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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15-35 심판 2 _ 환난의 징조와 인자의 임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성전이 파괴될 것에 대한 징조와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환난 곧 성전파괴의 징조가 아닌 것들을 먼저 말씀하시고, 이제 성전파괴의 징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해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혹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이 파괴되는 현상을 묵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징조를 알고 성전 파괴의 사건이 이 세대 안에 일어날 것을 예언하십니다.


# 본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난제는 23-28절이 성전파괴인지 인자의 임함 곧 재림인지의 여부와, 29-31절이 전통적으로 재림으로 해석되었는데 34절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재림을 예수님께서 실수로 언급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실수하지 않으셔야 할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문맥 상의 오류로 복잡해 집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25장의 본문을 해석할 때에 구약적 배경(특히 다니엘과 이사야 등), 문맥의 흐름, 그리고 식언치 않으시는 예수님의 말씀등을 고려하면서 일관성 있게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 15-22절 성전 파괴의 징조를 주시고 그 날들을 감하시는 이유는 택하신 자들을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제 성전파괴의 징조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징조가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설명하시고 피난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임신, 겨울, 안식일 등)을 피해서 일어나길 기도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파괴되는 일은 전무후무한 환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 날에서 구원받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이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하시는 긍휼을 베푸십니다.

*

멸망의 가증한 것(우상을 비롯한 부정한 것들)이 거룩한 곳(성전)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이제 성전파괴의 재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산과 지붕과 밭에 있는 이들이 취할 행동을 통해 보여줍니다. 또 피난을 가기 힘들게 하는 요인들 즉 겨울과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합니다.

실제로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됩니다. 이 전쟁이 있을 때에 산으로 도망하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메시아를 거역한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향한 전쟁과 심판이기에 제자들은 해당이 안되므로 피하라고 한 것입니다(24:16). 그런 유대 전쟁은 미리 징조가 있고 충분히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알고 피하라 합니다.

기원전 586년 이미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는데 이제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로서 누구도 이 무자비한 파괴에서 스스로 구원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날들을 감하셔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셔서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

예수님은 심판의 때에 나타나는 징조들을 설명하시면서 성전파괴의 징조들을 발견하면 지체하지 말고 행동해야 할 것과 기도해야 할 것을 나열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기에 택하신 이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이러한 사건 역시 주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더불어 일관되게 주님은 심판 중에라도 늘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심판은 우리 스스로 피하거나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환난의 여정 속에서도 동일하게 우리 스스로 환난을 멈추고 피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호소하여 능히 감당할 힘을 간구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더불어 주의 택하심을 믿으며 끝까지 인내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의 긍휼에 의지할 수 있길 바랍니다.



# 23-28절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의 미혹을 믿지 말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직전에는 더더욱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를 미리 아시고 이들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합니다. 심지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며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겠지만 그렇게 그리스도가 광야나 골방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도 믿지도 말라 경고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거짓말인 이유는 인자의 임함은 번개가 사방에서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마치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는 것을 보듯이 누구나 알 수 있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로마의 군대들이 포위하고 수차례 전쟁을 시도하는 가운데 예루살렘 안에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면서 할 수만 있다면 택한 자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에 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니 떠나지 말라고 미혹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자칭 그리스도와 선지자로 자청한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

27-28절은 사람들이 성전파괴의 직전에 자칭 그리스도와 선지자로 자청할 때에 그것들을 분별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온다면 번개가 사방 어디에서든 번쩍임을 인지하는 것 같이 인자의 임함도 누구나 다 알게 되도록(독수리가 모이는 것은 그곳에 주검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은밀하게 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선동한다 하더라고 결코 부화뇌동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욕망이 투여된 우상이 탄생합니다. 심지어 우리 하나님 마저도 우상처럼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만 찾는 소비주의적 신앙 그리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도움을 줄 것처럼 미혹하는 일들, 이것이네 저것이네 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세미나 프로그램 사람 교재등등등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도 깨닫지 못하면서 거짓된 것들에 미혹되어 우리에게 오는 이들을 배나 더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29-31절 성전은 파괴되지만 택하신 자들을 다시 모아 거룩한 성전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일월성신이 무너지게 되고,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사자들)을 보내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입니다.

