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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4:01-26 깨어진 관계의 탄식과 예배를 통한 새로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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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고, 두 아들은 각각 농사와 목축의 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시자 가인은 시기심에 동생 아벨을 살해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며 그를 추방하시지만, 동시에 보호의 표를 주어 생명의 보존을 약속하십니다. 이후 가인의 후예들이 하나님 없는 도시 문명을 건설하며 힘을 과시하는 동안,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할 ‘셋’을 주시고 그 아들 에노스 때에 이르러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참된 예배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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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농경과 유목은 공존과 갈등의 관계였습니다. 당시 문명은 기술적 발전을 이루었으나, 성경은 그 속에 내재된 폭력성과 불경건을 고발합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송민원 박사의 '수평적 읽기' 관점에 따르면, 죄는 단순히 하나님의 법을 어긴 '수직적 위반'이 아니라, 형제의 생명을 해치고 책임을 회피하는 '수평적 폭력'으로 정의됩니다. 이는 요한일서 3:12의 "가인 같이 하지 말라"는 교훈과 연결되어 인류의 두 계보(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 참고글 : 창세기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막이며, 인간이 하나님과 타인, 그리고 피조 세계와 맺어야 할 관계의 원형을 제시합니다. 특히 창세기 4장은 에덴 밖으로 밀려난 인류가 마주한 첫 번째 현실인 '관계의 균열'과 그 속에서 전개되는 문명과 신앙의 대조를 다룹니다. 송민원 박사의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의 통찰을 따라, 수직적 명령을 넘어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와 그 속에 담긴 ‘윤리적 책임’을 중심으로 본문을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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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생명의 탄생과 공유된 역사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에게도 생명을 허락하시어 당신의 창조 목적을 이어가시는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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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어 가인의 아우 아벨이 태어나며, 두 형제는 각각 농사하는 자와 양 치는 자로서 자신들의 삶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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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침하다"(yada)는 단순히 지적인 앎이 아닌 인격적 친밀함을 뜻하며, 타락 이후에도 인간의 사랑과 생명 잉태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인(Qayin)은 '얻다/획득하다'는 뜻으로 하와의 기대를 반영하며, 아벨(Habel)은 '숨/허무'를 뜻하여 그의 짧은 생애를 암시합니다. 송민원 박사는 이들의 직업 분화가 단순히 경제적 활동을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공동체적 운명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께로 돌아간다고 한 것처럼(롬 11:36), 이들의 탄생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안에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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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과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고백하는 Eve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형제간의 차이를 비교의 잣대로 삼지 않고,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달란트(농사 혹은 목축)를 존중하는 것이 창조 질서의 순응입니다. 교회는 성도 개개인의 삶이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사의 한 조각임을 일깨우며, 일상적 노동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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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절 예배의 마음과 죄의 다스림

하나님은 제물보다 예배자의 인격과 수평적 관계를 먼저 살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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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십니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자, 하나님은 죄가 문에 엎드려 있음을 경고하시며 죄를 다스리라고 권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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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는 가인의 제사가 거절된 이유를 '제물의 종류'가 아닌 '수평적 관계의 실패'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을 세트로 받으셨다는 표현은 예배자의 삶이 예배의 핵심임을 시사합니다. "안색이 변함"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깨졌을 때 이웃을 향한 분노로 폭발하는 심리적 기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얼굴을 들라"고 하시며 죄를 다스릴 '윤리적 선택'을 요구하시는데, 이는 인간이 원죄의 희생자로만 머물지 않고 능동적으로 선을 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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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예배와 종교적 행위가 넘쳐나는 오늘, 우리는 가인의 제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상대적 박탈감"과 시기심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내면에 엎드린 "분노의 사자"를 말씀으로 길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예배당 문을 나설 때 이웃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통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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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절 형제 살인과 책임의 회피

