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세기 19:01-11 문(Door)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상 : 환대의 식탁과 폭력의 거리

*

저녁 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을 때,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이 그들을 영접하여 간청 끝에 집으로 모십니다. 롯은 아브라함처럼 그들을 위해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굽습니다(1-3절). 그러나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몰려와 그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손님들을 끌어내어 상관(성폭행)하겠다고 협박합니다(4-5절). 롯은 문밖으로 나가 폭력을 막으려다 자신의 두 딸을 내어주겠다는 비윤리적이고 절박한 제안을 합니다(6-8절). 분노한 무리가 롯을 해하려 할 때, 천사들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은 뒤, 무리의 눈을 멀게 하여 심판의 전조를 보여줍니다(9-11절).

*

#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나그네 환대’는 생존을 위한 신성한 의무였습니다. 성문은 재판과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공적인 장소였습니다. 소돔은 풍요로운 도시였으나, 나그네를 보호하기는커녕 집단적으로 유린하려 함으로써 고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를 파괴한 도시로 묘사됩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창세기 18장과 19장은 ‘환대’라는 주제로 연결된 쌍둥이 본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이 생명과 언약이 싹트는 환대의 공간이었다면, 롯의 집 문 앞은 폭력과 죽음이 도사리는 반환대의 공간입니다. ‘수평적 읽기’로 볼 때, 소돔의 죄는 단순한 성적 타락을 넘어, 약자와 타자에 대한 집단적 폭력과 억압(부르짖음, 18:20)으로 규정됩니다. 

# 송민원 박사의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제시하는 ‘수평적 읽기(Horizontal Reading)’의 관점은 창세기를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사이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윤리, 그리고 그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조명합니다. 특히 19장의 소돔 사건은 18장의 아브라함의 환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반(反)환대’와 ‘폭력’의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

# 1-3절 소돔 성문의 롯과 위태로운 환대 : 악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나그네를 영접하여 보호하려는 성도의 애쓰는 몸짓.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한 도시에서도 당신의 사람을 통해 타자를 위한 ‘피난처’가 마련되기를 원하시며, 그 환대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는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가소서”라고 청합니다. 천사들은 거절하며 거리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하지만, 롯이 ‘간청’하매 집으로 들어옵니다. 롯은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워 대접합니다.

,

롯의 행동은 18장의 아브라함과 매우 유사합니다(영접, 절함, 씻을 물, 식사). 송민원 박사의 관점에서 롯은 아브라함에게 배운 ‘환대의 영성’을 소돔에서도 실천하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환대가 평화롭고 넉넉했다면, 롯의 환대는 ‘간청’(3절)해야만 성사될 정도로 긴박하고 위태롭습니다. 천사들이 “거리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한 것은 소돔의 치안과 도덕성을 시험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롯은 거리의 위험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그들을 집 안으로 들입니다. 무교병(누룩 없는 빵)을 구웠다는 것은 급하게 준비했음을 암시합니다. 죄악 된 도시에서 롯의 집은 유일하게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거룩한 피난처’였습니다.

.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와 혐오가 만연합니다. 롯처럼 세상 한복판(성문)에 살면서도 세상의 방식(배척)을 따르지 않고, 나그네와 약자를 향해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문을 여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직장에서 왕따 당하는 동료, 사회에서 소외된 이주민이나 난민을 향해 우리가 베푸는 작은 식탁과 관심이 바로 롯의 무교병입니다. 비록 세상이 악할지라도, 내가 머무는 공간만큼은 하나님의 평화(샬롬)가 흐르는 환대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

# 4-5절 포위된 집과 집단적 광기 : 약자와 이방인을 향한 배타적 적개심과 집단적 폭력으로 드러난 소돔의 죄악.

하나님은 한 사회가 약자를 대상으로 삼아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있음을 보시고 진노하시는 공의의 재판장이십니다.

.

그들이 눕기 전에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쌉니다. 그들은 롯을 부르고 “오늘 밤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외칩니다.

.

