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12-23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끄시는 '강권적인 자비' : 심판의 아침에 드러난 구원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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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의 죄악을 확인한 천사들은 롯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성을 떠나라고 경고합니다. 롯은 사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그들은 농담으로 여깁니다(12-14절). 동틀 때에 롯이 여전히 지체하자, 천사들이 롯과 아내와 딸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성 밖으로 대피시킵니다. 이는 여호와의 자비하심 때문이었습니다(15-17절). 롯은 산까지 갈 수 없다고 호소하며 작은 성읍 '소알'로 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십니다(18-22절).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 해가 돋았고, 곧이어 심판이 시작됩니다(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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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성문은 사회적, 법적 중심지였습니다. 롯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가 소돔 사회에 깊이 동화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농담으로 여겼다'는 반응은 소돔 사회가 진리와 경고를 수용할 능력을 상실한, 영적 감각이 마비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인 10명이 있다면 멸하지 않으시리이다")와 19장의 소돔 멸망은 긴밀히 연결됩니다. 소돔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이며, 롯의 구원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헤세드)의 결과입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 롯은 18장의 아브라함과 달리 사회적 영향력(수평적 리더십)을 상실했습니다. 그의 말은 사위들에게조차 먹히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롯의 '머뭇거림'과 하나님의 '잡아끄심'을 대조하며, 구원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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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절 경고와 조롱 - 상실된 영적 권위 : 세상의 쾌락에 취해 심판의 경고를 농담으로 치부하는 시대 정신과 무력한 신앙인의 말.
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이 멸망하기 전 반드시 피할 길을 내어 주시지만, 세상은 그 경고를 비웃고 하나님은 그 비웃음을 심판의 증거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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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롯에게 "네게 속한 자"를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롯이 나가서 사위 될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떠나라"고 했으나, 그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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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의 수평적 읽기 관점에서 볼 때, 이 장면은 '관계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롯은 소돔 성문에 앉을 만큼(19:1) 성공한 이민자였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예비 사위)에게조차 신뢰받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영적 무게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담으로 여겼다'(차하크)는 18장에서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웃었던' 단어와 같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웃음이 연약함의 웃음이었다면, 사위들의 웃음은 멸망을 자초하는 비웃음입니다. 롯은 세상 속에서 살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거룩한 영향력은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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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이 롯과 같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세요, 심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이를 '농담'이나 '혐오 발언' 쯤으로 여깁니다. 이는 세상이 악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롯처럼 소돔(세상)의 가치관에 동화되어 살면서 입으로만 복음을 말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나의 말에 영적 무게가 실리려면, 삶의 구별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의 자녀들이, 나의 동료들이 나의 신앙 권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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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절 지체함과 이끄심 - 불가항력적 은혜 :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머뭇거리는 자의 손을 강제로 잡아끌어 생명의 길로 옮기시는 구원의 긴박성.
