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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15-32 거짓 선지자들의 최후

*

여호와께서 꾸준히 선지자들을 보냈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합과 시드기야와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은 벌하여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임을 전합니다. 

*

# 15, 21-23절 여호와께서는 거짓 예언과 어리석음에 대해 분명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배민들 가운데서 예언 활동한 아합과 시드기야에게 심판이 선포됩니다(21a절). 이들은 야훼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한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웃의 여자와 간음하는 망측한 짓을 저지르기까지 했습니다(23a절).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떠들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파렴치한 짓을 범합니다. [신학적 위선과 윤리적 타락이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신학적-윤리적 악행에 대하여 바로 야훼께서 증인이 되어 고발하십니다(23b절). 야훼께서 이들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 [물론 간음죄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화형에 처하여 저주거리를 삼게 하실 것입니다(21b-22절).

바벨론에서 활동하는 예언자에 관해 말하는 15절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재앙을 선포하는 16-20절에 직접 연결되지 않습니다.

예언자 아합과 시드기야는 이곳에만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아합의 아버지 골라야도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드기야의 아버지 마아세야는 제사장 스바냐의 아버지 이름(21:1; 29:25; 37:3)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양자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제사장 스바냐가 예레미야에게 호의적 태도를 보이기에 시드기야의 아버지와 스바냐의 아버지는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본문은 예언자 아합과 시드기야가 선포한 예언의 내용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이들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처형되었음은 이들의 예언이 바벨론에 해로운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아마도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과 유배민들의 조기귀환을 예언하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합과 시드기야는 저주의 대명사가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어리석게 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명령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이며, 부지와 불신앙은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죄인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귐과 앎과 신뢰가 쌓여 갈 때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 16-20절 여호와의 심판은 완고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에 남겨진 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보다 나은 바가 있어서 유배를 면한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겨졌다고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완전한 파멸이 준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흑사병)이 이들을 세상 나라들 가운데로 쫓아내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으로 만들 것입니다(18절). 지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이처럼 비참한 운명에 넘겨지는 이유는 이들이 야훼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9절). 이들은 야훼께서 거듭 보내신 예언자들의 선포에 귀 기울이기를 거절했습니다. 20절은 바벨론 유배민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이들에게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명합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과 바벨론 유배민들의 대비는, 유배민들이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아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이들에 의해서 하나님 백성의 정통성이 계승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통칭되는 여호와의 심판은 몹쓸 무화과(18절)처럼 되고,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되고, 포로된 나라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될 것이라 합니다. 이 모든 원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 때문입니다. 이들을 위해 꾸준히 선지자들을 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했다고 말합니다. 제의적, 습관적으로 뵙고 오는 것과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 가운데서 하나님과 사귐에 있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습니다. 

*

# 24-32절 거짓 선지자들이 오히려 참 선지자를 모함합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보낸 편지는 얼마간 긍정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28절). 바벨론 유배민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예언자 스마야는 이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예루살렘 성전 감독관인 제사장 [시드기야의 아버지와 다른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cf. 21:1; 29:25; 37:3)에게 편지를 보내(24-25절) 예레미야를 체포하도록 요청합니다(26-27절). 제사장 스바냐는 스마야의 편지를 예레미야에게 읽어 줍니다(29절). 스바냐가 어떤 이유에서 예레미야에게 편지 내용을 알려 주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야훼의 말씀을 받아(30절) 다시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편지로 스마야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31-32절). 야훼께서는 스마야가 당신에 의해 보냄을 받지 않은 거짓 예언자임을 밝히시며(31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임할 재난을 선포하십니다(32절).

느헬람 사람 스마야(24절)는 주전 597년의 제1차 유배민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활동한 예언자로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유배지에 정착하여 살라는 예레미야의 편지에 분개한 것을 보아(28절) 스마야는 유배민들의 조속한 귀환을 선포했던 것 같습니다(cf. 28:3-4). 느헬람은 가족의 이름보다는 지역 이름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그 장소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스마야의 편지 수취인인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 제사장은 시드기야가 통치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열 두 번째에 속하는 고위 제사장이었습니다(cf. 52:24). 아마도 대제사장 스라야의 대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여기에만 언급되는]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성전 관리의 책임을 맡은 자였습니다(29:26a). 자칭 예언자들을 붙잡아 기둥에 묵고 목에 칼을 씌워 벌하는 것이 그의 임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스라야와 스바냐는 후에 점령군에 의해 체포되어 림나로 끌려가 처형됩니다(52:24-27). 제사장 스바냐는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함께 시드기야에 의해 야훼의 신탁을 묻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파견됩니다(21:1; 37: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이로 희망적인 인간의 전언이 아닙니다. 쓰고 아프더라도 종국에 진정한 희망과 긍정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께 향한 완고한 불순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지금 당하는 학대가 정말 고난과 학대와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온갖 수모의 대상일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투명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않기를

언행심사, 신행일치읭 삶을 잘아가도록

선지자 노릇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붙잡아 주시고

주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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