‘상관하리라’(히브리어 ‘야다’)는 ‘알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성적인 관계, 즉 집단 성폭행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인을 힘으로 제압하고 유린하여 자신들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폭력적인 수평 관계’의 전형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노소를 막론하고 다 모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소돔의 타락이 일부 악당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구조적이고 보편적인 악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낯선 존재를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착취와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들으셨던 ‘부르짖음’의 실체입니다.

.

‘노소를 막론하고’ 악에 가담하는 모습은 군중 심리에 휩쓸려 특정 대상을 마녀사냥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인터넷 댓글 창에서의 집단린치, 학교 폭력의 방관과 동조, 직장 내 괴롭힘 등은 현대판 소돔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수가 행한다고 해서 그 악에 침묵하거나 동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이러한 집단적 광기에 맞서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을 이끌어 내라”는 세상의 폭력적인 요구에 저항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 6-8절 롯의 타협과 비뚤어진 의(義) : 손님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가족(딸)을 희생시키려는 윤리적 혼란과 한계.

하나님은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딸의 희생)을 선택하는 인간의 무력함과 왜곡된 도덕성을 지켜보시며,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함을 드러내십니다.

.

롯이 문 밖으로 나가 뒤로 문을 닫고 무리에게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내게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행하고 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고 제안합니다.

.

롯은 폭도들을 “내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진정시키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자신의 두 딸을 성노리개로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이는 고대 근동의 손님 보호 관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해도, 윤리적으로 끔찍한 타협입니다. 송민원 박사의 수평적 읽기 관점에서 볼 때, 롯은 악을 막기 위해 가장 약한 존재(여성, 딸)를 희생양으로 삼는 또 다른 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롯은 의로운 사람(벧후 2:7)이라 불리지만, 소돔의 윤리에 깊이 오염되어 선악의 기준이 혼탁해진 상태입니다. 그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 했으나, 비참한 도덕적 실패를 보여줄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의가 얼마나 무력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폭로합니다.

.

우리는 때로 ‘대의’를 위해서, 혹은 ‘교회의 보호’나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힘없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문제를 덮기 위해 내부 고발자를 희생시키거나, 더 큰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차악을 선택하며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약자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해결책’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롯처럼 다급한 마음에 세상과 비겁한 타협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지혜’가 사실은 세상의 방식에 물든 ‘어리석음’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

# 9-11절 천사들의 개입과 닫힌 문 : 인간의 한계 상황에 개입하셔서 악인을 무력화시키고 의인을 구별해 내시는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세상의 힘에 밀려 위기에 처할 때, 친히 손을 내밀어 안으로 들이시고 구원의 문을 닫으시는 절대적인 보호자이십니다.

.

무리들은 “너는 물러나라”고 하며 롯을 이방인(“들어와서 거류하는 자”) 취급하고 법관 노릇을 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이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 할 때, 그 사람들(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문밖의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 헤맵니다.

.

롯이 해결하려 했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무리들은 롯의 호의를 조롱하고 폭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바로 이때, 주어(Subject)가 바뀝니다. 지금까지 롯이 손님을 보호하려 했다면, 이제는 손님(하나님)이 롯을 보호하십니다.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끌어들임’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구원입니다. 문을 닫고 무리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심판의 시작입니다. 그들은 눈이 멀었음에도 문을 찾으려고 헤매는데, 이는 죄에 중독되어 파멸의 순간까지도 욕망을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폭력의 현장에 개입하셔서 선과 악의 경계(문)를 확정 짓고 당신의 백성을 구별해 내십니다.

.

우리가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려다 보면, 세상으로부터 “너는 우리와 다르다”, “네가 뭔데 우리를 가르치려 드느냐”는 비난과 공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들이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밀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당기십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문을 닫으시고 악을 차단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영적 맹인이 되어 문을 찾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되, 그들의 집요한 죄악에는 단호히 문을 닫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

# 거둠의 기도

나그네 된 자들을 환대하시며 

폭력의 세상에서 당신의 백성을 건지시는 하나님 아버지.

