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21-39 천국의 양식을 먹는 사람들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신 예수님에게 가나안 여자가 자신의 딸을 치료해 주시길 간구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이 여인의 큰 믿음을 보시고 딸을 치료해 주십니다. 다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렀을 때에 큰 무리들을 치유하시고 또 칠병 두어마리 생선으로 무리를 먹이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 21-24절 천국의 양식은 참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이 먹습니다.
두로와 시돈으로 가신 예수님에게 가나안 여인이 찾아와 자신의 딸이 귀신 들려 있다 하여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만 예수님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 여인이 소리지르니 보내라 말씀하시자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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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와 시돈은 이방 지역입니다. 이곳에 일부러 예수님이 들어가신 것은 유대인들로서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여인이 먼저 찾아와 예수님께 긍휼을 구하시는데 예수님은 소극적으로 대응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소란스러운을 잠재우고자 그를 보내라 하는데 치료해서 보내라는 것인지 꾸짖어서 보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위기는 꾸짖어 보내라는 듯 보입니다. 아직 이방인들에게 대해 유대인이 생각하는 것이 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 이방인을 위해서는 오지 않았다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하지만 여인이 예수님을 주(세 차례),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고, 예수님께 절하기까지 한 모습들과 급기야 그녀의 믿음의 고백을 칭찬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이 여인을 통해서 장차 복음과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앞의 말씀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앞서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제자들에게 먹을것을 주라 하신 떼처럼 제자들의 한계 앞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기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상적인 메시아의 도래가 유대인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을 짚어 말씀하신 후에 이 여인의 믿음을 따라 치유의 역사를 행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에까지 미칠 것임을 보여주고, 예수님이 모든 열방의 주가 되실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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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천국을 잃어버린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여인이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일부러 먼저 가신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주님을 멀리 떠나서 방황하면서 광야에서 길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하여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삶의 방향들을 잡아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참 이스라엘 집으로 부르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잃어버린 주님을 멀리 떠난 잃은 자들이었고, 이제는 집을 찾아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복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수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잃어버린 양들이 마치 탕자가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어 많은 이들을 먹이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천국의 양식을 먹게 된 것입니다.
# 25-28절 천국의 양식은 믿음의 사람들이 먹습니다.
예수님의 소극적인 대응은 제자들만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면서 다시금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앞서 제자들에게 했던 이야기보다 더 극단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십니다. 자녀(이스라엘)의 떡을 취하여 개들(이방인)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이런 말씀을 듣고 옳다 인정하면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그녀의 소원대로 딸을 치료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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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는 말은 이방인의 정체성을,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드러나게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을 재확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면서 천국의 양식을 먹는 것이 자신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고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이방인도 예수님이 긍휼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졌으며,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이스라엘에게만 국한 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오히여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이라고 했던 이들이 오히려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양식을 먹는 사람들이 됩니다. 결국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이 주신 그 양식을 먹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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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놀라운 믿음이 우리에게 본이 될 수 있지 더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이 두번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천국의 양식을 먹이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함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시며 믿는 자에게 구원의 복과 천국의 양식을 먹여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천국의 양식을 먹여 배부르게하고 영원히 주리지 않게 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반응이 있어야겠습니다.
# 29-39절 천국의 양식은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 먹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서도 몰려온 무리들을 고쳐주시니 많은 무리들이 온전하게 됩니다. 이에 무리들이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굶겨 보낼 수 없음을 피력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광야에서 무리를 먹일 떡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금 가진 떡을 확인하여 일곱개의 떡과 생선 두어 마리를 얻습니다. 다시금 무리를 명하여 앚게하시고 축사하시며 데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어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 가득히 채워집니다. 그렇게 먹은 인원이 또한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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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숫가 산에 올라온 큰 무리들은 모두들 온전치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모두 회복시켜서 말하고 걷게하고 보게하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전에 영적 소경되었던 이들의 상태에 있던 지도자들과 달리 이들은 이제 주님을 바로 보고 알게 된 것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놀랍게 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들은 주님과 함께한 사람들이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천국의 도래를 수용하고 경험한 무리들입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여기 주님께 몰려온 이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30절, 31절, 32절) 모두 온전치 못합니다.
