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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0:1-12 온 백성의 찬양과 기쁨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우리의 공로나 자격이 아닌, 모든 경계를 허무시는 하나님의 열린 초대와 그것에 응답하는 겸비한 마음에 있다.

.

보이지 않는 선들이 우리 삶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마음의 국경은 지도의 경계선보다 견고하고, 우리가 쌓아 올린 장벽은 때로 만리장성보다 높습니다. ‘우리’라는 안온한 영토에 안주하기 위해 ‘그들’을 밀어내고, 나와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을 향해 굳게 빗장을 지릅니다. 나와 너, 의인과 죄인, 거룩과 속됨, 중심과 주변. 이처럼 무수한 분열의 선 위에서 우리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분주한 걸음 속에서 정작 잃어버리는 것은 함께 어깨 걸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쁨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정화를 마친 후, 오랫동안 잊혔던 유월절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유다라는 좁은 영토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향해 보발꾼을 보냅니다. 한때는 한 형제였으나 이제는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하던 이들을 향해, 앗수르의 압제 아래 신음하며 흩어져 살던 이들을 향해 그는 손을 내밉니다. 그의 편지는 단호하면서도 애틋합니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과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리라”(대하 30:8).

이것은 단순히 종교의례에 참여하라는 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찢겨진 역사를 다시 잇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품으로 함께 돌아가자는 눈물어린 호소였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너’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비로소 참된 자아가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초대는 바로 이 ‘나-너’의 관계 회복을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 초대에 응답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보발꾼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적의의 벽은 그리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은총이 스며들 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인 김지하는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고 노래했지만, 스스로를 닫아건 이들에게는 어떤 ‘틈’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조롱과 비웃음의 소리를 뒤로하고, 하나님의 집을 향한 그리움 하나를 품고 길을 떠난 순례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는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스스로 겸손한 마음’뿐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는 사람, 자기 힘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아는 겸허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자리입니다. 마치 텅 빈 그릇만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듯이, 비워진 마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지는 법입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 견고한 성을 쌓고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나’라는 안전지대에 머물기 위해 ‘너’를 향한 문을 굳게 닫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회복과 기쁨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먼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끝없는 사랑에 응답할 때, 우리의 굳어진 마음은 녹아내리고, 메마른 영혼에는 기쁨의 샘이 솟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보발꾼을 보내고 계십니다. 조롱과 냉소의 소리에 귀를 막고, 스스로를 낮추어 그 초대에 응답하는 자에게 ‘온 백성의 찬양과 기쁨’이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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