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6:16-29 예수님의 일, 하나님의 일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무리들을 피해 예수님께서 산으로 간 사이 제자들만 가버나움으로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고생하다 예수님께서 구해 주심을 경험한다. 바다 건너편까지 무리들은 예수님을 찾아 오는데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말씀하신다.
16-21절 예수님과 함께하는 곳이 우리가 당도해야 할 땅입니다.
예수님은 새출애굽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본문의 여섯구절 속에 담겨진 이야기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구원받아야 할 인간의 실존)의 이야기들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캄캄한 밤에 그곳에서 오랜 시절 잔뼈가 굵어진 이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파도 앞에서 방활 때 주님이 오셔서 두려워 말라 하시고 곧 가려던 땅에 이르게 합니다. 물위를 걸어오신 주님을 본 제자들이 두려워하자 주님은 다시한번 자신의 정체성을 밝힙니다.(나다 에고에이미). 그러자 제자들이 기뻐하며 영접하니 배는 곧 가려던 땅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출애굽을 통해서 구원하시며, 또한 우리로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풍랑(인생에 다가오는 문제들) 앞에 상식과 이성과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했을 지라도 제자들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혼돈의 바다)가 요동 쳐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릅니다.
주님의 부재에 어찌할 줄 모르던 이들, 정작 주님이 오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 따르자 두려워하던 제자들, 그러나 주님인 줄 알고 기뻐하며 영접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주님을 멀리 떠나 있을 땐 두려운이지만 다시 주님과 함께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새출애굽, 구원, 영생을 통해서 새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일들, 주님이 함께하는 생명,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얻도록 더욱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을 떠난 우리에게 올 수 없는 상태에서도 기적적인 역사로 먼저 다가오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과 함께 하는 바로 그곳이 우리가 가려던, 가야할, 가고 있는 땅입니다.
22-25절 우리가 바라고 찾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람들은 바다 건너편에까지 집요하게 예수님을 찾습니다. 왜 이렇게도 예수님을 찾으려고 할까요? 마침내 예수님을 찾고 나서는 ‘랍비’라고 부르면서 찾고 있습니다. 아직 주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이들은 표적을 보고 믿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예수님은 먹여주고 풍성하게 해주는, 그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시는 분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혹세무민하며, 우리의 필요와 탐욕을 채워주는 주님을 장사치들 마냥 팔아대며 선동하는 세상의 소리들에 함께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주님을 만나고 찾고 전하며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하고 따라야 할 길입니다. 주님을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으며, 또 말씀을 통해 얼마나 바르게 알아가고 만나고 있으며, 함께 나누며 전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처럼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무리들처럼 기껏 랍비를 찾는 일에 배를 타고 물을 건너 부지런히 주님을 찾는 이기적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26-29절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표적을 보고, 떡을 먹고 배부른 무리들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하십니다. 그 양식은 인자가 준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예고하실 때 인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예수님께서 새언약의 제사에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 양식을 우리에게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율법(유대인은 율법을 양식으로 생각함)을 지켜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지 묻습니다. 예수니은 그것은 ‘믿는 것’(현재형 동사로서 계속해서믿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양식으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니고데모도, 사마리아여인도, 왕의 신하에게도, 영생의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며, 살 양식이고, 영생을 얻는 길이며 주님의 일인 것입니다. 바로 이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는 일을 위해 요한은 이토록 예수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
새출애굽을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와 목적인 믿음 갖기 원합니다.
주님을 집요하게 찾는 이유가 썩을 양식을 위한 목적이라면 잘못된 열정을 버리게 하옵소서.
오직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새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