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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6:16-27 길 잃은 시대의 자화상

인생의 곤고함은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이끄는 시험의 때이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슬픈 사랑과 마주 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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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간을 가리켜 ‘불안한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 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삶이라는 낯선 길 위를 걷습니다. 때로는 따스한 햇살 아래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예고 없이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고 사방이 어둠에 잠기는 순간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온몸이 진흙탕에 빠지는 곤고한 날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어디를 향해 손을 내밉니까? 길을 잃었다는 자각이 우리를 더 깊은 미로 속으로 끌고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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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마주한 역대하의 한 대목은 바로 이 길 잃은 영혼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남유다의 왕 아하스. 그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에돔과 블레셋이 사방에서 그를 조여오고,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습니다. 성경은 그의 상태를 ‘곤고하다’(대하 28:22)고 말합니다. 마음은 가뭄 끝의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희망 한 줌 찾아볼 수 없는 막막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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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이 깊은 수렁에서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북방의 강대국 앗수르에게 손을 내밉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의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괴롭힌 다메섹 사람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저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도울 것’이라 읊조립니다(23절).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자신을 상처 입힌 칼날에 제 생명을 의탁하려는 모습, 그것이 바로 곤고함에 빠진 인간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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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위기 앞에서 얼마나 자주 ‘앗수르’를 찾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다메섹의 신들’에게 무릎을 꿇는지요. 돈과 권력, 세상의 인정과 쾌락이라는 우상 앞에 자신의 영혼을 값싸게 저당 잡힙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앗수르 왕은 그를 돕기는커녕 도리어 괴롭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20절). 세상의 방식은 결코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구원을 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아하스는 결국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아걸고, 예루살렘 곳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자신의 불안과 욕망으로 가득한 신전들을 세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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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고통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절망이 클수록 세상의 거짓된 힘에 더 매달리는 비극. 그러나 이야기는 아하스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반역과 어리석음의 행간에는 침묵 속에서 그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깊은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생명의 문을 닫아걸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그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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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하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역사를 끊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실패는 오히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역설적으로 증거합니다. 우리가 가장 연약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닫아건 성전 문밖에서 잠잠히 우리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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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은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곤고함은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습니까? 더 깊은 범죄의 나락입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품입니까? 아하스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내가 세운 다메섹의 제단들을 허물고, 굳게 닫아 두었던 마음의 성전 문을 열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도움과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곤고함이 죄를 더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만나는 은총의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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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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