회복된 무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긍휼의 마음을 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금 천국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는데 제자들은 아직 이 무리를 먹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은 어쩌면 그들의 믿음일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가진 믿음과 천국에 대한 깨달음과 메시아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부분들의 이해가 아직 무리들을 초대하고 먹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시금 그들에게 있는 것을 축사하시면서 도다시 떡을 떼고 나눕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무리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일곱광주리 가득합니다.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며 변화시키는 역사도 충분하고 넉넉할 것임을 보여주는 일곱광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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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온전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렇게 주님의 긍휼을 입은 이들이 회복되고, 또 주님이 주시는 떡으로 배불립니다. 먹고 남은 광주리가 일곱광주리 가득함은 이렇게 이방인들을 향한 구원의 역사도 충만하고 충분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떡을 먹음은, 만나를 먹음과도 같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떡은 곧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며, 주님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향한 계명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닫고 또 그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말씀 살음이 바로 예수님이 주신 떡으로 배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떡을 먹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도 주리지도 않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석 유영모선생님은 말씀을 ‘말의 씀’, ‘말의 숨’, ‘말의 섬(서다 立)’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말을 쓰고 말을 숨 쉬고, 말을 세우는 존재입니다. 한자에서는 목숨과 말씀을 명(命)으로 나타냅니다. 명은 숨이면서 하늘 말씀(천명)이고 이루어야 할 명령(사명)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말씀을 세우는 것(安心立命)이 사람의 본분이라 했습니다. 말씀 살음은 ‘말씀으로 산다’, ‘말씀을 사뢰고 말씀을 드린다’, ‘말씀을 불사른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뢰는 것이 말씀을 불사르는 것이고 말씀으로 사는 것이므로 내용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말씀 살음은 말씀을 쓰고 숨 쉬고 세움입니다. 사람과 천지만물이 말씀으로 지어졌고 말씀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고 말씀 자체가 영원한 생명입니다. 말씀 삶음에서 정신과 물질의 깊이가 드러나고, 말씀 삶음이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살음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살음 이것이 영생입니다. 마치 비가 와서 샘이 솟듯이 말씀 살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의 양식을 먹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천국의 양식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다는 것은 곧 그 말씀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냄이 곧 살음이 영생입니다. 이 말씀을 먹고 사는 것은 천국의 백성답게 거룩한 백성으로 언행심사가 변화되고 성숙되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먹이시는 이 천국 양식으로 배부르고, 그 말씀으로 살아내고, 그렇게 살아낸 말씀을 나누고 영광돌릴 수 있길 바랍니다.
# 기도&찬양
예수를 만난 자 새로이 눈뜨고 예수를 아는 자 그 말씀 들으리
예수를 따르는 자 어느 곳에 있어도 주의 은혜를 담대히 선포하리라
예수를 만난 자 새로이 눈뜨고 예수를 아는 자 그 말씀 들으리
예수를 따르는 자 어느 곳에 있어도 주의 은혜를 담대히 선포하리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낸 만큼 자유를 얻으리 살아낸 만큼
예수의 맘으로 사랑한 만큼 평안을 얻으리 사랑한 만큼
예수를 만난 자 새로이 눈뜨고 예수를 아는 자 그 말씀 들으리
예수를 따르는 자 어느 곳에 있어도 주의 은혜를 담대히 선포하리라
예수를 만난 자 새로이 눈뜨고 예수를 아는 자 그 말씀 들으리
예수를 따르는 자 어느 곳에 있어도 주의 은혜를 담대히 선포하리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낸 만큼 자유를 얻으리 살아낸 만큼
예수의 맘으로 사랑한 만큼 평안을 얻으리 사랑한 만큼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낸 만큼 자유를 얻으리 살아낸 만큼
예수의 맘으로 사랑한 만큼 평안을 얻으리 사랑한 만큼
주님의 뜻대로 살아낸 만큼 자유를 얻으리 살아낸 만큼
예수의 맘으로 사랑한 만큼 평안을 얻으리 사랑한 만큼
https://youtu.be/Ovt7oEgc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