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53-8:11 용서와 사랑의 주 예수님
음행중에 잡힌 여인의 처벌에 대해 예수님께 시험하자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 당신의 메시아 되심과 새언약의 주 되심을 드러내신다.
솔로몬이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자가 자기 아들이라고 하는 소송을 지혜롭게 처리한 사건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십계명을 받아 돌아온 뒤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의 주 되시는 예수님과 새언약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다.
7:53-8:2 기도의 능력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뤄가시는 예수님
계속되는 예수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위협과 도전에 많은 이들이 떠난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다녀오신 뒤로 변함없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사역을 감당하신다.
예수님의 사역 여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뤄가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위협과 시험과 미혹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따라도 문제고, 또 많은 이들이 떠나서도 문제이지만, 어떤 이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면서 호시탐탐 문제의 빌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에 이러한 도전과 위협을 견디기 위해서 주님은 변함없이 감당하신 일이 있었다. 감람산은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 곳으로서 주님께서 주기적으로 기도하러 가시는 곳으로 보인다. 결국 이 산에 오르신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가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주님은 다가오는 시험과 위협들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십자가 곧 영광의 길을 묵묵히 가실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성전으로 돌아와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백성들을 향하여서 가르시치는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대면, 만남, 교제, 인도, 다스리심, 힘 주심, 지혜와 능력 주심등의 성령충만함 없이 우리가 지금 이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로지 기도의 유 외에는 우리가 가야 할 이 신앙의 여정, 묵상의 여정, 광야의 여정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주님은 광야시험에서 승리하는 법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셨고 몸소 보여주셨다. 그러니 지금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과의 대면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는 성령의 충만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실패한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과의 대면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우리도 묵상과 기도의 자리에 변함없이 가는 한 주님의 승리에 대한 보장이 우리에게도 주어진다는 사실에 다시금 힘을 얻는다.
3-6a절 신앙과 율법을 빙자해서 폭력을 범하며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사람들 가운데 세우고서 예수님에게 고발하면서 모세의 율법에 돌로치라 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인지 묻고 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간음에 여인만 끌고 오는것도 문제고, 그런 여인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 끌어온 자체만으로도 여인에게는 치명적인 폭력이다. 율법에 의하면 이 여인은 미혼이지만 정혼한 상태로 다른 남자와 간음한 것으로 보인다(대략 14-5세초 추정한다). 간음에 대해서는 돌로 치라는 명령이 율법에 나와 있지만 저자는 이 일이 고발한 조건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시험하는 행위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일 예수님이 처벌을 막고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율법을 어기는 일이 되기에 이들에게는 더없이 예수님에게 치명적 결함을 안길 수 있다. 또 처벌하라고 할 경우 당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유대인 자체적으로 사형판결을 집행할 수 없기에 로마법에 걸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로마법을 거역하고 위배한 자로 정치법이나 내란선동자등의 죄목으로 고발할 수 있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판단하기 어려운 시험을 지금 예수님께 제시하고 있다.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거룩하게 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고 부정한 일들을 서슴지 않는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신앙과 율법을 빙자해서 자신들의 권력과 탐욕을 지키고, 저항하는 이들을 억누르며, 율법을 주시고 완성하러 오신 메시아마저 이 율법을 가지고 죽이려 하는 일을 율법을 알고 가르치며 살아야 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서 이와 같이 종교권력과 기득권과 지도자의 전횡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과 가정과 공동체의 생명을 파괴하는 일들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성경대로 지키고 산다고 자부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주님이 아니고 이용할 대상에 불과하며, 율법도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이용할 수단에 불과하고, 연약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소모품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인격적인 선포,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도덕과 상식적인 윤리, 사람들에 대한 인격적인 관계가 제대로 지켜진다면 오늘 이토록 교회의 비인격적, 비인간적, 비사회적이며, 비윤리적인 전횡은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6b-9절 용서와 사랑의 새언약을 세우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갑자기 땅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시고 그들에게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또다시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신다. 그러자 양심에 가채을 느낀 어른들로부터 젊은이들까지 하나둘 다 떠나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게 된다.
어떤 글씨를 쓰셨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분분하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십계명 돌판을 직접 새기시던 그 스스로 있는 분이 이제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시면서 심비에 새길 새언약을 세우고 계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신 것도 지금 이 여인이 간음했다고 하는데 실상 하나님 앞에 먼저 간음한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이라는 것이다. 금송아지를 만들거나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는 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한다. 이미 부패하고 왜곡된 신앙을 고수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 간음의 죄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면서 문자적 율법을 고수하면서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예수님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서 죄없으신 주님만이 심판의 자격이 있으신 거룩하신 분이심을 역설적으로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이 다 떠나간 것이다.
주님을 모른다고 하거나, 주님을 알면서도 섬기지 않는 것, 주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주님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는 일들 모두 영적 간음이다. 지금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 자신이 모든 소유의 주인행세 하는 것, 주님 아닌 것을 주님처럼 섬기고 있는 것, 주님을 우상처럼 내 맘대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모두다 간음하고 있는 것이다. 속히 이러한 모든 데에서 떠나야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지금 주님 앞에 고백하며 내려놓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10-11절 자유함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기대하시는 예수님
모두 떠난 후에 예수님은 여인에게 정죄하지 않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다.
정죄하지 않는다고 여인의 죄가 없다고 묵인하시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님은 그 여인의 모든 죄를 알고 계신다. 또한 그 죄가 충동적인 죄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지속해 온 죄인 것도 아신다. 그런데 이제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용서를 통해서 죄에서 돌이키게 하신 것이다. 이 죄의 짐은 예수님께서 대신 지실 것이다(여인을 돌로 치려는 이야기로 시작된 8장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이는 여인의 죄의 짐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유케 됨을 얻었으니 가라는 것이다. 우리의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 죽을 죽음을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에게는 죄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용서는 열매를 기대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스스로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또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역시 내가 받은 용서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 피한 우리에게 이런 자유함이 있다. 그런 그리스도를 피하면 우리는 죄에 매여 살게 된다.
* 기도
새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
변함없이 기도의 능력을 통해 주님을 따르길 원하오며
이성적 지각과 상식적인 윤리와 신앙의 기본을 지켜가고
새언약의 원리인 용서와 사랑을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적 간음의 죄에서 돌이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자유케 하신 주님의 은혜를 따라 용서와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