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01:07-21 하나님의 질투와 긍휼 : 세상의 평안 너머, 하나님의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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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첫 환상에서 온 땅을 순찰하는 천사들은 세상이 제국의 힘 아래 거짓 평화를 누리고 있음을 보고하고, 여호와의 천사는 고통받는 유다를 위해 중보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뜨거운 열심(질투)과 긍휼로 그들을 압제한 열방을 심판하고 예루살렘을 온전히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환상은 유다를 짓밟던 교만한 권세(네 뿔)가 하나님의 사람들(네 대장장이)의 회복 사역을 통해 무력화될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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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2절 거짓된 평화 속의 신음과 중보
단락 핵심 주제: 하나님은 세상의 거짓된 평화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그 이면에서 고통받는 당신 백성의 신음을 들으시며 그들을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핵심 명제: 세상이 말하는 '평화(Pax)'는 종종 강자의 안정이자 약자의 고통이며, 하나님의 '평화(Shalom)'는 정의와 긍휼이 회복되는 진정한 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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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온 세상을 감찰하시며, 불의한 평화 속에 가려진 당신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한 구원의 때를 계획하시는 공의로운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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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첫 번째 예언이 있은 지 석 달 후인 11월 24일, 스가랴는 밤에 환상을 봅니다. '화석류나무(도금양나무) 사이'에 붉은 말을 탄 이가 서 있고, 그 뒤로 다른 말들을 탄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온 땅을 두루 다니고 돌아와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라고 보고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여호와의 천사'는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며 중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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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역사적-신학적 의미 : 당시 '온 땅의 평안'이란 페르시아 제국의 군사적 힘 아래 유지되던 '팍스 페르시아나'(Pax Persiana)를 의미합니다. 제국 전체는 안정되었을지 몰라도, 그 속에서 유다 백성은 여전히 식민지의 설움과 경제적 어려움, 영적 무기력함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의 실체입니다. 강자의 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일 뿐, 약자의 고통이 해결된 진정한 '샬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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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류나무'와 '여호와의 천사' : 그늘지고 깊은 골짜기에 자라는 '화석류나무'는 당시 이스라엘의 초라하고 억압된 상태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천사'가 바로 그들 가운데, 그들의 현실 한복판에 서 계시다는 점입니다. 신학적으로 '여호와의 천사'는 종종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자기현현으로 해석됩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현실 속에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해 탄원하시는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이십니다(롬 8:34; 히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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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년'의 의미 : 이 기간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포로기의 시간이었습니다(렘 25:11, 29:10). 여호와의 천사는 바로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제 그 약속을 이루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막연한 탄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근거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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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개인과 교회 :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안정'과 '평안'에 속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안락한 삶이 누군가의 희생이나 사회의 구조적 불의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평화에 취해 잠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여호와의 천사처럼 세상의 신음 소리를 듣고 "주여, 언제까지니이까?"라고 부르짖으며 깨어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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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관점 : 그리스도인은 뉴스가 전하는 '안정'과 '번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화려한 도시의 그늘 아래 소외된 이웃은 없는지, 경제 성장의 열매가 공정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살피며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격변의 상황과 내란을 청산하는 과정과 경제적 변혁의 시기 속에서도 우리가 결국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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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7절 하나님의 불타는 열심과 긍휼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향한 거룩한 질투(열심)와 뜨거운 긍휼로, 그들의 완전한 회복과 번영을 계획하고 친히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핵심 명제 : 하나님의 '질투'는 파괴적인 감정이 아니라, 당신의 소유된 백성을 향한 배타적 사랑과 보호의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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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시며, 그들을 위해 불같이 질투하시고, 그들을 파괴했던 세력을 향해서는 더 큰 진노를 발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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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하나님은 중보하는 천사에게 '선하고 위로하는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그 내용은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금 노하셨는데, 열방은 도를 넘어 고난을 더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크게 불쌍히 여겨' 그에게로 돌아왔으며, 성전이 건축되고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처질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 결과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해지고,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로하며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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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하나님의 질투(קִנְאָה, qin'ah) : 인간의 시기심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언약적 열정'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를 향해 갖는 배타적 사랑과 보호의 열정과 같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선언하신 하나님의 명예가 당신 백성의 안녕과 직결되어 있기에, 그들이 짓밟히는 것을 좌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입니다. 