을 살아내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은 때로 감당하기 벅찬 혼돈과 비탄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망연자실하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19장의 후반부는 화려했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그 매캐한 연기 자욱한 폐허 위에서 시작됩니다.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처럼 쏟아질 때, 롯의 가족은 급히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그 긴박한 탈출의 와중에 비극이 일어납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창 19:26). 송민원 교수는 이 장면을 두고 롯의 아내가 신적인 세계와 인간 세계의 경계, 즉 ‘금기’를 범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엄위한 순간에 인간적인 미련으로 그 경계를 넘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의 그 행동은 우리네 인간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이기주 작가는 “가장 소중한 것이 가장 멀리 떠나가기에” 이별은 늘 상처를 남긴다고 했습니다. 롯의 아내를 붙잡은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두고 온 삶의 터전, 익숙했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던 것들과의 작별이 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허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과거와 결별하지 못해 현재를 잃어버리고, 결국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롯의 행보는 어떻습니까? 그는 소알 성에 머무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굴에 거주합니다(창 19:30). 소돔이라는 거대한 문명 도시의 법관(재판관) 역할을 했던 그가, 이제는 세상과 단절된 채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웅크린 ‘두려움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데 있다”고 했지만, 롯은 자신의 비참함에 압도되어 무기력증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동굴 속에서 일어난 근친상간의 비극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잠식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참담한 ‘막장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위대함은 인간의 이러한 적나라한 실패를 감추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롯의 딸들을 통해 태어난 모압과 암몬은 훗날 이스라엘의 적대자가 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부끄러운 역사의 줄기를 끊어내지 않으십니다. 훗날 모압 여인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도덕적 실패와 수치스러운 과거, 심지어 동굴 속에 숨어버린 듯한 절망적인 상황조차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재료로 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를 두고 하나님은 우리의 오물 같은 현실 속에 풍덩 뛰어드셔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동고(同苦)의 사랑’을 지닌 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이 깊은 섭리를 이해하고, 소금 기둥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녹여 다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박대영 목사님은 묵상을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는 일”, 즉 “생각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또한 묵상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인 동시에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며, 낯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세워 나의 욕망과 두려움을 직면하는 과정입니다. 굴속에 숨어 있던 롯에게 묵상이 있었다면, 그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과거의 상처 때문에 뒤를 돌아보며 서성이고 계십니까?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캄캄한 동굴 속에 숨어 계십니까? 괜찮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완벽한 의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당신의 손을 잡고 일어서려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의 비루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됩니다.

이제 익숙한 절망과 작별하고, 말씀의 빛을 따라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비록 그 걸음이 비틀거릴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그 서툰 몸짓을 통해 ‘회복’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이는 ‘킨츠기(Kintsugi)’의 황금과 같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버려 쓸모없어 보이는 우리 인생의 파편들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이라는 황금으로 다시 이어 붙이십니다. 그리하여 그 깨어졌던 흔적은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그 어떤 온전한 그릇보다 더 독창적이고 영롱한 빛을 내는 ‘상처 입은 치유의 무늬’가 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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