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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1-21 어둠을 가르는 타오르는 횃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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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칠흑 같은 불안의 밤에도, 우리를 대신하여 홀로 쪼개진 고기 사이를 지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전쟁의 흥분이 가라앉고 난 뒤 찾아오는 것은 깊은 허무와 두려움입니다. 롯을 구하기 위해 무모한 전쟁을 치렀던 아브람에게 밤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 밤은 물리적인 시간을 넘어,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인간의 실존적 어둠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창 15:2)라는 그의 탄식은, 제아무리 화려한 전공(과거)이 있어도 내일을 보장받지 못한 인간의 깊은 불안을 대변합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인간은 '전율하는 존재'이기에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 불안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좁은 장막 밖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장막 안에서 자신의 한계만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광활한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이처럼 내 문제에 갇힌 시선을 들어 '별'을, 아니 별을 지으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 말씀 하나를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믿음 이후에도 현실의 어둠은 쉽사리 걷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계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고대 근동의 관습대로 짐승을 쪼개어 마주 대놓고, 그 사이로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엄중한 의식입니다. 이는 약속을 어길 시 쪼개진 짐승처럼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명을 건 맹세였습니다.

송민원 목사는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이 장면의 독특함에 주목합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은 깊은 잠과 캄캄함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입니다. 그때 쪼개진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은 오직 '타오르는 횃불', 즉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본래는 약속 당사자 둘 다 지나가야 하지만, 하나님은 홀로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약속의 성취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홀로 지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아브람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당신의 명예와 생명을 걸고 이 약속을 지켜내시겠다는 일방적인 은혜의 사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믿음의 길 위에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벗님들.

우리는 자주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지거나, 큰 흑암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려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명확히 말해줍니다. 구원은 우리가 쪼개진 고기 사이를 걷는 고행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떨며 잠들어 있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홀로 횃불이 되어 어둠을 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맹세를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나의 열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생명을 거신 그분의 열심에 기대는 것입니다. 오늘 밤, 불안의 장막을 걷어치우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별처럼 쏟아지는 그분의 은총을 그저 바라보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5:1-21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횃불, 그 ‘무력한 기다림’ 위로 임하는 언약의 신비

불안과 두려움에 갇힌 우리 존재를 탓하지 않으시고, 홀로 쪼개진 고기 사이를 지나시며 우리 삶을 별처럼 빛나는 운명으로 엮어 가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총을 신뢰해야 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며 고단한 삶의 순례길을 걷고 계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때로 짙은 안개 속처럼 막막하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과연 이 길 끝에 희망은 있는지 묻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도 그러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내면은 ‘두려움’과 ‘상속자 없음’이라는 결핍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터져 나온 깊은 탄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좁은 장막 밖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창 15:5). 김기석 목사님은 이 장면을 두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의 영원한 이미지를 심어주신 순간”이라 했습니다. 캄캄한 어둠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은하수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숭고함(Sublime)의 세계로 그를 초대합니다. 한동일 선생은 “삶이란 내가 원하지 않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물려받은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불임’과 ‘무자(無子)’는 그가 원치 않게 물려받은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칠흑 같은 절망의 밤하늘에 별이라는 약속을 수놓으시며 그의 운명을 새롭게 쓰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다시 묻습니다(창 15:8). 이에 하나님은 고대 근동의 계약 의식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송민원 교수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문과 응답의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질문에 하나님은 말이 아닌, 당신의 ‘자기 구속적 행위’로 응답하십니다. 고대 사회에서 계약 당사자들은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가며 “약속을 어길 시 이 짐승처럼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오직 ‘타는 횃불(하나님)’만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십니다(창 15:17).

이기주 작가는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깊은 잠(무력함)에 빠져 있을 때, 당신의 영원한 시간을 건네주시는 것을 넘어, 당신의 생명을 담보로 언약을 홀로 이루시겠다는 ‘편무적(unilateral)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이라곤 그저 솔개가 사체 위에 내리지 못하게 쫓으며 기다린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훌륭한 조건을 갖춰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그 ‘곡진기정(曲盡其情)’하신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압도적인 은혜를 우리 내면에 깊이 새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성경이 나를 읽게 하는 시간”이며, 내 욕망의 소음을 잠재우고 하나님의 거대한 서사 속에 나를 위치시키는 ‘관계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이 횃불 언약의 말씀을 소화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일까?”라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언약의 횃불은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우리가 가장 무력할 때 우리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믿음은 우리의 마차를 하나님의 별에 메어 달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끄는 것이 아니라, 별이 끄는 것입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강박을 내려놓고, 우리 삶의 폐허 사이를 지나가시는 주님의 옷자락을 붙드십시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홀로 횃불이 되어 타오르시는 그 사랑이 있기에, 우리의 오늘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을 품고 다시 일어서는 여러분의 삶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별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거센 파도 속에서도 배를 단단히 붙들어 주는 ‘닻(Anchor)’과 같습니다. 배가 흔들리지 않아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닥에 닻이 내려져 있기에 우리는 표류하지 않고 마침내 소망의 항구에 닿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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