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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18-30 천국의 비밀 2 _ 좋은 씨, 좋은 밭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시고 씨 뿌리는 비유를 해석해 주십니다. 씨는 천국 말씀이고 이 말씀을 받는 이들의 상태를 따라 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에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유와 맺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또한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비유를 통해서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무리하게 제거하지 말고 추수 때까지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 비유의 해석이 일의적이냐 중의적이냐에 대한 주장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예언서와 바울서신 등에서 비유와 이야기등에 대한 해석은 각 저자를 따라 일의적이어야 한다 아니면 여러가지 의미들을 해석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입니다. 비유를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라고 하지만 때로 그런 해석이 맞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맥과 전체적인 시각을 따라서 비유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되 중요한 맥을 놓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혜롭게 일의적 해석을 주로하되 중의적 의미들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 너무 소소한 부분까지 그 의미를 해석해 내려고 하며 무리하게 해석하다가 길을 잃고 본질이 아닌 부분에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을 어느 편,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랑, 위로, 경고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해석해 주시는 말씀에 대해서도 제자들과 밭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시각에서 이 말씀의 의미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씨 뿌리는 자 곧 하나님(예수님)의 편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천국 복음에 대한 것을 골고루 뿌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에 부정적 반응에 대한 말씀에서도 언급했듯이 결실하는 밭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통해서 제자들을 위로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밭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씨가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결실의 여부가 좌우 됨을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3장의 전후 문맥을 따라서 보면 예수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천국 비유의 전체적인 이야기들은 과연 누가 천국가족이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천국의 가족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 18-23절 천국 복음의 말씀은 모두에게 뿌려 줍니다.

많은 이들이 그 상태가 어떠하든지 우선 천국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을 전제 합니다. (19, 20, 22, 23절에서 두 천국 말씀을 듣습니다). 다른 것은 그들의 상태에 따라서 이 말씀의 씨가 자라고 열매 맺는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아 가는 길가의 밭,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과 박해에 넘어지고 마는 돌밭,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가시떨기의 밭은 모두다 결실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백배, 육십백, 삼십배로 결실하는 밭입니다.

*

앞서 씨를 뿌리는 자 곧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을 사랑하사 천국 복음을 듣게 하시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 대한 합당한 반응에 따라서 결실의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실까지 이르는 데에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가운데는 많은 시간과 어려움들과 유혹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신앙에서 천국 복음을 처음 접하는 이벤트가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후로의 오랜 광야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악한 이의 공격도 있고, 환난과 핍박도 있으며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들도 모두다 결실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결코 주님은 이러한 것들이 전혀 없는 형통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러한 어려움들을 경고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실하게 하시고 결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밭이 결국 사람마다의 성향들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또한 상당수는 우리 개개인 모두에게 이 네가지의 밭이 공존한다는 것이 우리를 긴장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복음을 우리가 우선 듣고 영접하되 우리의 신앙 여정 곧 천국 여정에 광야와 같은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침내 결실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의 이웃가운데 그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부지런히 이 천국 복음의 증인으로 증거하고 전파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의 사명일 것입니다.

*

모든 이들이 천국 복음 듣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부지런히 전하되, 생각처럼 그렇게 결실하는데까지 이르는 이들이 많지 않을지라도 낙망하지 말고 부지런히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증거하며 인내하며 살아가고, 오늘도 묵은 땅을 기경하면서 살고, 또한 만나는 이들에게 우리 삶이 천국의 비밀을 아는 증인으로 살아낸 말씀의 삶으로 천국 백성으로 살아내고 또한 살려내는 여정이길 원합니다.


# 23절 천국 복음은 듣고 깨닫고 결실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이며 결실하여 백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됩니다.

*

결실(열매)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은 전도의 열매를 많이 생각합니다. 물론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맺어야 할 열매는 회개 곧 변화의 열매 입니다. 우리 삶의 이유, 목적,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대부분 일차적으로 우리 내면의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 삶의 내면의 변화는 결국 말과 행동과 삶의 내용이 통채로 전환되고 변화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결실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씨가 뿌려지는 것도 그것을 듣는 것도 그리고 깨닫고 결실하는 것도 사실 우리 힘으로 안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주님을 선택하고 영접하고 고백하고 신앙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연조가 깊어가고 하남니을 알아가며 우리 삶의 여정들을 돌아보게 되니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이루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열매 맺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알게 되면서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왜 그토록 강조되고 중요한지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결국 성령의 도우심만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라 했고,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 떼를 쓰며 정성을 다하라는 얘기보다도 천국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하는 것이 성령을 통해서라야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고, 성령을 통해서라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과 그 마음과 계획을 온전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달은 말씀을 결국 살아내는 데에도 우리 힘과 능력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지혜라야 세상과 다른 거룩한 길로, 세상을 역류하는 하나님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우리의 언행심사에 좋은 열매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해야만 되는데 결국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가 부지런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이 기도입니다. 주님의 뜻을 듣고 깨닫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알게 된 그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우리가 쉬지 않고 할 때라야 마침내 우리는 결실하는 좋은 밭이 되는 것입니다.