하나님은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지체하는 연약한 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직접 손을 잡아 성 밖으로 끌어내시는 '강권적인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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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때에 천사가 재촉하지만 롯은 '지체'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천사)이 롯의 손과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둡니다. 성경은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그 후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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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지체하매(마하)'라는 단어는 미련과 우유부단을 의미합니다. 그는 심판을 알았지만, 소돔에 쌓아둔 재산과 관계, 안락함을 포기하기 힘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때 구원의 주체는 롯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으로 바뀝니다. '손을 잡아(하자크)'라는 표현은 '움켜쥐다, 강하게 붙들다'는 뜻입니다. 송민원 식 해석에 따르면,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면서까지 개입하시는 '수직적 개입'의 절정입니다. 롯은 스스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거의 '질질 끌려나와'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은혜(헤세드)입니다.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히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돔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단절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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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죄악 된 습관이나 안주하는 삶에서 떠나야 할 때 '지체'합니다. 술, 도박, 음란, 게으름, 혹은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미련 때문에 머뭇거립니다. 그때 하나님은 때로 질병, 사업 실패, 관계의 깨어짐 같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손을 잡아 세상 밖으로 끌어내십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지나고 보면 멸망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손 잡으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이 억지로 내 손을 잡아끌고 계시지 않습니까? 버티지 말고 그 이끄심에 순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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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1절 롯의 타협과 하나님의 허용 - 소알 : 산으로 가라는 완전한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을 배려하여 차선책(소알)을 허락하시는 긍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꾸짖기보다, 우리의 두려움과 한계(작은 성읍)를 용납하시며 어떻게든 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시는 인격적인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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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은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며 산까지 도망하다가 재앙을 만날까 두렵다고 합니다. 대신 가까운 작은 성읍(소알)으로 도망하게 해달라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천사는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이라며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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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기도는 아브라함의 기도와 대조됩니다. 아브라함은 타인을 위해 기도했지만, 롯은 철저히 자신의 안위와 편의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는 "산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최선(A)을 거부하고, "작은 성읍이라도 가게 해 달라"는 차선(B)을 요구합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이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기도조차 들어주신다는 점입니다. 송민원 박사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수평적 대화'를 통해 계획을 수정해 주시는 유연한 분입니다. '소알(작다)'은 롯의 작은 믿음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그 작은 믿음조차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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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이 늘 산을 옮길 만큼 강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 저는 저기까지는 못 가겠습니다. 여기까지만 봐주세요"라고 떼를 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드리는 타협적인 기도라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에 맞춰 피할 길을 예비해주십니다. 다만, 언제까지 '소알'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결국 롯은 소알도 두려워 굴로 들어갑니다(30절). 믿음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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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절 한 사람을 위한 심판의 유보 : 의인 한 사람이 안전한 곳에 이르기까지 심판을 멈추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우선순위.
하나님은 심판보다 구원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며, 택한 백성 한 사람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능력을 제어하시는 사랑의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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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고 말합니다.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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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는 선언은 충격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능해지는 순간입니다. 왜입니까? 언약 백성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심판의 스케줄이 한 사람의 안전 때문에 지연됩니다. 이것은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겠다"는 공의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는 타락한 도시 전체의 운명보다 내 사랑하는 자녀 한 명의 생명이 더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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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사람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가정이, 직장이, 이 나라가 아직 평안한 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의인 한 사람'인 당신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안전한 곳에 이르기까지 심판을 유보하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자존감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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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절 일상의 아침과 임박한 파국 : 아무 일 없는 듯 떠오르는 태양 아래 닥쳐온 종말의 돌발성.
하나님은 일상의 평온함 속에 심판의 칼을 숨기시고, 세상이 가장 안전하다 느낄 때 공의를 집행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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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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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돋았다'는 표현은 문학적으로 강렬한 대조를 이룹니다. 세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고 희망찬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전날 밤의 소동을 잊고 다시 일상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멸망의 순간이었습니다. 심판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도적같이 임합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간 순간'은 의인의 구원이 완성된 시점이자, 악인의 심판이 시작된 시점입니다(Synchr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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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우리는 "오늘도 평화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오늘은 "심판이 유예된 하루"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멸망이 홀연히 임할 수 있습니다(살전 5:3). 오늘 해가 떠오른 것은 우리가 회개할 기회를 하루 더 얻었다는 뜻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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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지
죄악 된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머뭇거리는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소돔 성문에 앉아 세상의 성공을 즐기면서도,
영적인 권위는 잃어버려 가족조차 구원하지 못했던
롯의 무력함이 우리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농담으로 여기는 세상의 조롱 앞에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 우리는 연약하여 세상이 주는 안락함을
스스로 끊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체하는 저희를 찾아오셔서,
강한 손으로 붙잡아 이끌어 내시는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고난과 실패가
우리를 죄악의 도성에서 건져내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네가 도착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시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심판이 유예된 이 아침,
다시 한번 소알을 향해 달리는 믿음의 경주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멸망의 자리에서 건져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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