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3:22-36 보냄을 받은 이, 위로부터 오시는 이
가나 혼인잔치의 첫번째 표적 이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한 후에 단락을 마무리 하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본문입니다. 요한의 사역과 사명과 기쁨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정체성과 이에 합당한 반응으로서의 믿음과 영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2-26절 신앙은 경쟁이 아닌 동역과 동행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사역이 계속되는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례를 행합니다. 요한의 세례도 계속 진행중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례는 아직 회개에 해당되는 세례로 보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이 세례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보고합니다.
요한이 옥에 갇히기전까지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자 요한의 제자들은 원조논쟁과 비슷한 경쟁심이 발원하여 자신들의 스승이 문제제기를 해주길 바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동역자가 아닌 경쟁상대로 보고, 요한이 이전에 말한대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망각한 것입니다. 리더에게 가장 마음이 흔들리기 쉬울 때입니다. 따르는 이들이 추앙하고 높일 때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망각하고 오버하면서 교만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고 몰려올 때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나갈 때 교만해져서 영적으로 눈과 귀가 어두어져 버리고 말아서 주변의 이야기에 쉬이 휘둘리기도 하고, 주변의 조언을 귀를 닫기도 하면서 강퍅해진 심령이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지금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 설정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직분에 대해서도 세상과의 관계속에서 축복의 통로로서의 역할들 모두 한계와 분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주님의 자리에 서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신앙과 목회와 사역의 동역자들, 그리고 우리가 영원토록 따르며 주로 섬기며 유지해야 할 관계와 정체성을 잘 분별하고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27-30절 세례요한의 기쁨의 근원은 주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가 아니고, 보냄을 받은 자로 증언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은 신부를 신랑에게 인도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흥하고 자신은 쇠하는 것이 맞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기쁨의 근거를 예수님이 높아지실 때,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에,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증거와 순종과 기도의 삶을 살아갈 때로 표현합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이 기쁨의 근원을 온전히 누리며 자신은 이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기쁨은? 지금 내가 사는 이유는? 정말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이뤄가는 것인지, 주님과의 만남을 기뻐하는지, 주야로 즐거이 묵상하는 것인지, 함께하는 가족들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변화되고 온전해지는 것인지 돌아봅니다.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부르신 주님의 사명을 기억한다면 사랑과 은혜와 진리와 복음을 흘려보내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 그로 말미암아 주의 통치가 확장되어 가는 일들이 우리의 기쁨이어야 할 것입니다.
31-34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로 만물의 주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위(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로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심을 선언합니다. 위로부터 난 이(성령으로난 자)는 예수님의 증언을 받습니다. 하지만 위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면 예수님의 증언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이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를 본 자,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본 것을 증언하고, 이 증언을 말씀으로 전하실 때 성령을 통해서 전하시고, 듣는 이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증언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 충만은 성령충만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날마다 말씀앞에 설 때마다 성령님을 구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보고 듣는 모든 말씀을 깨닫게하고 수용하게하고 순종하게하고 믿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말씀앞에 설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믿어 순종케하사 영생을 살게 하옵소서.
35-36절 믿음은 순종의 삶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셔서 만물을 다시를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믿는 자 곧 순종하는 자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불신,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통치자 곧 하나님의 모든 통치권을 상속받은 만유의 주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 영생 곧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당연한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기에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이가 참 믿음의 사람이고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사는 영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삶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믿는다면 마땅히 주님의 말씀(통치)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불신이요 거역이며 주되심에 대해서 반항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 나아가는 자는 이미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살고 누리고 살아가는 위로부터 난 이이며, 성령의 사람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는 자입니다.
* 기도
만유의 주되시는 주님
저에게 주신 정체성과 사명들을 기억하고, 사람들의 추앙에 부화뇌동치 아니하고
기쁨의 근원되시는 주님이 높아지시는 것과 주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과
삶의 자리에서 증인으로서의 삶과 순종의 삶과 기도의 삶이 내게도 참 기쁨이게 하옵소서.
저는 새롭게 하사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참되심을 온전히 인치게 하옵시며,
입술로만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순종으로 열매맺는
참믿음의 소유자 되게 하옵소서.
약속하신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주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바로 믿고, 바로 행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