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01-08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1
: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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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역사의 모든 싸움과 심판이 끝나고, 사탄과 사망의 권세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진 후, 요한계시록은 성경 전체의 장엄한 클라이맥스이자 모든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인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영광스러운 완성입니다. 이 본문은 죄로 인해 깨어지고 신음하던 모든 창조 세계가 어떻게 회복되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가 어떻게 완전한 연합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핍박과 고난의 현실을 살아가는 지상의 교회를 향해,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이 얼마나 확실하고 찬란한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위로와 소망의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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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모든 일들이 완성되는 그날이 오면 이전에 약속하신 모든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새 예루살렘 곧 하늘에 속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이며, 땅에 속한 모든 이들은 둘째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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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예루살렘이 신부처럼 단장된 곳입니다.
: 새 창조의 도래 - 단장한 신부, 새 예루살렘
하나님께서는 죄로 오염된 처음 창조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갱신하시며, 이 새 창조의 중심에는 오직 어린 양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신랑을 위해 단장한 거룩한 신부, 즉 교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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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졌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는데, 그 모습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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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New) 하늘과 새 땅 : 여기서 ‘새’(그리스어, kainos)는 시간이 흘러 낡은 것이 새것으로 교체되었다는 의미(neos)가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고 갱신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현 우주를 완전히 폐기하고 무(無)에서 다시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저주받고 망가진 처음 창조를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럽게 변혁하고 완성하시는 새 창조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며(고후 5:17),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이 바로 이 새 창조의 첫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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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다시 있지 않더라 : 고대 세계에서 ‘바다’는 혼돈과 악, 죽음의 세력이 출몰하는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계 13:1). 또한 바다는 민족과 민족을 가르는 분리와 단절의 상징이었습니다. 새 창조 안에 바다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죄와 죽음과 혼돈의 세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그 어떤 분리와 장벽도 없는 완전한 평화와 연합의 상태가 도래했음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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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같이 단장한 새 예루살렘 : 이 새 창조의 중심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놀랍게도 이 성은 교회가 들어가 살 집(House)이 아니라, 교회 자신입니다. 교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이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입니다. 그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는 것은, 교회의 모든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오직 신랑 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고 그의 의로 옷 입었기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영광은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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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요한계시록의 마무리 부분이자, 신약과 구약의 모든 성경의 최종적인 그림이자, 우주적인 종말의 그림들을 함축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핍박과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교회를 향한 최고의 소망과 희망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 여러가지 고난 속에서 인내로 경주해 가는 오늘의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새(카이노스)롭게 했다는 표현은 시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말하는 표현이면서, 무에서의 새 창조가 아니라 옛 창조의 변혁과 갱신을 의미합니다. 이미 이사야서에서 약속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65:17-18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마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옛사람에서 새 사람, 새 피조물이 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롭게 되는 본을 부활의 몸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만물이 새롭게 새로운 차원으로 갱신과 변혁을 통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거룩한 새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할 수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새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백성,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 성령의 인침을 받아 거룩한 이들로 택함받아 정결한 신부로 살아온 모든 이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거룩한 신부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는 이제 21장 9절로 22장 5절에서 더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더이상 바다는 있지 않습니다. 이 바다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위협하는 혼돈과 악의 세력이 기원하는 곳이고 죽은 자의 장소이며 짐승이 출몰하는 곳입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더이상 이러한 혼돈도 악의 세력이 등장할 장소도 없는 곳입니다. 앞서 최후의 전쟁과 심판에서 이들 모두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당했기에 이제 악은 소멸과 사망의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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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비록 연약하고 허물투성이일지라도,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며 거룩함으로 단장해 가는 신부의 시간입니다. 세상의 죄악(바다)이 아무리 거세게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장차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우리가 주님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입게 될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의 순결한 싸움을 인내로 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과 이 땅에서의 삶은 개인적으로든 우주적으로든 그 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때는 반드시 우리가 살아온 대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우리를 위해 새롭게 갱신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따라 거룩하게 단장하고 살아온 이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의 영광은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오늘 우리 모든 삶의 자리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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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절 새 하늘과 새 땅은 만물을 새롭게하여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 하나님의 장막 - 임마누엘의 완전한 성취
새 창조의 핵심적인 복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며(임마누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것이며, 이 모든 약속은 역사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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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선포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는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임을 선언하시며,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시고, 이기는 자는 이 모든 것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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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장막이 함께하심 : 이것이 바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 역사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으나 죄로 인해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동행이, 광야의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 - 요 1:14)을 통해 결정적으로 회복되었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에서 장벽도, 휘장도 없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임재로 완성됩니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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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을 닦아주심 : 눈물, 사망, 애통, 아픔과 같은 ‘처음 것들’은 모두 죄의 결과이며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 사라지고 완전한 위로와 치유, 그리고 샬롬이 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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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와 오메가, 신실하고 참된 약속 : 하나님께서는 이 믿기 힘든 약속을 친히 보증하십니다. 자신이 역사의 시작(알파)과 끝(오메가)이심을 선언하심으로써, 역사를 시작하신 그분께서 반드시 당신의 계획대로 역사를 완성하실 것임을 확증하십니다. 이 약속은 인간의 가능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기에 절대적으로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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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받는 이기는 자 : 이 모든 영광을 상속받는 자는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것은 세상의 핍박과 미혹 속에서도 끝까지 어린 양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속은, 바로 깨어졌던 에덴의 관계가 회복되어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는 언약의 완전한 성취,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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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과 눈물, 사망과 애통, 곡하는 것과 아픔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 그 관계가 파괴된 것으로 오는 것들입니다. 이를 죄라고 말합니다. 악한 세력들은 이를 부추기고 미혹하며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거짓으로 속이고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죄를 짓고 넘어지게 합니다. 