*

안타깝게도 대부분 말씀을 듣는 자리에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깨닫는 것도 둔하고 결국 결실하는 데까지는 요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천국복음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얼마나 자주 귀 기울이고 그런 자리에 서는지 돌아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계시된 말씀인 예수님을 만나고 알아가는 자리, 기록된 말씀인 성령을 통해 역시 하나님과 우리를 향하신 계획을 듣고 인도받는 묵상의 자리,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해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의 자리, 천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을 주심을 믿고 우주 만물 가운데 역사하고 운행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영적 감각과 분별력을 갖는 민감한 영감을 가는 자리 모두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임하며 성령이 충만할 때라야 가능한 삶입니다. 오늘 우리의 묵상의 자리 기도의 자리는 분리된 자리가 아니라 함께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지금 나의 기도의 분량과 제목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을까요? 결실을 향하고 있는건가요?

# 24-30절 천국 복음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고 정죄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비유를 들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 = 씨부린 사람>이라고 설명하시면서 주님의 마음 또는 성격을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천국의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이에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야 하는지 묻자 곡식까지 뽑힐 염려가 있으니 우선 두고,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먼저 불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밭에 곡식도 자라지만 가라지 같은 것도 함께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여기서 먼저 가라지는 우리 안에 또는 교회공동체 안에 잘못된 가르침들이 있을 수 있고, 천국에 합당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원수에 미혹된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가라지를 바로 제거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십니다. 주님은 원수가 이렇게 한 것을 알고 계시지만 가만 두라고 합니다. 가라지를 제거하다가 곡식까지 뽑힐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심판할 날이 있음도 함께 말씀하십니다.

먼저 주님의 마음을 살펴 보면 주님은 우리 가운데 잘못된 가르침들이나 생각들 그리고 합당하지 않은 반응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고 그것이 원수된 것들의 미혹을 받은 결과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내버려 둡니다. 유기일 수도 있지만 회복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가라지가 곡식이 될리 만무하지만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즉각적인 징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주님의 오래참으시는 긍휼과 기회를 주시는 은혜라고 보여집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는 이렇게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이들을 향하여서 비슷한 대처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아야 하고 그들을 직접적으로 권면도 하지만 오래 참으라 하고 사랑으로 대하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혹여 그들이 돌이킬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 이들 중에서 바울 자신도 돌아온 자라는 인식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는 종들은 제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가라지를 뽑으려는 종들을 말립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자들은 잘못된 가라지를 정죄하고 제거하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좋은 곡식을 심고 자라게 하는 일들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영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것들을 비우고 제거하는 영성이라기 보다는 좋은 것을 계속 채우는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잘못된 것들을 좋은 것을 가득 채워서 자연스레 사라지게하거나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를 길러낼 때 잘못을 지적하면서 키우는 것과 잘하는 것들을 칭찬하고 좋은 것을 많이 경험하고 무엇보다 많은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지런히 회개한 이후로는 좋은 것, 즉 주님의 말씀과 관계로 채우고, 주님의 사랑을 많이 알고 경험하는 것으로 채워 가야 합니다. 매일 주님을 만나고 알아가며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부지런히 가서 듣고 깨닫고 채워가는 묵상과 예배와 기도의 자리가 필요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먹고 읽는 input을 결국 품게 되고 그 품은 것만큼 자라게 되고, 흘러 넘쳐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나라 곧 우리 주님은 우리 가운데 있는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잘못된 것일직라도 바로 징계하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기회를 주시고 돌이킬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시는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더불어 우리를 향하여 정죄하고 성급하게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오래도록 기다려 주십니다. 그런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정죄와 단절에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품고 기다려주고 사랑을 통해 감동을 주는 섬김을 통해 변화와 성숙과 돌이킴과 온전케 됨을 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결실과 심판은 주님의 주권에 있고 우리는 부지런히 물을 주고 사랑을 주고 좋은 것으로 채우며 자기 부인과 자기 희생이 있는 섬김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씨를 뿌리고 가라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시며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반응과 삶의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알곡일 때보다 가라지일 때가 훨씬 더 많은 연약한 존재임을 겸손히 기억하며 그런 우리를 향한 주님의 오래참으시는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주님이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과 인내로 경주해 가야 하는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 기도

천국복음을 우리에게 들려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아심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이른비와 늦은 비를 골고루 뿌려주셔서

사랑을 베푸시고 기회를 주시며 오래참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우리의 부족한 믿음과, 무지함과 믿음 없음,

그리고 환난과 핍박에 넘어지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앞에 너무도 연약한 저희를

주님 오래참으심으로 기다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이 모든 것들을 능히 이겨 낼

믿음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마침내 우리 삶이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땅으로 기경되게 하옵소서.

아낌없이 우리에게 천국복음을 살게 하시지만

우리 안에 자생하고 원수가 뿌린

가라지 같은 요소들이 우리 가운데 있을 때에

심판은 주님이 하실 것이니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잘 분별하고

정죄가 아니라 오래참으시는 주님의 긍휼 앞에

우리도 합당하게 반응하길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그 기회를 따라

부지런히 증거하고 살아가고

천국을 살아내는 자 되어

마침내 추수 때에

주님의 곳간에 거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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