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12-21 악의 세계에 대한 재앙 - 일곱 대접 3

: 아마겟돈의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최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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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대접 재앙의 마지막,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재앙은 인류 역사의 대단원을 향해 치닫습니다. 이 장면들은 세상의 종말에 있을 어떤 SF 영화 같은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가 직면한 영적 현실과 장차 임할 최종 심판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적 환상입니다. 여섯 번째 대접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세력이 어떻게 결집하는지를 보여준다면, 일곱 번째 대접은 그 모든 세력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심판의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교회가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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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6절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도둑같이 임하고 깨어 있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 여섯째 대접 - 마지막 영적 전쟁을 위한 결집

사탄의 ‘불경한 삼위일체’는 마지막 때에 거짓 이적과 기만적인 선동(더러운 영)으로 세상의 모든 권력을 규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지만, 성도는 이에 동요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 믿음의 옷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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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물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이어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사탄의 삼위일체)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즉 귀신의 영이 나옵니다. 이 영들은 이적을 행하며 온 천하의 왕들을 미혹하여,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모읍니다. 이 긴박한 상황 속에,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삽입 경고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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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유브라데 강 : 유브라데 강은 고대 세계에서 침략을 막는 자연적인 경계선이었습니다. 이 강이 마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아무런 방해 없이 총결집할 수 있도록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영적으로는, 교회가 세속화되어 세상과의 거룩한 경계선이 무너지고, 악한 영향력이 교회 안으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오는 위험한 상태를 경고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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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 : 애굽의 두 번째 재앙이었던 개구리는 부정한 동물의 상징입니다. 이 귀신의 영들은 마치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처럼, 세상에 각종 거짓 이념, 선전, 가짜 뉴스와 같은 기만적인 소리를 퍼뜨려 사람들을 미혹하고 선동하는 ‘악마적 프로파간다’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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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 이곳은 실제 지명(므깃도 언덕)에서 유래했지만, 문자적인 전쟁 장소가 아닌, 하나님과 그분을 대적하는 세상 세력 간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영적 대결이 벌어지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진실은, 사탄이 자신의 승리를 위해 왕들을 모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수들을 심판의 장소로 모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그 배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스스로의 멸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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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자기 옷을 지키라” : 이 긴박한 우주적 전쟁의 묘사 한가운데, 주님께서는 갑자기 시선을 돌려 당신의 교회에게 개인적인 경고와 약속을 하십니다.

  • 깨어 있으라: 주님의 재림은 ‘도둑 같이’ 임할 것이기에, 영적으로 잠들지 말고 항상 깨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 자기 옷을 지키라: ‘옷’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과 거룩한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롬 13:14), 그 옷을 순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는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처럼, 악인의 꾀가 아닌 오직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길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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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브라데 강은 동방의 왕들 즉 앗수르와 바벨론 파르티아 제국과 같은 큰 나라들이 이스라엘로 쳐들어 올 때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었습니다. 이 강이 범람할 때나 평소에는 군대가 쉽게 건널 수 없기에 경계가 되지만 이 강이 마른 재앙이 임했다는 것은 결국 침략자들이 거침없이 이스라엘로 쳐들어 올 수 있는 경계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는 경계가 모호해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변했다기 보다는 결국 교회가 세속화되어서 세상과의 구별이 모호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과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공동체인데 그 맛을 잃어버리면 결국 세상과의 구별이 불분명해 집니다. 이것은 결국 영적 타락과 세속화 되어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사탄의 삼위일체 곧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곧 귀신의 영이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을 모읍니다. 그래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모입니다. 유브라데 강과 마찬가지로 아마겟돈도 실제 이스라엘의 지명 중 하나이지만(므깃도나 갈멜산등의 지명으로 봅니다) 그 의미는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아마겟돈 전쟁(16:12∼16), 백마 탄 재림 예수님과 두 짐승 전쟁(19:11∼21),  사탄의 곡과 마곡 전쟁(20:7∼10)은 모두 동일한 전쟁입니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도 어떤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최후 심판의 날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사탄은 이미 패한 자인데 그들이 아무리 세상의 왕들을 규합한다고 한들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지만 이미 지는 싸움을 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악의 이적과 꾀임에 결코 마음을 빼앗기거나 부정에 물들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끝까지 이들과의 경계를 두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온 천하 임금들을 모으고 전능하신 이 곧 하나님의 큰 날(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교회를 대적하려 하지만 결국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니 교회는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재림에 일어나는 최후의 전쟁입니다. 곧 심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천년왕국의 끝에 있는 전쟁입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 후의 전쟁입니다. 더불어 이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교회를 향하여 이 시기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교훈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서 그리고 교회를 향하여 주님도 사도들도 늘 깨어 있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은 때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는 옛사람의 옷을 벗고 적극적으로는 바른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 주의 말씀을 따라 깨어 살아가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미 시편 1편에서도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하면서 계속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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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수많은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들이 울어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문화를 통해, 정치를 통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곳으로 우리를 모으려 합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거룩한 ‘옷’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우리의 시선은 아마겟돈의 싸움터가 아니라, 도둑 같이 오실 우리 주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함을 지키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바른 말씀의 교훈을 믿고 따르며 지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복있는 자의 길이며 형통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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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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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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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1절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리 큰 권세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 일곱째 대접 - “되었다!” 하나님의 최종 선언과 세상의 붕괴

