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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02:08-17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 서머나, 버가모 교회

환난 속의 부요함과 타협을 이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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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고난받는 교회와 세상의 유혹 속에 있는 교회를 동일한 사랑과 권위로 돌보십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한 편지에는 책망 없이 오직 위로와 격려, 그리고 영광스러운 약속만이 가득합니다. 반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편지는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것을 칭찬하시면서도,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타협의 죄에 대해서는 날선 검과 같은 말씀으로 엄중히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이 두 편지는 시대를 넘어 모든 교회가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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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에게 (2:8-11)>

# 8-9절 환난과 궁핍 속, 참된 부요함을 아시는 주님

우리 주님은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사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신 분으로서,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당신의 백성이 가진 참된 영적 부요함을 아시고 인정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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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는 주님은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시지만, 실상은 그들이 부요한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또한,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비방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심을 분명히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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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 서머나(‘몰약’이라는 뜻) 교회가 겪을 고난과 순교를 암시하듯, 주님은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밝히십니다. 이는 교회가 겪게 될 고난이 결코 끝이 아니며, 주님께서 이미 죽음을 정복하셨기에 그를 따르는 교회 역시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것임을 보증하는 가장 강력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이신 주님의 손에 교회의 운명이 달려있지, 로마 황제나 그 어떤 박해 세력의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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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과 궁핍, 그러나 실상은 부요한 자 : 서머나는 부유한 항구도시였지만, 그 안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때문에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칭 유대인’들의 비방과 고발은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당국에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나 반역자로 고발하여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시켰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의 눈에 보이는 가난함 뒤에 숨겨진 그들의 영적인 실상, 즉 ‘부요함’을 보십니다. 그들의 부요함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었습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가 영적 상태의 척도라고 착각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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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유대인, 사탄의 회당 :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자칭 유대인’이며 ‘사탄의 회당’이라고 준엄하게 선언하십니다. 이는 인종적 비난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입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약속의 핵심이신 메시아 예수를 거부하고 그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의 목적에 봉사하는 집단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참된 유대인, 참된 이스라엘은 혈통이 아닌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선택과 예정을 통해 된 자들입니다(롬 2:28-29). 일부 유대인들은 뇌물 등을 통해 황제 숭배를 면제받는 특권을 누리며 세상과 타협했지만, 서머나 교회는 그러한 타협을 거부하고 고난을 택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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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요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은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중심에 있는 믿음과 소망을 보십니다. 혹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가난하고 실패한 자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바로 그런 우리를 향해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적인 갈급함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잃어버린 채 영적으로는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기억하고, 오직 여호와를 목자로 삼음으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하는 참된 부요함을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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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절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관을 주리라

주님은 장차 닥칠 고난의 깊이와 기간을 모두 아시고 그 한계를 정하시는 주권자이시며, 끝까지 믿음으로 충성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상급으로 약속하시고 둘째 사망의 해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신실한 구원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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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장차 받을 고난, 즉 마귀가 그들 중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받게 할 것이며,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는 것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그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하신다. 그리하면 생명의 관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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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받을 고난과 그 한계 : 주님은 고난을 면제해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고난이 닥칠 것을 분명히 예고하십니다. 그 고난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활동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십일 동안’이라는 기간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시험받았던 기간(단 1:12-15)을 연상시키며, 고난이 영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짧고 제한된 기간 동안만 허락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고난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성도에게는 큰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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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 : 이 명령은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는 의미와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셨기 때문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는 말씀처럼, 우리의 궁극적인 두려움의 대상은 세상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이 말씀을 붙들고 화형의 위협 앞에서도 "내가 86년간 그분을 섬기는 동안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나의 왕, 나의 구주를 모독할 수 있겠는가?"라고 외치며 순교의 길을 걸어감으로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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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관과 둘째 사망 : 충성의 대가는 ‘생명의 관(면류관)’입니다. 이것은 운동 경기 승리자에게 주어지던 월계관처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둘째 사망은 육체적 죽음 이후에 오는 영원한 형벌, 즉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인 지옥을 의미합니다(계 20:14). 이기는 자, 곧 그리스도께 속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결코 영원한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가장 확실한 구원의 보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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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순교적 신앙을 요구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려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고 조롱하며 핍박합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고난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주님께서 그 끝을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모든 유혹과 핍박을 이기고도 남을 능력이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끝까지 충성할 때, 주님께서 예비하신 생명의 관,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과 소망이야말로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가장 부요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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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에게 (2:12-17)>

