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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8 - 광인(狂人)이 되어야 사는 세상


기원전 1020년 즈음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난 후에 당시 왕이었던 사울의 시기를 사게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다. 급기야 적국의 땅인 블레셋으로 망명을 가는데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갔다가 신하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급히 침을  수염에 흘리며 대문짝을 그적거리면서 미친척하는 연극을 한다. 이에 아기스는 그를 데려온 신하들을 나무라면서 다윗을 쫓아내고 다윗은 이로 말미암아 생명을 건지게 된다.


기원전 203년 즈음 한나라 초기 모략가이며 한나라 대원수 한신의 세객이었던 괴철이라는 인물은 계책을 통해 한신을 도와 제나라를 얻게 했다. 한신에게 제나라를 가져다 준 괴철은 이후 천하 3분론을 주장하며 한신에게 한나라로부터 독립할 것을 권하지만, 한신은 한왕과의 정리를 내세워 거부했다. 그리고 괴철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미친 체 하여 한신을 떠나 폐인으로 행세하였는데 이를 통해 후에 한신의 숙청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1637년 병자호란에서 청은 항복한 조선에게 절대 복종할 것을 증거로 살려줘서 감사하다는 표시로 삼전도비(三田渡碑, 일명 치욕비(삼전도의 욕비(辱碑)라고도 불림)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결국 이 비에 세울 문구를 장유, 이경석, 이경전, 조희일에게 쓰라고 명이 내려진다. 장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을 억지로 쓴 후에 화병으로 곧 죽었고, 이경석은 어쩔 수 없이 써서 채택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가 죽은 후에 송시열에게 비난을 당한다. 이경전은 아파서 쓸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데 그렇다면 아픈 사람이 일할 수 없다고 관직에서 짤렸고, 조희일은 미친 척하고 글을 이상하게 써서 빠져 나온 후에 목숨을 보존하며 잘 살았다고 한다.


1927년 일제에 체포된 공산주의자 박헌영은 감옥에서 자신의 똥을 먹고 야밤 중에 자신의 부모 욕을 하는 등 미친 척하여 병보석으로 석방된다. 출옥한 이후에도 아내도 못알아 보고 정신과에서 회복 불가능한 판정을 얻을 만큼 철저하게 미친척 하며 일본의 감시를 피해 소련으로 도주한다. 또한 감옥에서도 그렇게 미친척 하여 죽지도 않고 전향서도 쓰지 않고 살아남아 유력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해방 후까지 산다. 우스개 소리로 후에 김일성이 그를 죽이려 할 때는 그가 미친 척 연기를 하지 않아서 죽었다고 한다.


며칠 전 서울대 최몽룡교수는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 편찬 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요구를 수락한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한 여기자를 농락하여 성추행 의혹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사의를 표하며 글도 못써보고 그만 둔다. 그런데 찾아간 많은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그의 얼굴이 희한하다. 너무 싱글벙글한다. 혹자를 이를 두고 그가 역사 교수이니 역사에서 배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미친척 하면서 이 난감한 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해석했다.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터뷰하는 그의 표정은 성추행범으로서의 부끄러움 보다는 뭔가 불편한 일에서 해방되는 것 같은 표정임에는 틀림없다.


정민이라는 작가는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에서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광기와 열정이 숨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무언가에 홀려 미친 듯이 그것만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에 통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 일에 파고드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 자신을 등질 지라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던 광기 어린 고집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그들의 업적이 살아 숨 쉬고 있게 했다고 말한다.


광인(狂人)이 되어야 무엇인가를 이루고 어떤 경지에 이르는 전문가가 될 수 있기에 광인이 되었는데, 그 자리를 유지하고 지켜가는 일도 광인(狂人)이길 요구한다. 그런데 진짜 미친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미치지 않고 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또다시 광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이 나라에 사는 것은 광인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무엇인가에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고, 때론 미친척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국이다. 언제 이 광기어린 정국이 멈출지 알 수 없으니 함께 광인(狂人)으로 미친 척, 미치게 살아간다. 그래야 사는 길이라고 하니까...


웃는사람 라종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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