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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9:01-19 성결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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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은 우리 스스로의 결단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폐허가 된 우리 마음의 성전을 먼저 찾아오셔서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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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들은 집집마다 문을 지키는 야누스(Janus)라는 신을 섬겼습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이 신은 한 얼굴로는 집 안을, 다른 얼굴로는 집 밖을 내다보며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응시한다고 믿었지요. 문은 안과 밖의 경계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관문입니다. 우리가 삶의 문을 어디를 향해 열고 닫느냐에 따라 우리의 오늘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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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성전 문을 열었습니다(대하 29:3). 그의 아버지 아하스가 굳게 닫아버렸던 바로 그 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인데, 그 문이 닫혔다는 것은 곧 삶의 중심을 잃고 영혼이 거처를 잃었음을 의미합니다. 닫힌 성전 안은 온갖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했습니다.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생명이 자랄 리 만무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부패하고 스러져갈 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요? 세상살이에 지쳐 돌볼 틈도 없이 방치된 우리 마음의 성전 말입니다. 욕망의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관계의 상처들이 곰팡이처럼 피어오르고, 불안과 절망이 거미줄처럼 얽힌 그곳. 우리는 그 문을 굳게 닫은 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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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을 불러 그 폐허와도 같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을 치우기에 앞서 그들 자신을 먼저 성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29:5). 이 순서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더러워진 공간을 정화하는 것은 더러운 손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공간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정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시인 윤동주가 시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노래했듯, 스스로를 닦아내는 것은 실존적 고뇌일 뿐,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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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깃듭니다. 레위인들이 자신을 성결케 하고 성전을 정화하는 이 모든 과정은 그들의 결단에서 시작된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닫힌 문을 열게 하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폐허가 된 우리 마음을 누구보다 아파하시며, 우리가 다시금 당신과 만나는 빛의 공간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성결의 길은 ‘내가 거룩해져야지’하는 결심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 더러워진 저를 받아주십시오’라고 손 내미는 순종의 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끌어안고 그분 앞에 나아갈 때, 비로소 정화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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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데는 보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켜켜이 쌓인 오물을 걷어내고, 부서진 기물들을 제자리에 놓고, 다시금 거룩한 공간으로 구별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성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이와 같습니다. 단번에 모든 것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깃든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시며, 인내롭게 우리를 빚어가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오신 주님의 빛이 우리의 어둠을 몰아내고, 그분의 따스한 손길이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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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길 위의 벗들이여. 혹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건 채 홀로 어둠 속에 계시지는 않습니까? 성결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은혜의 초대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의 성전 문을 조용히 열어보십시다.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와 쌓인 먼지를 닦아내시고, 깨어진 마음을 기워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와, 우리의 삶을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성전으로 빚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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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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