소돔과 같은 이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부르시고 

거룩한 식탁의 교제를 나누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약자들을 향한 

집단적 폭력과 혐오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소돔의 죄악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저희가 롯처럼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믿음으로 문을 열어 이웃을 환대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타협하며 

약자를 희생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악의 세력 앞에서 두려워 떨 때, 

주님의 강한 손을 내밀어 

저희를 은혜의 장막 안으로 이끄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인 눈이 멀어 멸망의 문을 찾는 이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심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1. No Image 26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6 by 평화의길벗
    Views 1 

    창세기 19:24-38 뒤돌아보는 욕망과 굴 속의 비극 - 소돔은 불탔으나 소돔의 윤리는 남았다

  2. No Image 26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6 by 평화의길벗
    Views 0 

    창세기 19:24-38 뒤돌아보는 욕망과 굴 속의 비극 - 소돔은 불탔으나 소돔의 윤리는 남았다

  3. No Image 25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5 by 평화의길벗
    Views 0 

    창세기 19:12-23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끄시는 '강권적인 자비' : 심판의 아침에 드러난 구원의 본질

  4. No Image 25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5 by 평화의길벗
    Views 0 

    창세기 19:01-11 문(Door)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상 : 환대의 식탁과 폭력의 거리

  5. No Image 24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4 by 평화의길벗
    Views 1 

    창세기 18:16-33 질문하는 인간, 응답하시는 하나님 : 공의와 긍휼 사이에서 피어난 거룩한 중보

  6. No Image 23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3 by 평화의길벗
    Views 3 

    창세기 18:01-15 한낮의 정적을 깨우는 방문 : 환대(Hospitality) 속에 임한 약속과 웃음의 회복

  7. No Image 22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2 by 평화의길벗
    Views 3 

    창세기 17:01-27 : 몸에 새긴 언약, 한 사람을 넘어 열방의 아버지가 되는 길

  8. No Image 21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1 by 평화의길벗
    Views 2 

    창세기 16:01-16 엇갈린 욕망의 시선, 그 사각지대를 찾아오시는 ‘살피시는 하나님’의 질문

  9. No Image 20Jan
    by 평화의길벗
    2026/01/20 by 평화의길벗
    Views 3 

    창세기 15:01-21 질문하는 인간, 응답하는 횃불: 어둠을 가르는 언약의 신비

  10. No Image 19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9 by 평화의길벗
    Views 3 

    창세기 14:01-24 : 제국의 전쟁터에서 형제됨을 지키는 힘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소유한 자의 자유

  11. No Image 18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8 by 평화의길벗
    Views 4 

    창세기 13:01-18 욕망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시작되는 평화와 약속의 지평

  12. No Image 17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7 by 평화의길벗
    Views 4 

    창세기 12:10-20 생존의 본능이 만든 비겁한 침묵, 그리고 세상의 책망을 통한 하나님의 역설적 보호

  13. No Image 16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6 by 평화의길벗
    Views 4 

    창세기 11:31-12:9 질문을 품고 걷는 순례자의 길

  14. No Image 16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6 by 평화의길벗
    Views 3 

    창세기 11:31-12:9 멈춰 선 아버지의 자리에서 떠나, 약속의 땅으로 걷는 질문과 응답의 여정

  15. No Image 15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5 by 평화의길벗
    Views 5 

    창세기 11:10-30 바벨의 소음을 뚫고 흐르는 침묵의 은혜, 그리고 불가능의 끝에서 시작되는 약속

  16. No Image 14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4 by 평화의길벗
    Views 3 

    창세기 11:01-09 멈춰 선 제국의 욕망, 다시 흐르게 하신 수평의 은혜

  17. No Image 13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3 by 평화의길벗
    Views 4 

    창세기 10:01-32 흩어짐을 통해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의 파노라마

  18. No Image 12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2 by 평화의길벗
    Views 4 

    창세기 09:18-29 덮음의 신비와 노출의 비극 : 관계의 정원에서 다시 길을 묻다

  19. No Image 11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1 by 평화의길벗
    Views 2 

    창세기 09:01-17 심판의 구름 사이로 비치는 자기 제한의 신비, 보존과 공생의 무지개 언약

  20. No Image 11Jan
    by 평화의길벗
    2026/01/11 by 평화의길벗
    Views 5 

    창세기 08:01-22 심판의 심연을 넘어선 기억의 은총 : 하나님의 정념(Pathos)과 새로운 창조의 시작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9 Next
/ 4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