*

이 구절은 전통적으로 재림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여 찬송가 180장에도 이 가사를 통해 재림을 찬양하는 곡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는 묵시적 표현들과 다니엘, 이사야 등에서 예언된 말씀의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36절 이후에서 설명하고 있는 인자의 임함 곧 재림은 징조가 없는데 여기서는 징조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어서 서로 상충되고, 심지어 34절에서는 그 시기를 한정하여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재림?)을 볼 것이며 심지어 이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자들이 죽기 전에 인자의 임함 곧 재림을 볼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잘못 말씀하신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본 절은 재림에 대한 설명이라기 보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충격적인 사건이기에 온 우주가 다 무너지는 것과 같은 표현으로 그리고 그런 이후에라도 하나님은 사자들을 통해 택하신 자들은 구원하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29절에서 그 날 환난은 예루살렘 파괴 자체를 말합니다. 이 환난은 전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표현들은 이미 구약에서도 바빌론 제국과 에돔을 비롯한 열국의 심판을 묘사하는 묵시적 언어들로 사용되었습니다(사 13:10, 34:4). 이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놀라운 심판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월성신이 무너지고 하늘이 흔들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0절은 인자의 징조에 대한 징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적인 자연 현상이라기 보다는 심판을 위해서 인자가 전쟁의 시작과 더불어 그의 백성을 모으는 군기(표적)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인자의 심판(예루살렘 멸망은 결국 예수님께서 성전이 무너지게 하시는 심판으로 이해합니다)적 전쟁의 승리는 결국 땅의 모든 족속들(이들도 열방 보다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곧 복음을 거절하고 끝까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던 이스라엘은 통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은 다니엘서의 말씀을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니엘 7:13-14에서 ‘인자의 오심’은 인자가 땅으로 오는 것보다는, 권위와 영광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가는 것과, 그 결과 인자의 권위와 왕권이 온 세상에서 인지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대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인자의 권위가 온 세상에서 공개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지되는 결정적인 심판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며(참조. 23:37-33; 24:2), 따라서 이 구절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지칭하는 데 매우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양용의 교수님의 <마태복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p478 발췌)

31절 말씀은 환난 이후에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서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끝까지 사방에서 즉 열방 가운데에서 다시금 새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패역함으로 인해 결국 심판을 받게 되어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신 새롭고 산 길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이스라엘로만 국한되지 않고(이미 구약에서도 처음부터 하나님은 모든 열방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는 계획을 갖고 계셨지만) 다시금 택한 자들을 새 사람, 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초청하시고 세우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는 일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는 혁명적 전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으로 새 사람이 되기 전에 살았던 삶에서 왕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이어서 삶의 내용과 방향과 목적이 바뀌는 것은 온 우주만물이 무너지고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영광 곧 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와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가진 새 이스라엘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 32-35절 성전 파괴의 심판은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합니다. 나무의 변화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때(인자)가 가까이 이른 줄 알라고 말합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겠고 천지가 없어질 지언정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

32절에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배우라 합니다. 나무의 변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여름이 오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징조로 말씀하신 일련의 일들이 전쟁의 일들과 결과를 통해서 이 모든 일들을 이루어지는 것을 보거든 성전파괴 곧 심판을 위해서 때가 가까이 온 줄 알라(33절) 하십니다(여기서 성경은 때가 인자로 번역되어 있는데 성경 각주에 보시면 33절의 ‘인자’가 '때'로 번역된다고 써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보세요)

34절에서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하는데 실제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에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말씀대로 성전은 완전히 파괴됩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세대)이 살아 생전에 그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35절에서는 이 일은 반드시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허언 하시지 않으시기에 말씀(예언)하신대로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시는가?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복음 선포에 끝까지 거역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37 몇 번이나 모았는지 예수님과 이전 선지자들의 복음선포와 초청에도 불구하고나 끝까지 거절한 결과 멸망(심판)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된 것입니다(23:38)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혈통과 지위나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메시아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집니다. 메시아를 영접하면 구원이지만 거절하면 결국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도 그렇게 심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오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교회는 그런 심판에서 면제되느냐?입니다. 로마서 11:21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원가지들(이스라엘)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교회)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시며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준엄하심 앞에서 겸비하여 교만하지 말아야합니다. 만일 우리도 교만하여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는다면 우리도 짤림을 당할 까 두려워하고 그렇지 않으면 패망을 당할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 모두 문제라 합니다. 교회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을 예루살렘이 망한 징조와 유사한 모습으로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인자에 머무르지 않으면 원가지에서 짤리고 만다는 바울의 로마교회를 향한 경고를 보면서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내리치고 자르실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전파괴는 이천년 전의 역사 사건이지만 그것은 모든 시대에 교회를 향하여 그들도 원가지에서 짤릴 수 있다는 경고로 받고 스스로 경성하면서 또 그렇게 경성시키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함을 상기해야 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과연 주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면서 나의 모든 소유를 그분의 통치를 따라서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한 백성으로 주를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 주의 긍휼과 도우심을 구하며 거룩한 성전으로 부족함 없길 기도하는 귀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며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날들을 감하시고

천사들을 보내 열방 가운데 불러 주신 하나님 아버지

택하시고 세우시고 주의 나라에 거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따르는 여정 가운데서도

죄악의 결과로 인한 환난의 징조들을 감지하고

우리가 돌이켜 주님께 나오길 바라시는 그 싸인들을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안목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실 긍휼을 소망가운데 바라보면서

환난을 감내하고 견딜 수 있게 하옵소서.

여전히 미혹하는 이들의 가르침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식과 은사와 능력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 같은 순간에도

주님은 택하신 자들을 다시 모으심을 기억하고

우리고 그런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새 사람, 새 백성, 새 이스라엘 됨을 기억하고

이스라엘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길 원합니다.

시대를 분별하면서 배우고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되고 이루어질 것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주의 통치와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주님이 택하심과 보호하심을 누리며

거룩한 성전으로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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