하나님은 고통받는 이웃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우리에게 형제를 돌볼 책임을 물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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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들에서 아벨을 쳐 죽입니다.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자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반문합니다.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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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반문은 인류가 하나님께 던진 최초의 질문이자 책임 회피의 극치입니다. 여기서 '지키다'(shamar)는 에덴을 '지키라'던 인간 본연의 사명과 연결되며, 형제를 지키는 것이 곧 인간의 본분임을 역설합니다. 송민원 박사는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호소한다는 표현을 통해, 부당하게 희생된 자들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가인의 길을 거부하는 핵심 원리임을 확증합니다 (요일 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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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이 시대적 화두가 된 사회에서, 가인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말은 현대인의 차가운 무관심을 대변합니다. 소외된 이웃이나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부정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가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따돌림 현상을 목격할 때, 그리스도인은 침묵하지 말고 '지키는 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억울한 자들의 핏소리에 귀 기울이는 하나님의 귀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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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5절 심판과 보호의 표

하나님은 죄를 징치하시되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죄인마저 보호하시는 자비로운 재판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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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가인을 저주하여 땅이 효력을 내지 않게 하시고 유리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가인이 형벌이 너무 무겁다고 호소하자, 하나님은 그를 죽이는 자에게 7배의 벌을 약속하시며 보호의 표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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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효력이 사라진 것은 피조 세계가 인간의 폭력을 거부하는 상징적 현상입니다. 가인이 받은 '표'는 단순한 낙인이 아니라,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는 악순환을 차단하려는 하나님의 '보호적 자비'의 도구입니다. 송민원 박사는 하나님이 가인을 추방하시면서도 그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 장면에 주목하며, 인간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신실함이 더 큼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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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운전, 묻지마 범죄, 엄벌주의가 강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창세기의 '표'는 우리에게 '심판 너머의 자비'를 생각하게 합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끝까지 추적해 매장하려는 '디지털 마녀사냥' 문화 속에서 성도는 용서와 보호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자녀가 잘못했을 때 정죄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은혜의 표'를 새겨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일터에서도 실수의 책임을 엄격히 묻되, 그 인격이 파괴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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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4절 가인의 문명과 라멕의 오만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불안을 메우기 위해 쌓는 견고한 성 너머의 교만을 경계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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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에녹 성을 쌓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목축, 음악, 금속 기술을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7대손 라멕은 살인을 저지른 후 이를 정당화하며 "가인을 위해 7배라면 나를 위해서는 77배"라고 오만하게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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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성을 쌓은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가 겪는 '존재론적 불안'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문명의 발전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배제할 때 라멕처럼 폭력을 찬양하는 '칼의 노래'로 변질됩니다. 라멕의 "77배 복수"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77번이라도 용서하라"(마 18:22)는 선언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인간 문명의 한계와 대속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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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만능주의와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돈과 성취라는 '에녹 성' 안에 숨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번영은 결국 라멕과 같은 폭압적인 질서로 귀결될 뿐입니다. 직업적 성공이나 예술적 재능이 '나의 이름'을 내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기업 경영이나 전문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은 힘의 과시가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를 심는 '대안 문화'를 일구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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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6절 셋과 에노스 - 예배의 회복

하나님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여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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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아벨을 대신해 하나님이 주신 아들 '셋'을 얻습니다. 셋은 아들 '에노스'를 낳았고,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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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은 '지정하다/대신하다'는 뜻으로 끊어진 계보를 잇는 하나님의 대안입니다. 주목할 단어 '에노스'는 히브리어로 '병든/죽을 수밖에 없는'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유한함을 상징합니다. 송민원 박사는 인간이 스스로의 '연약함'을 자각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한 예배가 시작되었음에 주목합니다. 이는 인간의 강함이 아닌, 약함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구속사적 전환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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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강함'과 '완벽'을 강요받는 피로 사회에서, 창세기는 우리가 '에노스'(연약한 자)임을 고백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지친 '에노스'들이 모여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고 주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안식의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예배의 회복은 거창한 형식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모여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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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태초에 관계의 신비로 저희를 지으시고,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자비의 표를 주어 생명을 보존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동생을 시기하고 "내 아우가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내가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책임 회피로 일관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화려한 성을 쌓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이제 우리가 한낱 흙에서 온 '에노스'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가 경쟁과 보복의 현장이 아니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예배의 처소가 되게 하소서. 

갈등과 비난이 가득한 이 땅 대한민국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일궈낸 화해와 사랑의 언어가 다시 흐르게 하옵소서.

우리를 새롭게 지으시고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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