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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12-23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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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심판의 긴박함 속에서도 미련 때문에 머뭇거리는 우리를, 강권적으로 이끌어 내시는 하나님의 다급한 사랑에 붙들리는 사건입니다.

*

동이 트기 전, 세상에서 가장 긴박한 시간이 소돔 땅에 흐르고 있습니다. 멸망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임박한 파국을 알리는 롯의 경고는 사위들에게 그저 ‘농담’(창 19:14)처럼 들립니다.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그만큼 현실의 안락함에 깊이 취해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영혼이 무너져 내리는 징조들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우리는 “설마 오늘 무슨 일이 있겠어?”라며 관성적인 일상의 단잠을 자려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가장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장면은 사위들의 비웃음이 아닙니다. 바로 당사자인 롯의 태도입니다. 천사들이 동틀 때에 재촉하여 “일어나라”고 하는데도, 성경은 “롯이 지체하매”(창 19:16)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지체하다(mahah)’는 미련이 남아 머뭇거린다는 뜻입니다. 롯은 알고 있었습니다. 떠나야 산다는 것을. 하지만 그의 발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소돔에서 쌓아온 자신의 지위, 재산, 익숙한 관계들을 두고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약한 우리 인간의 실존입니다. 버려야 할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떠나야 할 자리인 줄 알면서도 주저앉아 뭉기적거리는 그 우유부단함 말입니다.

송민원 목사는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의 맥락에서 이 장면을 인간의 의지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으로 해석합니다. 롯이 결단하고 일어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창 19:16)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주목하십시오. 구원은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손을 잡아채는 것입니다. 멸망의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우리를 건지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를 구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팔목을 거칠게 낚아채십니다. 롯에게 닥친 구원은 고상한 초대가 아니라, 거의 ‘연행’에 가까운 강제적 이끌림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결단 앞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벗님들.

우리는 자주 자신의 믿음 없음을 자책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유부단할까?”, “왜 나는 끊어낼 것을 끊어내지 못할까?”라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롯이 산으로 도망가라는 명령조차 감당하지 못해 “내 힘으로는 도망할 수 없습니다. 저기 작은 성읍(소알)으로 가게 해주십시오”라고 칭얼거릴 때조차, 하나님은 그 옹색한 타협안까지 들어주십니다. “그리로는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창 19:21-22).

하나님은 우리의 영웅적인 믿음을 기대하며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비루한 머뭇거림, 우리의 연약한 타협, 심지어 우리의 두려움까지도 껴안으시고 기어이 생명의 자리로 옮겨 놓으시는 분입니다. 신앙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나를 질질 끌고라도 나가시는 그 하나님의 다급하고도 끈질긴 사랑에 내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혹시 세상의 미련 때문에 머뭇거리고 계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미 주님의 손이 여러분의 손을 꽉 잡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미련보다 주님의 자비가 더 큽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9:12-23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끄시는 다급한 사랑, 그 불가항력적 은총

.

익숙한 욕망의 터전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나의 결단이나 의지가 아니라,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우리의 손을 낚아채듯 이끄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입니다.

*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절, 저마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오늘이라는 시간의 파고를 넘어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때로 견고한 성처럼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19장의 아침은 바로 그 위태로움이 현실이 되는 긴박한 순간입니다.

동틀 무렵, 천사들은 롯을 재촉합니다.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창 19:15). 멸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롯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갑니다. 그는 “지체”합니다(창 19:16). 여기서 ‘지체하다(마하, mahah)’는 망설이며 머뭇거린다는 뜻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불과 몇 시간 전, 롯은 낯선 나그네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 폭도들과 맞섰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송민원 교수는 롯이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건 ‘환대의 모험’을 감행했던 인물임을 지적합니다. 그랬던 그가 왜 정작 자신이 탈출해야 할 순간에는 발을 떼지 못한 것일까요?

아마도 소돔은 그에게 단순히 죄악의 도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곳은 그의 일상이 녹아 있는 삶의 터전이었고, 그가 쌓아온 성취와 안락함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이기주 작가는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날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롯을 주저앉힌 것은 소돔의 죄악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누렸던 익숙한 행복과 안락함에 대한 미련이었을지 모릅니다. 우리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이 두려워 죄악의 자리에 머뭇거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동일 변호사는 “삶이란 내가 원하지 않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물려받은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롯에게 닥친 심판은 원치 않는 재난이었고, 그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으로 이끌어 내니”(창 19:16).

롯이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아니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그의 손을 ‘잡아끌어(seize)’ 내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장면의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6).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결단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심지어 뒷걸음질 치고 싶어 할 때조차,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친 손길로 잡아채서라도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급박하고도 뜨거운 사랑 덕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내면에 깊이 새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박대영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는 일”, 즉 “생각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묵상은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처럼 세속적 가치와 적당히 타협하며 안주하려는 내 자아를 정직하게 응시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묵상은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는 혁명”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실은 불타 없어질 헛된 것임을 깨닫고,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감각하게 됩니다.

롯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명령에도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며 작은 성읍 ‘소알’로 가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창 19:18-20). 끝까지 자신의 판단과 안위를 고집하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요청조차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기보다, 어떻게든 우리를 살려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신 분 같아 보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를 두고 하나님은 우리의 비틀거림을 죄로 규정하여 내치시는 분이 아니라, “비틀거려도 괜찮아, 내가 너를 붙들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뒤에서 지켜보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지금 신앙의 회의가 들거나, 삶의 위기 앞에서 머뭇거리고 계십니까? 더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나의 어떠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불 타는 소돔에서 롯을 끌어내신 그 손길이, 오늘 혼돈과 공허 속에서 방황하는 여러분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계십니다.

이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이끄심에 몸을 맡기십시오. 익숙한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비록 우리가 가는 곳이 화려한 성읍이 아니라 초라한 ‘소알’일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그곳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됩니다. 머뭇거리는 우리를 기어이 구원해 내시는 그 끈질긴 사랑을 의지하여, 다시 희망의 순례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위험한 찻길로 뛰어드려는 아이의 손목을 낚아채는 부모의 ‘다급한 악력(握力)’과 같습니다. 아이는 손목이 아프다고, 왜 못 가게 하냐고 투정을 부리며 울지 모르지만, 그 거칠고 강한 힘이야말로 아이를 죽음에서 건져내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아픔을 느낄 만큼 강하게 우리를 이끄시는 힘,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살게 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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