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09-15 반복된 죄악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의로우심에 매달리는 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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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유다 땅에 거룩한 터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이었음을 깊이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다시금 이방 민족과의 통혼이라는 가증한 죄를 반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했음을 통탄합니다. 에스라는 자신들의 악행과 죄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마땅하다고 고백하며,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설 면목조차 없음을 고백하고,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비와 처분에 모든 소망을 맡기고 기도를 끝맺습니다. 에스라의 이 기도는 구체적인 용서를 간구하는 대신, 백성들이 죄의 심각성을 철저히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자복 중심의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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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절 잠깐 베푸신 은혜, 종살이 속의 터전 : 고난 속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터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종살이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휼을 베푸시어 회복을 위한 안전하고 견고한 터전을 마련해 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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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언약에 근거하여, 자격 없는 백성에게 찾아와 잠깐의 은혜와 생기(生氣)를 주시며, 회복의 기회를 허락하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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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이스라엘이 비록 바사 왕들의 지배 아래 종살이하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음을 고백합니다. 오히려 바사 왕들 앞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아, 소생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것을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성벽(울타리)을 주시어 든든한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들에게 잠시나마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고 눈에서 생기가 돌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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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살이'(노예 상태)는 단순히 육체적 속박을 넘어 포로 상태를 의미했지만, 에스라는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잠깐 은혜를 베푸시어' 회복의 기회를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이 자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 즉 헤세드(긍휼)에 근거함을 보여줍니다. '든든한 터전' 혹은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이스라엘이 확고부동하게 정착할 수 있는 영적인 안정과 정체성을 얻게 되었음을 문학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안정은 외적인 힘(바사 왕)을 통해 주어졌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배후에서 선하게 연출하신 결과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레스나 다리오 왕 같은 세상 권력자들의 호의를 통해 도움을 받지만, 결국 그 사람을 움직이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입니다. 우리가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삶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붙드시며 우리에게 '생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었을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에스라의 백성처럼 우리도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으나,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덕분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견고한 터전 위에 놓인 것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원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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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얻은 모든 안정(직장, 가정의 평화, 건강)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증거입니다. 특히 경제적인 성공이나 직장의 안정을 단순히 '나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여기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정도라도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잠깐의 은혜'이며, 이를 은혜를 방종의 기회로 쓰지 않고 회복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성공이 자녀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터전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감사하는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화려한 건물이나 외형적인 시스템을 '든든한 터전'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진정한 터전은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세워진 신앙 공동체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환난 속에서도 사명을 감당하는 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두려움 없이 선한 일을 이어가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오늘날의 사회적 불평등이나 고난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을 저버린 공동체의 죄악의 결과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교회가 먼저 내면의 신앙을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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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5절 반복된 죄악과 의로우신 하나님의 긍휼 : 은혜를 저버린 죄의 자백과 의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뢰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계명을 거역한 백성에게 정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나, 죄악의 심각성 속에서도 궁극적인 소망의 근거는 오직 당신의 인애(仁愛)와 긍휼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의로우신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언약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인자(仁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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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큰 은혜를 베푸신 '이후에도', 백성들이 주의 계명을 저버렸음을 탄식합니다. 그는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명령을 상기시킵니다. 즉, 차지할 땅의 이방 백성들은 가증한 일로 땅을 더럽혔으므로, 그들과 통혼하지 말며 그들의 번성하거나 성공할 틈을 주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자신들이 당한 모든 고난이 악한 행실과 큰 죄 때문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남겨주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다시 계명을 거역하고 통혼하면, 주님께서 분노하시어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멸하실 것이 당연하다고 선언하며, 아무도 주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다고 자복하며 기도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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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심판의 철학적 이해 : 에스라는 과거의 포로 생활이 불순종의 결과였음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환 공동체는 이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같은 죄(이방 여인과의 통혼)를 반복함으로써 공동체의 거룩함과 정체성을 무너뜨렸습니다. 구약 시대의 통혼 금지는 단순히 인종차별이 아니라, 이방 종교와 문화에 동화되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거룩성을 상실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죄가 '마알'(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언약적 범죄)의 심각성을 가졌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긍휼 : 에스라의 기도는 용서를 요청하는 직접적인 간구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심(차디크 아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공의가 심판을 요구함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애(헤세드) 때문임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계약을 지킴으로써 용서를 요구하는 단순한 이해(협정)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긍휼을 호소하는 예리한 신학적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백성들의 죄악을 더욱 심각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인간은 그 의로우심 앞에 감히 설 수 없다는 고백을 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임은 로마서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가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참된 회개는 단순히 감정이나 슬픔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과 결단 (삶의 변화)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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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회개의 실천을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성공할 것 같다는 조급함에 빠져, 세상의 가치관(물질주의, 이기적인 성공)과 타협하는 것은 옛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과 통혼하여 정체성을 잃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부정이 쉽게 전염된다는 원리를 기억하고, 단호하게 죄를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반복되는 문제(예: 부부 간의 불신, 자녀 양육의 세속화) 앞에서 '우리의 죄'임을 고백하는 공동체적 참회가 필요합니다. 구태의연한 회개가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은혜'라는 이름으로 죄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버리는 태도를 버리고, 기도와 전략 (말씀에 따른 지혜로운 분별과 실천)을 병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회복은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겸손한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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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의로우시고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오늘 에스라의 기도를 통해,
저희가 종살이하는 가운데서도 당신이 베푸신 은혜 덕분에
안전한 터전을 얻고 생기를 얻어 살아남았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저희의 생존과 오늘의 평안이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과
일방적인 긍휼 덕분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주의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어리석음과 죄악을 행했습니다.
세상의 조급함과 탐욕에 물들어 영적인 순수성을 잃었고,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 때문에 당신의 진노를 받아 마땅합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들이지만,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셨던 당신의 인애만을 붙듭니다.
주님, 저희에게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시고,
단호한 회개의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거룩함을 지키는 경계를 세우며,
외적인 성공이 아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과 의로우심만이 저희의 소망의 근거임을 믿사오니,
저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저희와 동행하시며
회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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