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1-54 광야학교 새학년 새출발
출애굽후 일년 시내산에서의 계약과 성막을 만들고 새롭게 시작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으로 깨어진 관계를 정립하고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여정을 준비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약속하신대로 회막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주시고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고, 이스라엘보다 앞서 길을 예비하십니다.
1-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군대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워진 회막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계시를 모세를 통해서 주십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주재이심을 보여주고 모세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 지금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듣고 이끄심을 받아야 하는 자리는 말씀의 자리 곧 묵상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하시고 이끄시며 주신 사명을 재확인하고, 허락하신 은사를 따라 감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준비하고 실행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회막에서 주신 명령은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들을 진영별로 각 지파의 우두머리를 택하여 함께 계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대로 세우고 계십니다. 멀게는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이 광야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여정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름받은 이들은 부르신 자를 기쁘시게 해야하며, 전쟁에 임하는 자 처럼 이 광야에서 깨어 있어야 하며, 싸워야 할 대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긴장을 늦춰서도 안되고, 행군 나팔이든 진격나팔이든 그 음성을 잘 듣고 가야 하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세 혼자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복수의 지도자들을 세워서 함께 공동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협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많은 수를 혼자 감당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지도자 한 사람의 전횡에 공동체가 휘둘리지 않도록 붙이신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공동체요 가족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독불장군처럼 해서도 안되고 함께 각자의 책임을 잘 감당해 나가야만 낙오되는 이 없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갖고, 지금 세워진 지도자들도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사명의 무게를 잘 감당해 가야 할 것입니다.
5-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어떤 형태로든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모세와 함께할 사람들의 이름들에는 각자 의미하는 뜻이 있습니다.
[엘리술(רוצילא) 나의 하나님은 반석이시다/ 슬루미엘(לאימלשׁ) 하나님은 나의 평강이시다/ 느다넬(לאנתנ) 하나님은 베푸신다/ 엘리압(באילא) 나의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엘리샤마(עמשׁילא) 나의 하나님은 들으신다/ 가말리엘(לאילמג) 하나님은 나의 보상이시다 / 바기엘(לאיעגפ) 하나님은 나의 보배이시다/ 엘리아삽(ףסילא) 나의 하나님은 충족시키신다/ 드우엘(르우엘)(לאוער) 하나님은 친구이시다/ 스데울(רואידשׁ) 전능하신 자는 빛이라/ 수리삿대(ידשׁירוצ) 전능하신 자는 나의 반석이시라/ 암미삿대(ידשׁימע) 전능하신 자는 나의 혈육이시라/ 브다술(רוצהדפ) 반석은 구원하신다/ 암미나답(בדנימע) 나의 백성은 숭고하다/ 암미훗(דוהימע) 나의 백성은 영화롭다/ 아비단(ןדיבא) 나의 아버지는 재판장이다/ 아히에셀(רזעיחא) 나의 형제는 도움이다/ 아히라(עריהא) 나의 형제는 악하다/
이이름들은 하나님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금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고 보호하시며 구원하실 것이라는 의미들을 담고 있습니다. 세워진 지도자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이름들의 의미를 아는 이스라엘과 독자들은 임마누엘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에 담긴 이름값하며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값, 성도로서의 이름값, 그리고 주님의 자녀로, 새백성으로, 새피조물로, 교회로, 성도로, 목사로, 장로로, 자녀로, 신부로, 제자로, 전도자로, 교사로….. 수많은 사명의 이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불려질 때 동시에 사명을 기억하며 충성되이 감당하고 있는지요?
17-46절 계수된 이름은 하나님의 군대에 소속되는 축복과 동시에 책임을 동반합니다.
계수된 12지파의 총 수는 603,500명입니다. 입애굽때 70명이던 이들이 이제 출애굽하고 보니 그 수가 실로 하늘의 별처럼 많아졌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했던 기도와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했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숫자로 보여주고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이름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있는 것이고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있는 것이며 앞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공동체에 함께 있으며, 혼자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동행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학창시절 새학기 때면 새로운 반에서 출석체크할 때 가끔은 출석부에 없는 친구도 있고, 출석부에 있는데 없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친구는 다른 반으로 가야했고, 있는데 없는 친구는 지금 어딘가에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있어야 할 그 나라에 제대로 있는 것이며, 주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제 이곳에서 공부하고 훈련하고 배워가며 광야학교 교장이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새학년 새학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날마다 허락하시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거듭나 새피조물되어 새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매일매일이 주님의 기억과 보호와 인도 속에서 때를 알고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감당해야 할 일을 기억하며 주님과 함께 함을 온전히 누려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에 함께 있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일해가는 가족들입니다. 출석 부르는 그 자리에서 주님이 부르실 때 대리출석 하지 말고 잘 응답하며 새 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47-54절 레위지파의 선택과 책임은 새백성이 새출발하는 이유와 사명을 보여줍니다.
레위지파는 지파의 계수에 넣지 말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보호하고 관리하며 운반하는 임무를 맡기신다고 하십니다. 이들에게는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이 성막의 거룩을 훼손하지 못하는일을 담당합니다.
레위지파를 계수에 넣지 않고 성막을 관리하는 일을 하라는 언급이 민수기의 서두에 나오는 것은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광야 여정의 승리가 결국 거룩을 지키는 데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택한 레위지파의 모습은 결국 레위지파만의 특권과 책임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 광야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레위지파는 원래 야곱의 아들 레위였을 때 세겜족속을 칼로 망하게 해서 아버지 야곱의 분노를 자아냅니다. 그런데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레위지파의 칼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이들의 칼이 잘못 쓰여지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의 칼을 선용하셔서 하나님의 거룩을 보호하는 지킴이와 완충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해서 이스라엘은 레위지파를 통해서 성막의 거룩을 훼손하여 죽지 않게 했고, 레위지파는 성막 가까이에 살면서 군사적인 임무는 감당하지 않지만 함부로 칼을 쓰지 않으면서 거룩하신 하나님 곁에 늘 있게 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레위지파나 이스라엘을 보면 결국 우리를 교회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이 다시한번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원래 레위지파처럼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이들이었지만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지금 이모습 이대로 주님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품은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아니하며 한편으로 거룩을 지키는 일에 깨어 있으면서 마침내 축복의 통로로서의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기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광야학교의 새백성으로 날마다 새출발할 수 있도록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이 부르신 그곳에 있기 원하오며,
부르신 그 뜻을 기억하여 충성된 종이길 원하며
정결과 거룩의 지킴이와 실천이가 되어서
이 광야여정을 온전히 그리고 끝까지 종주해 갈 수 있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