그렇게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유기와 심판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으며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망에 거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긍휼히 여기사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새 창조를 이루어 가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약속과 선택으로 세워가십니다. 마침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부름받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며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하시는 생명수 샘물(하나님의 생명으로 함께하는 삶) 곧 생명의 떡이신 주님, 생명의 말씀을 먹으며 모든 악의 무리와 죄악을 이기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긴 자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곧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합니다. 이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오셨고 그분이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을 내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고, 생명의 떡과 빵이 되셔서 우리로 먹고 살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고 새 백성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골1:13). 이를 성경은 수차례 여러가지 그림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출애굽과 광야의 진 가운데 성막과 요단을 건너는 것과 솔로몬의 성전과 출바벨론이 그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참 성전으로서 건물 성전의 기능을 폐하시고, 이제 우리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에 함께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 표현들은 모두 약속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언약을 말씀하시고 마침내 이루십니다(6절). 또한 이를 이루시되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하신 것은 모두 약속에 신실하신 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시작하신 분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도,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것을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시간을 초월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도 포함해서). 그러니 이 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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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의 위대한 선포처럼, 그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닦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흘리는 모든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눈물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위로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자는 오늘의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장차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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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새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 백성, 새 피조물, 새 사람,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 된 줄 믿습니다. 모든 만물을 새롭게 완성하실 날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새롭게 태어나서 새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 이 땅에서 왕노릇 하며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를 살고 있음을 또한 믿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과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살아갈 이유를 얻고, 득세한 악의 무리가 여전히 흥황한다 할지라도 이미 패한 자들의 발악으로 알고서 이긴 자 예수님을 따라 이긴자의 편에서 이긴 자로 살아가야 함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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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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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절 새 하늘과 새 땅에는 거짓을 행하는 자는 더이상 거할 수 없는 곳입니다.
: 둘째 사망 - 거룩한 성 밖의 운명
새 창조의 영광스러운 약속과 대조적으로,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거짓과 죄악에 속하기를 선택한 자들은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둘째 사망, 즉 불못에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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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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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에 있는 자들의 목록 : 이 목록의 죄악들은 단순한 도덕적 실패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모든 죄악의 뿌리에는 ‘믿지 아니하는 것’이 있으며, 그 결국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 즉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게 속한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두려워하는 자들(Cowardly) : 특히 목록의 맨 앞에 나오는 ‘두려워하는 자들’은 핍박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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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망 : 첫째 사망이 모든 인간이 겪는 육체적 죽음이라면,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의 완전하고 영원한 분리, 즉 지옥의 형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영원한 고통 속에 거하는 상태입니다. 새 창조가 하나님과의 완전한 ‘함께 있음’이라면, 둘째 사망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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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록들은 모두 음녀 바벨론이 주는 포도주를 마신 자들이고, 용과 짐승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진 자들이며, 땅에 속한 자이고, 불순종한 이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모두에게 있으나 특히 더 두려워하는 것은 죄인된 인간이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되심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악에 속한 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이긴 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악의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두려워 떨며 끌려 가는 것도 두려워하는 자들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면서 살라신 뜻을 따라서 선을 행하지 않고 흉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도 그렇습니다. 살리는 일, 사랑하며 생명을 나누고 전하는 이들이 오히려 말과 행실로 사람을 죽이는 일들, 하나님 앞을 가로막고 실족하게 하는 이들, 우리의 언행심사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넘어지게 하는 일들 모두 살인하는 일입니다.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섬기면서 양다리 걸친 신앙이 영적 음행과 간음하는 이들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것도 그렇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음행입니다. 내일 일은 우리가 알 수 없으며(하나님의 주권적 영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 알려주시며 한 걸음씩 등과 불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을 점을 치고 하나님 아닌 것에 요행을 바라는 일들 모두 점술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하나님 또한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조정하고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신앙의 행위들도 우상숭배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음행과 점술은 모두 우상숭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곱가지(두려워함, 불신, 흉악, 살인, 음행, 점술, 우상숭배)는 모두 거짓의 아비 거짓말하는 자 마귀의 미혹과 유혹에 동조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행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재앙과 교회의 증인된 삶을 통해서도 끝내 돌이키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이들에게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위해 예비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둘째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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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중한 경고는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본래 이 목록에 속하여 둘째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운명에서 건짐 받아 새 예루살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 진리를 아는 자는 더 이상 죄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삶의 열매가 이 끔찍한 목록이 아닌,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감으로써 우리가 진정 하늘에 속한 자임을 증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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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라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열매들이 아니라 위에 열거된 열매들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잘못 심겨진 것이고, 잘못 붙여진 것이며,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또한 그 열매를 보고 땅에 속한 자인지 하늘에 속한 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로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우리 곁에 있는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경배하고 사랑하고 다스려야 할 것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랑받든지 주어야 할 대상이며, 돈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우리가 잘 다스리고 관리하며 사용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뜻하신 때로,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그 길로 행하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삶을 합당하게 살고 예배하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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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약속에 신실하신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생명수 샘물로 우리를 나라와 백성과 자녀삼으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의 여정 속에서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분별없이 처신했던 삶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매일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이긴 자로 살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게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 된 아들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새롭게 하신 그 놀라우신 은혜를 늘 기억하며
새백성에 합당한 거룩한 길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거룩한 신부로
온전히 살아가기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참된 위로와 기쁨의 근원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기 원합니다
부디 거짓의 아비에 속아 어리석은 언행심사로
행하지 않도록 영적 분별력과 용기있는 믿음 주옵소서.
그래서 정결한 신부로 흠없는 제물로
합당한 예배자로 오늘을 즐거이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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