이 질투가 회복의 가장 강력한 엔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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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향한 진노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열방을 사용하셨지만(사 10:5), 그들이 교만하여 정해진 선을 넘고 잔인하게 학대했을 때, 그 책임을 엄중히 물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세밀하고 정확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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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줄'의 역설 : '먹줄'은 본래 심판과 파괴를 위해 도시를 측량할 때 사용되던 도구였습니다(왕하 21:13; 암 7:7-9). 그러나 이제 스가랴에게 임한 '먹줄'은 파괴가 아닌 '재건과 회복'을 위한 측량의 도구입니다. 동일한 도구가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심판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구원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역설을 통해, 회복의 주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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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개인 : 혹시 삶이 피폐해지고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러한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크게 질투"하시며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이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결코 식지 않는 한, 우리의 회복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약속이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희망의 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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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교회는 세상 속에서 실패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이 '선하고 위로하는 말씀'을 선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투 어린 사랑과 무한한 긍휼을 경험하게 하는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부흥은 단지 교인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와 택하심의 증거로 그 풍성함이 지역사회로 흘러넘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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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1절 권세의 파괴와 창조적 회복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짓밟는 세상의 모든 교만한 권세를, 당신의 백성이 수행하는 창조적 회복의 행위를 통해 무력화시키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핵심 명제 :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거룩한 건설 행위는, 세상을 파괴하는 모든 권세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영적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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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세상의 강한 힘(뿔)을 더 강한 힘으로 제압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의 작은 순종과 건설의 행위(대장장이의 망치질)를 통해 교만한 권세를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시는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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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스가랴가 눈을 들어보니 '네 개의 뿔'이 보입니다. 천사는 이 뿔들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 '네 명의 대장장이'를 보이십니다. 그들의 임무는 뿔들을 두렵게 하고, 유다 땅을 흩뜨리기 위해 머리를 들었던 열방의 뿔들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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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네 뿔'의 상징 : '뿔'은 성경에서 교만, 힘, 군사적 권세를 상징합니다(단 7장). '넷'이라는 숫자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유다를 공격했던 모든 대적 세력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앗수르, 애굽, 바벨론, 페르시아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상 권력의 총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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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장장이'의 이중적 의미 : '대장장이'(חָרָשׁ, charash)는 뿔과 같은 쇠를 다루는 자로서, 세상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하나님의 대리인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금속 세공업자뿐만 아니라 석공, 목수 등 '건축 기술자'를 통칭하는 단어입니다(출 31:4-5). 당시 성전을 재건하던 바로 그 '장인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는 놀라운 통찰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교만한 뿔들을 부수시는 방법은 더 강력한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그 행위를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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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을 통한 파괴 : 성전을 재건하는 망치 소리가 곧 교만한 뿔을 쳐부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고,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순종이야말로, 세상의 파괴적인 권세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는 핵심 주제와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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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개인과 교회 : 우리를 짓누르는 세상의 '뿔들'(재정적 압박, 불의한 권력, 반기독교적 문화 등) 앞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스가랴는 우리에게 세상과 똑같은 '뿔'이 되려 하지 말고, 신실한 '대장장이'가 되라고 말합니다. 묵묵히 말씀의 기초 위에 내 삶을 세우고, 가정과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건축해 나가는 일,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작은 행위들이야말로 세상의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당신의 망치(순종)는 지금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세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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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세상의 거짓된 평화에 안주하며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을 외면했던 저희의 무감각을 회개합니다.
저희 안에 당신의 중보하는 마음을 주셔서,
불의한 현실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저희를 향한 아버지의 불타는 질투와 뜨거운 긍휼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오니,
어떤 절망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주옵소서.
세상의 교만한 뿔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신실한 대장장이가 되어 오늘 내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건축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순종의 망치 소리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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