# 12-13절 사탄의 권좌, 그곳에서도 지킨 믿음

우리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교회를 위협하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 사탄의 악한 시도를 말씀의 능력으로 심판하시고, 가장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당신의 충성된 증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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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에 편지하시는 주님은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소개하신다. 주님은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아시는데, 그곳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험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이 주의 이름을 굳게 잡았고, 주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그들 가운데서,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것을 알고 계심을 상기시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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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 : 주님은 자신을 심판의 권위를 상징하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분으로 드러내십니다. 이 검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회를 보호하고 악과 싸우는 무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내의 불순종과 타협을 심판하는 도구입니다. 버가모를 지배하는 로마 총독은 ‘칼을 소유할 권리’, 즉 사형 집행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생사와 심판의 궁극적인 권세가 바로 당신께 있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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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 : 버가모는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시아 속주 최초로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신전이 세워졌고, 거대한 제우스 제단이 도시를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카이사르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주님은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사탄은 정치, 종교, 문화를 통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고 숭배를 요구하며 교회를 위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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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된 증인 안디바 :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버가모 교회가 믿음을 지킨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주님은 특히 ‘충성된 증인 안디바’의 순교를 언급하시며 그를 기억하십니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은 ‘모든 것에 대항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이름처럼 그는 사탄의 권좌에 맞서 싸우다 죽임당한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한 개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신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신실한 싸움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계시며 귀하게 여기신다는 감동적인 증거입니다. 안디바의 순교는 교회에 두려움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버가모 교회가 그 믿음을 본받아 굳게 서도록 격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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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역시 수많은 ‘사탄의 권좌’가 존재합니다. 돈, 권력, 쾌락,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충성을 요구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때로 안디바처럼 모든 것을 대항하는 외로운 싸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작은 충성을 기억하시고, 마침내 모든 사탄의 권좌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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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7절 타협의 교훈을 버리고 말씀으로 승리하라

주님은 교회의 순결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세상과 타협하여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모든 가르침을 미워하시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말씀의 검으로 친히 심판하시지만, 이기는 자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생명(감추었던 만나)과 영광스러운 신분(흰 돌과 새 이름)을 약속하시는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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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버가모 교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발람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에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속히 그들에게 가서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경고하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주님께서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어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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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 - 타협의 유혹 : 책망의 핵심은 ‘타협’입니다. ‘니골라 당’(백성을 정복하다)은 히브리어 ‘발람’(백성을 삼키다)의 헬라어 표현으로, 결국 같은 사상을 가리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정면으로 저주할 수 없게 되자, 모압 여인들을 통해 이스라엘 남자들을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뜨려 스스로 무너지게 했습니다(민 25장, 31:16). 이처럼 버가모 교회 안에도, 황제 숭배나 길드(조합)의 우상숭배적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지혜로운 처신’이라 가르치며 세상과 타협하도록 유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과 삶을 분리시켜,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에서는 성공을 위해 우상에게 절하는 이중적인 삶을 정당화했습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재물과 세상의 인정을 더 사랑하는 영적 간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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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 주님은 이 치명적인 죄에 대해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이것은 심판 중에도 베푸시는 은혜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만약 돌이키지 않는다면, 주님은 ‘입의 검’으로 ‘그들과’(타협하는 자들과) 직접 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교회가 스스로 정화하지 못할 때, 주님께서 친히 개입하여 악을 제거하시겠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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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

  • 감추었던 만나 - 이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만나와 대조됩니다. 또한 우상에게 바쳐졌던 화려하지만 더러운 음식과도 대조됩니다. ‘감추었던 만나’는 오직 이기는 자, 즉 세상의 방식을 거부하고 믿음을 지킨 자만이 맛볼 수 있는 하늘의 신령한 양식, 곧 그리스도 자신과의 생명력 있는 교제를 상징합니다.

  • 흰 돌과 새 이름 - 고대 사회에서 흰 돌은 법정에서의 ‘무죄’ 판결, 경기에의 ‘참가 자격’, 축제에의 ‘입장권’ 등을 의미했습니다. 이 모든 의미를 종합하면, 흰 돌은 세상으로부터 정죄받았던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최종적으로 ‘의롭다’ 인정받고, 천국 잔치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음을 보증하는 징표입니다. 그 위에 기록된 ‘새 이름’은 이긴 자에게 부여되는 새로운 신분과 영광을 나타내며, ‘받는 자 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는 표현은 주님과 성도 사이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깊고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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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발람의 교훈’과 동일한 유혹에 직면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신앙의 원칙을 조금씩 타협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직장 생활의 어려움 앞에서 불의와 타협하며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명하십니다. 세상에 살되 세상에 물들지 않고,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감추었던 만나’, 즉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이 알 수 없는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마지막 날 ‘의롭다’ 인정받는 흰 돌과 영광스러운 새 이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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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처지를 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난 속에서 두려워하여 

충성된 종으로 온전히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비방과 어려움 앞에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믿음을 저버리며 너무도 쉽게 타협했던 

저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발람의 교훈을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듯, 

세상의 방식을 따르고 

하나님보다 재물과 성공을 더 사랑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 

저희에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생명의 면류관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구원의 은혜를 소망하며 

오늘의 환난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또한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의 약속을 붙잡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순결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힘입어 나아갈 길을 분별하고, 

충성된 종으로 죽기까지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교회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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