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0:01-10 광야학교의 차임벨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와 전쟁의 상황에서 주고받을 신호를 위한 은나팔 제작과 신호체계에 따른 행동 방식에 대한 규례를 정해 주시며 약속해 주십니다.
1-7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인에 민감한 영적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은나팔 둘을 만들어서 회중을 소집 하거나 진영의 출발, 모임과 지휘관들의 소집, 동쪽과 남쪽의 행진 나팔, 떠나는 나팔 소리등에 대한 장단과 강약과 고정에 따른 규례들을 정해 주십니다.
시작과 끝, 모임과 흩어짐, 행진과 소집에 대한 나팔 소리의 신호체계가 다 다릅니다. 나팔을 부는 이도, 그것을 듣는 지휘관과 백성들도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자칫 공동체에서 뒤쳐지거나,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진행과 소집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너무 늦게 모임에 나아 온다거나, 아예 소리를 듣지 못하여 소집에 응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이들을 염려하게 하고 기다리게 하고 급기야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의 유익에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되는 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잘 들어야 하지만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이웃들을 챙기는 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돕는 일들이 그래서 더욱 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공동체는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요 가족입니다. 서로 챙겨주고 섬기고 이끌어 주어야만 모두가 무리 없이 광야를 헤쳐갈 수 있습니다.
무리 가운데는 분별을 잘 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영적 감각이 둔하거나 어려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관하심을 깨닫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가족들이 서로 협력하고 섬겨주어야만 합니다. 서로 경쟁하듯 이기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서로 도우면서 함께 나아가도록 도우면서 세워가야 합니다.
지금 나는 소집과 진군 그리고 머무름과 기다림에 대한 하나님의 사인을 민감하게 잘 듣고 반응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혹여 나의 영적 무지가 개인적인 부작용을 넘어서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공동체와의 약속된 시간, 하나님과 만나는 묵상과 예배의 시간에 제 때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주님을 바람 맞히는 꼴이 됩니다. 주님과 약속한 그 묵상의 시간, 예배의 시간, 기도의 시간, 섬김의 시간, 일하는 시간 그리고 주님의 나라 이뤄가기 위한 헌신의 시간등등을 민감하게 깨닫고 반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길 원합니다(학교다닐 적의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 직장과 교회를 다니는데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니 어릴적 습관훈련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8절 목회자의 유통기한은 배움을 멈추는 때입니다.
여호와의 소집과 진행 나팔을 부는 사람은 나팔을 불 수 있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담당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인 곧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며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르게 분별하는데는 도움의 사람들이 필요하기에 주님은 그런 이들을 붙여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맡은 자들의 직무가 유독 중하고 귀합니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경거망동하지 아니하며, 공동체의 질서와 안녕과 평화를 유지하고 동시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사명을 갖고 즐거이 감당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말씀을 중심으로 잘 정립해 나갈 때 공동체를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어리석은 지도자의 모습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지금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와 사회의 리더들의 수준이 성도와 민중을 선도하고 이끌만한 수준으로 매일 자라가기 위해서는 배움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무르익어 갈수록 고개를 숙이듯 겸손하며 온유하게 이끌고 품을 수 있는 이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옹졸하고 외곬수 적이며 편협하고 이기적인 어른이 됩니다. 자신의 사명과 함께 한계도 인정할 수 있어야 사람도 세우고 동역자도 세우고 함께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늘 배움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의 말은 나팔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이의 말은 ‘나발(아비가일의 남편? 또는 어떤 말의 가치에 대해서 폄하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함)’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글과 가르침이 사람을 세우고 변화와 성숙을 가져오게 하여 옳은데로 이끄는 나팔수가 되길 기도합니다.
9-10절 주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들으시고 응답 하시며 기억해 주십니다.
약속의 땅에서 대적들을 치러 나가 나갈 때 나팔을 불면 여호와께서는 기억하고 구원하실 것이며, 희락의 날과 절기와 초하루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나팔을 불면 여호와께서는 역시 기억해 주시리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힘들고 어려울 때에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고, 기쁘고 슬플 때 찬양하면 함께 기뻐해 주시는 주님,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쁨에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 것은 이 모든 슬픔과 기쁨의 순간에 하늘을 향한 외침을 주님이 들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응답이 우리의 기대와 생각과 대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가장 최고의 것으로, 최적의 때에 최상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나 뿐 아니라 우리와 온 세상의 모든 것의 주권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기도한 이후에 변하지 않는 현실에 낙망하고 있다면 오늘 이 말씀으로 다시금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겠습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면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인내 하겠습니다. 마침내 동토에 봄이 오고 꽃이 피듯 응답하시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을 확신하며 주님을 향하여 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말씀하시는
그 나팔 소리를 잘 듣고 반응하는 영적 감각을 갖게 해 주옵소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소임을 겸손히 그러나 신실하게 감당케 하옵소서
배움의 열정과 지혜와 능력을 허락해 주옵소서
기도하되 낙망치 아니하며 인내로 경주해 갈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