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03:19-39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절망중에도 주님이 소망되신 이유, 그런 주님의 선하심을 믿기에 잠시 멍에를 메더라도 잠잠히 기다려야 할 이유는 여호와는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 한줄묵상 : 고통중에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묵상하다보면 주님의 성실하심과 본심을 알게 되고, 그러므로 더욱 잠잠히 주를 바라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9-24절 여호와는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고 성실하심이 크시기에 더욱 주를 바라봅니다.
여호와의 심판으로 인한 재난을 당한 후에 낙심되었으나,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소망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하심이 우리를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고백하며 여호와를 기업으로 신앙하며 앙망하게 됩니다.
*
멸망당한 예루살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의 상황들은 고초와 재난 쑥과 담즙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수없이 되새기며 깊이 낙심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주께서 하신 일을 곱씹고 복기해 보면서 묵상하다보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알게 되어습니다. 이미 여호와의 진노가 진멸할 가나안을 향해서도 긍휼을 베푸셨듯이, 패역한 유다를 향하여서도 남은 자들을 허락하시고 다 멸하지 않고 남은 자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날을 맞이하여 주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하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면서 여호와의 기업되심을 바라며 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
**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징계의 채찍을 맞을 때 때로 그 고통으로 주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징계는 진멸이 목적이 아닙니다.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원래 이스라엘과 언약의 관계에 있어서 우상숭배와 불순종 그리고 반역의 죄에 대해서는 진멸이 당연한 결과일진대 주님은 그런 약속을 하시고서도 이스라엘을 향하여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 은혜 앞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오늘 여전히 주님이 성실하심을 고백하면서 주를 바라봐야 하는이유는 여전히 우리 삶의 소망이요 기업이 주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
아침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에 주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맛보고 누릴 수 있는 복된 날이길 원합니다.
25-33절. 여호와는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사 우릴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간절히 찾는 이들에게 만나 주시니 잠잠히 여호와를 기다림이 좋습니다. 아직 부족할 때에는 마땅히 연단되어야 할 일이 있기에 주님은 멍에를 메우게 하십니다. 그 앞에 기꺼이 자기를 부인하며 나아간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연단은 우리를 기억하시는 주님이 인자와 긍휼로 허락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은혜 안에 거하길 원하십니다.
*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들에게 선하게(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지금 이해할 수 없는(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경고하신대로 이루어진 일들로 인한 징계를 받는) 상황에서 주님의 때와 방식을 따라 이루어질 때까지 잠잠히 여호와를 바라는 것이 좋습니다. 젊어서는(아직 부족하고 어리석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 이 멍에는 사명 이전에 우리가 조금 더 연단되고 성숙해 가야할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양육하셔서 연단하고 훈련하여 군사로 온전한 자로 세워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입을 땅의 티끌에 대며(고생과 수고와 간구)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간다면 주님의 계획하심이 이룰 날이 있기에, 도한 주님이 변함없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뺨을 돌려대고 치욕으로 배불리라는 것은(30절) 나의 욕망과, 욕심을 내려 두고서 자기를 부인하며 하늘의 가치를 따라 살아 가라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당하는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으로 배불리라는 것은 녹녹한 일이 아니겠지만 그것이 세상과 다른 주님의 통치에 합당하게 가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는 조롱과 핍박이 있기에 힘을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31절에서 주님이 영원하도록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근심하게 하시지만 그것이 영원하도록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에 따라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여호와의 본심이 아닙니다.
**
주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고 믿는 만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지 못한다면 조급해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주님이 지우신 멍에를 벗어버리고, 내 뜻 내 방식 내 고집대로 성급히 결과와 산물을 만들어 내려고 편법을 동원하고 세상과 다르지 않은 길로 행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걸림이 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것들을 더더욱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무시하게 됩니다. 지금 주께서 허락하신 그 길을 가는 동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충분히 주님의 나라, 주님의 통치, 주님의 뜻을 따라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백성 다른 길로 행하는 평범한 범인일 뿐입니다. 주님은 본심은 우리가 이러한 헛된 길에서 돌이켜 영원한 나라 영광의 나라의 왕되신 주님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연단과 사명의 길을 인내로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역시 주께서 우리에게 인자하심을 따라 긍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주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믿고 지금 허락하신 멍에를 즐거이 지고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잠잠히 주의 때를 기다리면서 주께서 허락하신 길을 잘 감당해 나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34-39절 여호와는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고 공평과 정의로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명확하게 죄악이라는 것을 주님의 말씀의 다림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생사화복의 주권자이십니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공의로 벌을 받게됩니다.
*
주님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고무줄 같은 법의 잣대, 힘없고 소외된 자들의 송사와 인권, 그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현실들에 대한 굽은 상황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공의로우셔서 그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시고 거룩함과 부정함 의와 죄악됨 등에 대하여 분명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행한대로 보응하시고 악은 그 모양이라도 용납지 아나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당연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거룩한 모습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일을 닮아가길 원하십니다.
**
말씀 앞에 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분별할 수 없습니다. 생사화복, 옳고 그름의 기준은 오직 주님의 말씀 곧 우리 주님이 기준입니다. 그 앞에서 억울한 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인이 형통을 기뻐할 이유도 없고, 우리이 수고에 대하여서도 안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합당한 삶을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
지금 당하는 대부분의 환난과 핍박은 주님을 위해 우리가 당한다기보다 왜곡된 전통과 잘못된 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과 신학이 세상과 너무도 구태 의연하여서 신앙과 삶이, 믿음과 행함이분리된 신앙을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면서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나아갈 때에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과 관계와 내용도 주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사, 합당한 예배 되는 줄 믿습니다.
* 기도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 아버지
종에게 허락하신 고초와 재난의 시간들을
주께서 허락하신 연단으 시간임을 믿고
신실하신 주님을 앙망하면서 주로 말미암아 살고 죽는 다는 믿음 갖고
오늘도 주어진 길을 경주해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아직 부족한 존재임을 믿고 허락하신 멍에들을
주께서 지우신 것임을 믿으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을
지금은 근심하고 어려우나 주의 본심이
이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심을 믿으며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묵상하며 인내로 경주해 가게 하옵소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알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권한들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거룩하게 세워가는 일에
모든 주권을 가지신 주님을 따라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의 면전에서
날마다 거룩한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