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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24-38 뒤돌아보는 욕망과 굴 속의 비극 - 소돔은 불탔으나 소돔의 윤리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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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거주하는 백성을 다 멸하십니다(24-25절). 도망치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됩니다(26절). 아침 일찍 일어난 아브라함은 그 지역의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처럼 치솟는 것을 목격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셨다고 증언합니다(27-29절). 이후 롯은 소알을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굴에 거주합니다. 그곳에서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을 낳는 근친상간의 비극을 저지릅니다(30-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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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소돔과 고모라는 물질적 풍요를 누렸으나, 나그네를 학대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의 대명사였습니다. 롯의 딸들이 아버지를 통해 후손을 잇으려 한 행위는 당시 근동의 도덕관으로도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그들은 소돔의 타락한 윤리관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이 본문은 심판(소돔의 멸망)과 구원(롯의 탈출)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29절)라는 표현은 구원이 당사자의 공로가 아닌 중보자의 언약적 관계에 기초함을 보여줍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 본문은 롯이 소돔을 물리적으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과 가정 안에 자리 잡은 ‘소돔의 가치관(수평적 관계의 왜곡)’이 어떻게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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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5절 하늘에서 내린 불과 소멸된 문명 : 죄악이 관영한 도시에 임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과 인간 문명의 허무한 종말.

하나님은 인간이 쌓아 올린 죄악의 도성(소돔)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으시고, 위로부터의 개입(유황과 불)을 통해 창조 질서를 거스른 세상을 정화하시는 공의의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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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사 성들과 온 들과 거주하는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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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라는 표현은 이 재앙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임을 강조합니다. '엎어 멸하셨다(하파크)'는 단어는 뒤집어엎다는 뜻으로, 창조 질서를 역행한 소돔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그 도시의 존재 기반 자체를 뒤집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송민원 박사의 관점에서 볼 때, 소돔은 인간끼리의 수평적 관계(환대)가 깨지고 폭력과 착취가 난무하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반(反)창조적' 질서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소멸시키십니다. 인간이 자랑하던 문명, 풍요로운 들판(13:10)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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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화려한 번영 뒤에 숨겨진 착취와 음란, 생명 경시 풍조는 현대판 소돔을 연상케 합니다. 부동산과 주식, 성공이라는 '땅에 난 것'들에 집착하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타 없어질 공력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심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엄중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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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절 소금 기둥이 된 미련 : 구원의 길에서 세상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멈춰버린 이중적인 신앙의 비극.

하나님은 구원의 여정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통해, 과거의 죄악된 습관과 세상의 안락함과 완전히 단절할 것을 요구하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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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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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엄중한 경고(17절)에도 불구하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두고 온 재물과 삶의 터전에 대한 깊은 '미련'과 '집착'이었습니다. 수평적 읽기로 볼 때, 그녀는 몸은 소돔을 떠났으나 마음(가치관, 욕망)은 여전히 소돔의 풍요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성도들에게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고 경고하셨습니다. 소금 기둥은 생명력을 잃고 굳어버린 상태, 즉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영원히 멈춰버린 신앙인의 비극적인 기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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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 과거의 즐거움, 안락했던 죄의 습관을 그리워하며 뒤를 돌아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때가 좋았는데"라며 세상의 방식에 미련을 두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소금 기둥처럼 굳어지고 성장의 동력을 잃게 됩니다. 과거의 실패나 세상의 화려함에 시선을 고정하지 말고,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끊어내야 할 관계, 버려야 할 습관을 단호히 정리하는 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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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9절 연기 속에서 기억된 중보자 : 심판의 현장 한가운데서 언약의 당사자(아브라함)를 기억하시어 롯을 건져내시는 신실한 은혜.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며, 의인의 간구와 기도를 기억하사(자카르) 연약한 자를 심판의 자리에서 내보내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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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소돔을 바라보니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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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심판의 현장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그는 소돔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나(18장), 도시는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29절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자카르)"라는 구절은 창세기의 핵심 신학 중 하나입니다. 롯은 스스로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중보자의 기도와 언약 덕분에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수평적 관계(아브라함과 롯)가 수직적 구원(하나님의 개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영적 우산 아래서 보호받은 수혜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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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구원받고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은 누군가의 눈물 어린 중보기도 덕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님, 배우자, 혹은 교회의 지체들이 나를 위해 기도했기에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아브라함'이 되어야 합니다. 멸망해가는 세상과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우리가 깨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사' 그들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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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8절 굴 속의 근친상간과 비뚤어진 미래 :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두려움과 세상(소돔)의 방식이 낳은 왜곡된 생존 본능.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방법(술과 동침)으로 미래(후손)를 열어가려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지 침묵 속에 지켜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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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굴에 거주합니다. 두 딸은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며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각각 모압과 벤암미(암몬)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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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은 소알로 가겠다고 고집했으나(20절), 결국 그곳도 두려워하여 굴(폐쇄된 공간)로 들어갑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안한 심리를 보여줍니다. 송민원 박사의 관점에서, 롯의 딸들의 행동은 '소돔의 윤리'가 그들 내면에 깊이 내면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세상의 도리"를 운운하지만, 사실은 가장 비윤리적인 근친상간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뜻을 묻지 않고, 인간적인 생존 본능과 편법으로 대를 이으려 했습니다.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은 노아의 사건(9장)을 연상시키며, 이는 영적 권위가 무너진 가정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태어난 모압과 암몬은 훗날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원수가 됩니다. 소돔은 불탔으나, 롯의 가정 안에 남은 '소돔의 죄성'은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잉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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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죄악된 장소를 떠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소돔'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롯의 딸들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기보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방법(술, 성)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가정과 다음 세대가 세상의 가치관(성공 지상주의, 쾌락주의)에 물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어떤 영적 유산을 물려주고 있습니까? 롯처럼 영적 권위를 잃고 세상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가장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굴 속과 같은 고립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꾀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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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되 

택한 백성을 끝까지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유황불로 심판받은 소돔의 멸망을 보며, 

죄악 된 세상의 화려함이 결국 한줌의 재가 될 것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어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저희 또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안락함과 욕망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회개합니다.

주님, 롯이 구원받은 것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도 이 시대를 위한 아브라함이 되어, 

멸망해가는 영혼들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롯의 가정처럼 몸은 구원받았으나 

마음은 여전히 소돔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과 자녀들의 내면에 뿌리 박힌 

세상의 가치관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고, 

거룩하고 정결한 믿음의 가문을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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