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28-37 마리아의 슬픔과 예수님의 눈물
마르다를 통해 자신을 부르시는 주님 앞에 나아간 마리아의 슬픔에 예수님도 함께 비통해 하시며 눈물 흘리십니다.
28-30절 슬픔 중에도 목자의 음성에 바로 반응하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마르다가 가만히 마리아를 불러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자신을 기다리시는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지금도 세미한 음성 가운데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때이며, 바로 반응해야 할 때입니다. 들어야 할 때 듣고,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는 믿음이 마침내 주님을 면전에서 뵐 수 있는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를 부르시는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반응하며, 말씀대로 일어나 나아가는 역사가 있는 묵상을 기대합니다.
31-32절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덤 앞이 아니라 생명의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가는 줄도 모르고 위문하던 무리들은 그가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그 발 앞에 엎드리며 주님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며 호소합니다. 무덤 앞 곧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참 생명과 위로가 있는 주님앞이 우리가 엎드려야 할 곳입니다. 절망적인 현실, 사방이 막힌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리가 우리가 날마다 달려갈 곳입니다.
33-35절 우리의 아픈 현실에 긍휼과 눈물로 함께 아파하시며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우는 마리아와 그들을 위문하러 온 이들이 곡하는 것을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시면서 또 눈물을 흘리십니다. 나사로를 사랑하시기에 흘린 눈물이며,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기에 흘린 눈물이며, 아직 자신을 제대로 알고 믿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시는 눈물이며, 그런 실존 가운데 있는 인류를 향해 괴로워서 흘린 눈물이며, 죽음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며, 앞으로 있을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입니다. 주님의 눈물이 우리에겐 기쁨과 희망, 영생과 영광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대 지금 주님의 눈물을 보았는가?
36-37절 주님의 사랑을 직면하고도 우리의 굳어진 앎이 왜곡된 반응을 낳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통한 눈물을 보고서 무리들은 둘로 나뉩니다.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아는 사람과 왜 그를 죽게 두었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주님에 대한 무지는 피리 소리에도 춤추지 않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지 못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 못합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위문하러 왔으면서도 참된 위로자를 오히려 비난하면서 정작 위로 받아야 할 이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합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불의와 부패와 부정으로 아파하는 많은 이들의 절규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은 자와 사랑을 바로 아는 자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참된 위로를 전해야 할 곳을 돌아봅니다.
* 기도
참된 위로자 되시는 주님,
슬픔 중에도 주님의 부르심에 속히 응답하고,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눈물을 기억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