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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1-14 심판 1 _ 미혹과 환난의 시대


예수님께서 지도자들을 향해 화를 선언하신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나오시매 제자들이 성전의 위용을 자랑하니 예수님은 이 성전이 철저하게 무너질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징조와 때가 언제인지 묻자 예수님은 우선 많은 미혹이 있고, 난리, 전쟁, 기근, 지진, 환난과 핍박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하고 사랑이 식어질 테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시고,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 24-25장 묵상을 위한 전제

“24-25장은 마태복음의 다섯 강화 단원들 중 마지막 단원이다. 본 단원의 전체적인 주제는 ‘심판’이다. 전반부(24:1-35)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곧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후반부(24:36-25:46)는 세상 끝에 있게 될 심판, 특히 새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 - <마태복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_양용의_성서유니온 P463에서 인용


+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다루는 것이 이스라엘과 새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해당 단락의 해석에 대해서도 예루살렘 멸망과 심판, 그리고 세상 끝에 있을 재림 이후의 심판으로 분별해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후반의 구분 없이 혼용하여 해석할 경우에 일관성을 잃고 예루살렘 파괴와 주님의 재림 곧 세상 끝날에 대해 혼돈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를 유의하여 본문을 읽고 해석하며 묵상해야겠습니다.

+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은 다니엘 7:13의 ‘인자의 오심’에 대한 이해를 세상의 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자, 이를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이라고 이해하고 징조에 대해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이해를 예수님께서 24-25장에 걸쳐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24장의 주요 목적들 중 하나는 세상 끝에 대한 설익은 기대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24장 4-5, 6b-8, 14, 23-28, 36절에서 분명하게 반복해서 이 주제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24장의 전체적인 논점은 임박한 세상 끝에 대한 기대를 조장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기대를 누그러뜨리는 데 모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 또 한 가지 전제할 것은 주후 70년에 일어난 성전 파괴 사건과 세상 끝 사이에 신학적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인 연관성은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구분되어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울러 24-25장의 해석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배경은 구약의 언어와 배경 특히 다니엘서 등을 통해 비유와 상진 제유와 환유법등을 통해 이해되어야지 오늘날의 문자적 개념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게 되면 착오와 오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예, 29-30절의 일월성신과 영광에 대한 설명).

+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는 이유는 징조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종말(상당수는 초림과 재림사이의 마지막 때로 이해하지 않고 재림의 시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선동으로 이어집니다. 본 장에서는 철저하게 예루살렘 파괴의 징조는  다양하게 있다고 말하지만, 재림의 징조는 예수님마저도 모른다 하실 정도로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징조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의 경우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고 선교를 통해서 재림을 앞당기자고 긴박한 헌신과 동월을 위해 대표적으로 오용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종말론을 강조하는 이단들이 이 징조를 가지고 사람들을  입박한 종말로 위협하면서 헌신과 희생을 강요 선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 예루살렘 파괴와 세상 끝 곧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잘 구분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재림에 대한 이해로 설익은 기대와 흥분으로 현재의 삶에 대한 염세와 회피, 소홀함이 없어야하고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로 경주해 가도록 하기 위한 예수님의 의도와 목적을 바르게 갖고 본문을 읽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 1-2절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잃으면 철저하게 버려진 바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들은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성전이 철저하게 무너뜨려질 것을 예언하십니다.

*

앞선 성전 척결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한 화의 선언등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기능이 다한 것으로 보고 거룩한 성전의 기능이 다한 예루살렘 성전 멸망의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과 종교지도자들이 환유하는 것은 결국  자칭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루살렘 성전과 지도자들의 심판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헤롯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착공을 시작한 이래 47여년이나 지어온 성전의 위용을 예수님께 보이려고 합니다. 이 성전은 이후로도 주후 64년까지 지어 완성하게 됩니다(근 60여년을 건축한 것으로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외형적 성전의 위용은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내면적으로는 이미 부패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부정한 곳이 되었으며, 이를 제사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부정과 산헤드린 공회등의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와 연관되어 이미 한계에 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성전의 척결을 퍼포먼스 통해서 이미 보여 주셨고 그 이유를 23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AD70년에 멸망하기까지 기회를 주셨지만 결국 로마에 의해서 무너질 때까지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 건물 성전이 무너지고 친히 성전 되셔서 3일만에 다시 영원한 성전으로 부활하시고 이후 다시금 새 이스라엘 통해 새 성전 곧 사람 성전을 건축하시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거룩한 성전을 회복하고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고, 거룩한 백성이 하나님을 알현하고 소통하고 만나며 예배하며 하나님나라를 세워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성전을 교회와 새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새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과 임마누엘 주님의 성전 되심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우리가 함께 지어져 가야 할 거룩한 성전의 삶과 신앙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앞서 척결된 성전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이제도 이 말씀 앞에 세밀하게 살펴 봐야 하겠습니다.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안팎으로 거룩한 성전, 주님이 꿈꾸시고 성령님과 더불어 춤추는 거룩한 교회,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하는 새이스라엘 되길 원합니다.



# 3-8절 성전 파괴에 대한 오해와 선동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감람산에서 제자들은 다시금 예수님께 예루살렘 멸망을 언급하면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고,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는지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먼저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시고 난리, 전쟁, 기근, 지진등이 있을 터인데 이는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우선 제자들이 묻는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때와 일을 말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멸망은 곧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해서 그 때에는 주님이 오셔서(주의 임하심) 구원과 심판을 행하시는 때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질문할 때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는지 물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앞서 이런 일이라고 하는 것이 예루살렘 멸망이 맞지만 이어서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답변은 이를 교정해 주시면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과 예루살렘 파괴가 같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분리된 것임을 순차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은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일어나게 될 세상 역사의 최종적 시점과 사건을 말합니다.

