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7:14-24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
예수님은 초막절에 자신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긴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교훈의 출처와 뜻이 보내신 분의 뜻에 다른 것임을 밝히고, 안식일에 병고친 일이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온전케 한 것임을 밝히신다.
14-15절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의 가르침의 능력에 합당한 반응은?
물과 빛의 축제인 초막절에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셔서 천국 복음, 영생의 복음, 살리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놀라며 배우지 않고 어떻게 이런 가르침을 전하는지 놀랍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성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빠진 가르침, 축제를 만드신 분의 뜻이 사라진 기쁨없는 잔치, 구태의연한 가르침과 능력을 잃어버린 설교등등에 습관처럼 의무감으로만 제사하고 강론하던 곳에서 참 빛되시며 생명의 주가 되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의 가르침은 듣는 이들을 놀라게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제 새백성을 세우기 위해 생명을 주시고 회복케하고 온전케 하는 말씀이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뒤이어 이러한 말씀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밝히시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이 말씀도 분명 살아계신 영생의 말씀인데 과연 그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 안에 이러한 놀람과 주님을 만나고 알아가는 감격이 살아 있을까요? 어느새 냉랭하고 감동없이 습관처럼 입하고 있진 않는지… 말씀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다른데 가 있고, 믿음도 부족하고, 하나님 아닌 것으로 더 즐거워하면서, 정작 우리 영혼이 주리고 목마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약과 같은 세상의 것으로 충만해서 정작 영혼이 병들어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또한 성육신하신 말씀이 눈앞에 있는 데 그런 예수님을 향하여 출신여부와 교육수준으로 평가를 하려는 유대인들의 모습에는 우리시대 학벌과 여타 출신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16-18절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예수님의 불의가 없는 참 말
예수님의 가르침은 보내신 이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들은 그 말씀의 참됨과 거짓됨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는 이들은 자기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불의가 없는 참 말을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보냄을 받은 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내신 분의 뜻을 가르치고 행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참된 가르침과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는 이들은 자기 영광을 구하기에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말씀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였다면 당연히 예수님을 말씀을 알아보고 믿고 영접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만나려면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아야 하고, 진실해야하고, 마음에 거짓이 없어야 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말씀이 어려운 것보다도 우리 삶이 분주하여 관심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시간을 쓰고, 하나님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경우에 당연히 말씀과 거리가 멀고 그러므로 가끔 말씀앞에 가도 그 말씀이 잘 보이지도 이해되지도 감동도 아무런 역사도 기대하기 힘든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주님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불의한 자입니다. 결코 말씀을 들을 수도, 들리지도, 듣지도 않게 되어 만나만 먹다 말 없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주는 양식인 주님을 알고 만나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19-24절 안식의 참된 의미를 성취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자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안식일에 병고치는 일에 대해 문제 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모세가 안식일에도 율법을 범하지 않으려고 할례를 행했는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온전하게 한 것으로 왜 문제를 삼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율법의 정신,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판단하라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정작 그 정신 곧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하며, 살리는 율법으로서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사람을 더욱 옭아매고 자유를 잃게 만드는 죽은 율법을 고수하는 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위협하고 죽이려하는 마음을 품은 이들이 십계명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들이 율법을 어긴다고하자 어불성설이라면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느냐고 대듭니다.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는데 그 날이 안식일이어도 할레를 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할례가 안식일에 예외로 허용된다면 자신이 한 사람을 온전하게 건강하게 하는 일은 당연히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로 인정되는 것이 맞다고 하는 논리입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행하신 자신의 일에 대해 출신과 교육여부등으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이 한 말씀으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 유대인들이 공의보다 외모로만 판단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만을 구하고, 율법의 정신보다 문자에만 매여 있다. 내 성경 지식이 옳다고 말하기 전에, 신앙고백이 정통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말씀의 열매를 보여주십시오(매일성경 도움글 중에서)
* 기도
성육신하신 말씀, 우리를 살리는 말씀의 주님
오늘 우리의 묵상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묵상을 하고
참됨과 거짓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본질과 정신 곧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정죄와 자고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히 빚어지는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달게 받고 듣고 순종케 하옵소서.
또한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교만하지 않고,
말씀의 열매를 맺는 묵상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