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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1-11 폭력의 시대, 환대가 구원이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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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폭력과 배제가 지배하는 세상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향해 환대의 문을 여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때, 롯은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문은 안과 밖이 만나는 경계이자, 도시의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과 결별하고 선택한 소돔에서의 삶, 롯은 그곳에서 성공한 듯 보였지만 그의 영혼은 늘 '이방인'의 자리인 성문 곁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문명의 불빛 아래서도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허기, 어쩌면 그것이 오늘 우리가 느끼는 도시의 쓸쓸함과 닮아 있습니다.

그때 두 천사가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송민원 목사는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이 장면을 소돔의 '폭력성'과 아브라함 전통의 '환대'가 충돌하는 결정적 순간으로 읽어냅니다. 소돔 사람들에게 낯선 타자는 착취하고 유린해야 할 대상(Object)이었지만, 롯에게 그들은 영접하고 보호해야 할 손님(Guest)이었습니다. 롯은 그들에게 간청하여 집으로 모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소돔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몰려든 폭도들은 "그들을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고 외칩니다. 여기서 '상관하다(yada)'는 성적인 폭력을 통해 상대를 지배하겠다는 끔찍한 선언입니다. 철학자 데리다(Derrida)는 "환대는 문을 열어두는 것"이라 했지만, 소돔은 그 문을 부수고 들어와 타자를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도구로 삼으려 합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타자의 신비를 존중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짓밟아버리는 것, 그것이 곧 지옥입니다.

이 위기 속에서 롯의 대처는 비극적입니다. 그는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약자)을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현대의 윤리적 감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제안은, 롯이 소돔의 윤리에 얼마나 깊이 오염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증거입니다. 그는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차선책으로 제시하는 도덕적 파산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세상의 거친 풍파 앞에서 나의 믿음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벗님들.

우리는 롯을 쉽게 비난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내 가족과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실수하는 롯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롭지 못합니다. 우리의 대처는 늘 미숙하고, 때로는 비겁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롯이 손님들을 지켜낸 것이 아닙니다. 결국 손님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아 그를 구원했습니다. 신앙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위태로운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보호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완벽한 도덕군자가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비록 떨리는 손일지라도 타자를 향해 문을 열어주는 그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롯은 실패했으나, 하나님은 그 환대의 끈을 놓지 않은 그를 기억하셨습니다. 우리의 어설픈 몸짓조차 구원의 통로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어둠이 짙을수록, 우리가 켜 든 작은 환대의 촛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구원의 빛이 됩니다.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붙들어야 할 진정한 힘은 '환대'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9:1-11 폭력의 밤을 견디는 ‘환대’의 문, 그 위태로운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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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의 멸망은 낯선 이들을 배제하고 착취하는 집단적 폭력에서 기인했으나, 그 살풍경한 현실 속에서도 타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문을 여는 롯의 위태로운 환대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의 여지를 남기십니다.

*

어스름이 짙게 깔리는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마다 하루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시간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신앙의 길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19장의 풍경은 해 질 녘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날이 저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는 뜻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빛과 어둠, 안전과 위험, 환대와 폭력이 교차하는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 우리가 서 있음을 암시합니다.

저녁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을 때, 롯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창 19:1-2). 송민원 교수는 창세기를 ‘수평적 읽기’로 제안하며, 이 장면이 단순한 저녁 식사 초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특히 치안이 부재한 낯선 도시에서 나그네를 밤거리에 방치한다는 것은 곧 그를 죽음의 위협 속에 내버려 두는 것과 같았습니다. 롯이 그들을 “강권하여” 집으로 들인 것은(창 19:3), 낯선 이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건 ‘환대의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돔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롯의 집을 에워쌉니다. 그리고 요구합니다.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 여기서 ‘상관하다(야다)’는 말은 성적인 폭력을 암시함과 동시에, 타자의 존재를 짓밟고 유린하겠다는 집단적 광기를 드러냅니다. 송민원 교수는 소돔의 죄악이 특정 성적 지향의 문제를 넘어, 낯선 이를 배척하고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환대의 실패’이자 ‘공동체 윤리의 붕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롯을 향해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라며 비난합니다(창 19:9). 한동일 변호사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해당해도 아무런 처벌이 따르지 않는 존재를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 불렀는데, 소돔 사람들에게 롯은 그저 얹혀사는 난민(Gur)이었고, 제거해도 되는 귀찮은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돔과 얼마나 다릅니까? 이기주 작가는 “말은 나름의 귀소 본능을 지닌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혐오의 말들, 약자를 향한 조롱, 내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은 결국 돌고 돌아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칼날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이 폭력의 시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박대영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는 혁명”이라고 정의합니다. 묵상은 세상의 거센 물결(트렌드)에 휩쓸려 가는 나를 멈춰 세우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다시 읽어내는 ‘관계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소돔 성벽처럼 견고해 보이는 세상의 질서가 실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롯처럼 문을 열고 나가 폭력의 물결 앞을 막아서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롯은 완벽한 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위기 앞에서 두 딸을 내어주겠다는 비윤리적이고 당혹스러운 제안을 하며 허둥거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도덕적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낯선 이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는 그 작은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그를 구원하십니다(아브라함의 중보를 하나님이 기억하신 은혜).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께서 어떤 집에 들어가시는 것은 그 집에 하나님과 가까운 뭔가가, 지푸라기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롯의 손을 잡아 끌어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조차도 품어 안으시고 우리를 파국에서 건져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거대한 힘 앞에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내가 문을 연다고 세상이 바뀔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소돔이 멸망한 것은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죄악을 막아서며 환대의 문을 열어줄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억울한 자의 편에 서는 작은 용기가 바로 소돔 같은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이제 두려움의 빗장을 풀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 속으로 나아갑시다. 비록 우리가 사는 곳이 거칠고 험할지라도, 우리가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비빌 언덕’이 되어줄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삐걱거리는 ‘경첩’과 같습니다. 문과 문틀 사이, 안과 밖의 경계에 매달려 온몸으로 문을 지탱하는 경첩은 작고 눈에 띄지 않으며 때로는 녹슬고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작은 경첩이 버티고 있기에 문은 여닫힐 수 있고, 닫힌 세계는 열린 세계를 향해 숨을 쉴 수 있으며, 누군가는 그 문을 통해 따뜻한 안식처로 들어올 수 있는 법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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