우선 예수님은 예루살렘 멸망 또는 파괴 사건이 있기 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제자들이 갖고 있는 성전파괴와 세상 끝에 대한 잘못된 예측과 혼동의 위험성을 교정해 주시려고 합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거짓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 때는 영웅을 기대하고 그런 일들을 끝내줄 사람들을 고대하고 있기에 미혹하는 무리들이 자칭 그리스도라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갑니다.

난리에 대한 소문, 그리고 전쟁이나 국가간의 분쟁과 사회적인 혼란이 있긴 하겠지만 그런다고 이것이 세상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기근과 지진도 있을 것인데 이는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국제 정세의 혼동과 재난들과 기근과 지진이 이스라엘과 주위에서 발생된 일들이었습니다. ‘전쟁 소식들과 전쟁 소문들’은 파르티아 전쟁(주후 36년), 안티파스와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와의 전쟁(주후 36-37년), 그리고 일련의 지역 폭동들과 연관이 있고, '기근들’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대 기근(주후 46 년경)과 연관이 있고, 곳곳에 있게 될 ‘지진들’은 팔레스타인 지진, 예루살렘 지진(주후 67 년), 빌립보 지진(행 16:26), 소아시아 대지진(주후 61 년), 폼페이 지진(주후 62 년)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끝(6절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6절에서 ‘끝’으로 번역된 ‘텔로스’는 3절에서 역시 ‘세상 끝’으로 번역된 ‘쉰텔레이아’와 구분된 단어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국제 정세와 나라간의 탐욕과 이기적인 분쟁으로 의례 있는 일이고 천재지변 또한 늘상 있는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실현되더라도 그것이 세상 끝이라고 생각하여 부화뇌동 말라는 것입니다.

*

지금도 천재지변이나 어떤 놀라운 사건들이 발생하면 말세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신앙으로 귀속시키려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일전에 이 구절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지지하던 때에는 그런 선동에 마음이 혹하고 정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지난 2천년 이래 이러한 일들은 적어도 인간의 탐욕이 종언되기 전까지는 계속 일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천재지변에 대해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느 것 하나 통제하거나 극복해 내긴 쉽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멸망 전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이 나비효과처럼 또 다른 사건들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발생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이 발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라 재난의 시작 곧 산통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일을 끝이라 하고 사람들은 그런 위험에서 건져 내 주리라 하고, 자칭 그리스도라 하면서 미혹하는 이들을 분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은 성전 파괴의 징조가 되진 못합니다. 너무 자주 일어나고 성전파괴와 너무 먼 시간적 거리를 두고 일어나는 사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 9-14절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산통이 시작되는 시기에 제자들은 환난을 당하여 순교를 당하거나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많은 이들이 실족하여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며 역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미혹하고 불법이 성행하여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인데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하십니다.

*

앞서 제자의 길이 고난의 여정이 될 것을 누차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을 감수하고 인내로 경주해 가야 한다고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환난과 핍박 속에 살아갔습니다. 더러는 실족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미혹하므로 불법한 일들 곧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오해하며 잘못 적용하는 일들이 성행하여서 교회안에서도 신앙이 약해지고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서신서들에서 많이 보게 되는 교회안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핍박과 고난의 모습들이 성전 파괴의 특별한 징조는 아닙니다. 실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제자들은 환난과 핍박 속에 심각한 고난을 겪게 될 것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환난 속에서도, 미움을 받으면서도,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실족하여 믿음과 교회에서 이탈하는 일들이 생기더라도, 거짓 선지자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불법한 일들이 성행하여 사랑이 식어지는 일들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안에 거하고 이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이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절의 ‘끝’도 성전 파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 파괴 사건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후에야 올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 세상’은 당대 로마가 지배하는 제국의 전 영역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를 ‘땅 끝’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전파된 복음은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복음이 땅 끝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선포되었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롬 15:17-19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그래서 이 말씀은 성전 파괴 이전에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의 본 단락의 말씀이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이루어 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복음 전파의 정도를 통해 세상 끝의 시점을 계산하는 지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

환난, 세상으로부터의 미움, 실족, 미움, 거짓 선지자, 미혹, 불법, 사랑의 식음등은 제자의 길에, 그리고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교회의 신앙 여정에 지금도 계속되는 어려움들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에 있다면 우선 믿음의 사람들은 인내로 이 여정을 경주해 가는 것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길이고, 구원에 합당한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여전히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세상과 민족과 땅 끝이 여전히 태어나고 있고 존재하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의 고난의 여정 속에서도 실족하지 아니하고, 미혹되지 않으며 바른 복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증인으로서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복음을 증언하고, 전파하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 기도

우리를 거룩한 성전으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겉과 속이 다른 외식과

겉만 화려하고 내면은 부패한 삶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된 신앙과 지식에 눈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바른 믿음과 복음위에 설 수 있게 하옵소서.

시작된 종말과 개인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 사이에서

거룩한 교회와 성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오는

여러 도전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거짓 그리스도와 난리와 혼돈과 지진과 기근 속에서도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

미혹을 분별하고,

환난과 미움을 극복해 갈 힘과 용기있는 믿음도

실족하는 이들이 있어도 낙망치 않고 갈 소망도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진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말씀을 따라 살아갈 사랑도 충만케 하옵소서.

온 세상 온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오래 참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게 맡겨주신 이 사명을 기억하면서

이제도 여전히 우리 주위와 열방에 존재하는

세상과 민족들과 땅끝을 향하여

이 복음의 증인으로 충성되이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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