마지막 대접이 쏟아질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역사의 종결을 선언하시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워진 인간의 모든 교만한 문명(바벨론)은 전무후무한 재앙 속에서 완전히 붕괴되고 철저히 심판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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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자, 성전의 보좌로부터 “되었다!”라는 큰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자 번개와 우렛소리와 함께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일어나,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집니다.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습니다. 모든 섬과 산도 사라지고, 한 달란트나 되는 거대한 우박이 쏟아지자, 사람들은 그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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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It is done!) : 이 음성은 하나님의 보좌, 즉 우주적 통치의 중심부에서 나옵니다.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며 외치신 “다 이루었다!”(요 19:30, 헬. 테텔레스타이)와 신학적으로 연결됩니다. 십자가에서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면’, 이제 일곱째 대접으로 심판과 새 창조를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구속 계획이 마침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악이 역사를 주관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최종적인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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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쏟아진 대접 : ‘공중’은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사탄의 통치 영역으로 묘사됩니다. 마지막 대접이 바로 그곳에 쏟아진다는 것은, 악의 세력의 근원지를 직접 타격하여 그 통치 기반을 완전히 파괴하는 심판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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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한 지진과 바벨론의 멸망 : 가장 큰 지진으로 모든 도시와 문명이 붕괴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 올린 모든 교만한 바벨탑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큰 성 바벨론’(로마 제국과 그 후예들)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악을 ‘기억하셨다가’ 마침내 맹렬한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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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대신 비방 : 이 최종적이고 압도적인 재앙 앞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회개가 아니라 또다시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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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인과 나팔과 대접 모두 동일하게 우레와 음성과 지진과 우박등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을 때 쓰는 표현들입니다. 차이점은 일곱 대접에는 다른 모든 심판을 포괄하고 요약하는 뜻으로 다른 심판 시리즈보다 훨씬 더 강도를 강조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물리적인 현상이기보다는 그 심판의 강도가 크고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큰 성 바벨론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등의 총체적인 멸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은 세상 자체에 대한 종말적인 심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멸망한 이유는 결국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표현을 통해서 그들이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니 모든 것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14장 8절에서 바벨론 멸망을 말했고, 이제 17-18장에서 완전하고 상세하게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다시 언급합니다. 그만큼 세상의 헛된 왕들과 우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큰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거나 깨닫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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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망은 이 땅의 그 어떤 ‘큰 성 바벨론’에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소망은 오직 “되었다!”라고 선언하실 하나님의 나라에만 있어야 합니다. 이 마지막 심판의 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죄악을 ‘기억하실’ 때, 성도에게는 그분의 ‘기억하심’이 구원과 상급-※상급(賞給;상을 주다)이고 상급(賞級;상의 등급)이 아님-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과 기도, 그리고 신실함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무너질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오래 참으시고 기회를 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기에 잠시 간과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런다고 우리가 긴장의 끈을 늦추고 그런 세상에 섞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늘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기보다는 남탓 합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지어주신 여자 때문이라 했고, 여인은 뱀 때문이라 핑계하며 남탓하고 결국 자신의 죄를 부인합니다. 앞서 흑암의 재앙에서도 그랫고, 애굽의 아홉번째 재앙때에도 그랬습니다. 부디 우리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오거든 우리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고, 그래도 알 수 없거든 이 일을 통해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한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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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새 백성 삼으시고

거룩한 주의 백성에 합당한 그리스도로 옷입게 하시며

날마다 주의 말씀을 통해서 이긴 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깨어 살아갈 수 있는 경고의 말씀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패역한 세대와 구별된 백성으로 살기 바라시는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세상과 구별없는 언행심사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경고와 징계가 있을 때에

속히 회개하고 그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는 마음과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력을 허락하옵소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개구리 같은 더러운 귀신의 영들이 온갖 이적을 행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뜨리려해도

(엡 6:11-17)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게 하옵소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게 하옵소서. 

이는 악한 날에 우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오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갖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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