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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29-39 지도자들의 죄 3 _ 착각(錯覺)과 패역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일곱번째 화를 선포하십니다. 조상들이 선지자를 죽인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정작 지금 자신들이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 착각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러한 지도자들 통해 메시아를 거부한 패역한 예루살렘을 향해 유기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 29-36절 일곱째 화 : 선지자와 의인을 죽인 선조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착각한 죄

유대인들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의 무덤과 비석을 꾸미면서 자신들이라면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는 곧 자신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들도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결국 역사 이래로 흘린 의로운 피가 이 세대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

선지자와 의인들의 무덤과 비석을 꾸미면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래서 존경하는 사람들임을 드러내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했습니다. 선지자들과 동류로 그들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조상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은 그당시 사람들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고백은 자신들이 선지자와 의인을 죽인 조상들의 후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됨을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비판하면 자신들은 그러한 죄에서 멀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미 세례 요한을 거부하고 죽였으며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지도 못하며 거부하는 행위는 조상들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오래된 죄악의 결과 곧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이는 결국 역사 이래로 순교한 모든 이들을 다 포함합니다) 의인들이 흘린 피가 다 이 세대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24장에서는 이러한 예언에 대한 실현이 예루살렘의 멸망 곧 예루살렘의 심판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 세대에, 그리고 이 세대 안에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착각은 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을 때 생깁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죄악이 얼마나 뼛속까지 깊게, 그리고 전반에 걸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은 거러한 죄와 상관없이 멀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착각입니다. 하지만 잘 모르는 것이 죄를 면제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착각과 무지는 결국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은 강퍅해지며, 나는 아닐 것이라는 자기 기만과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뜨끔함이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해 준 것 없이 미운 이들이 있습니다. 자녀들 중에서도 유달리 어떤 행동을 하는 자녀들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미운 사람이나 자녀가 미워질 때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언행이 자녀에게 전수되고, 타인의 미운 모습이 결국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투영될 때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미운 이들이 있다면 어쩌면 그들은 주님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라고 보내주신 거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정죄하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버려야 할 죄악된 나를 미워하고 버리며 떠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라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들 자기가 보고 이해하는 세계를 객관적인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한, 대부분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착각하면 뒤이어 연상되는 단어는 오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뭘까요? 사전을 뒤져보면, 착각이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느끼거나 지각(知覺)함', 그리고 오해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이해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단어의 뜻으로 보면, 착각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지적 오류의 차원이고, 오해는 사고의 과정을 거친 논리적 오류의 차원입니다.  전자가 원인이라면 후자는 결과라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즉 오해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단정해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의 바른 기준, 곧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라야 우리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기울어지거나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우리 눈의 들보는 무엇인지, 우리가 품은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누구보다 자신들은 조상들과 다르고 의인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착각속에 있는 것입니다.



# 37-39절 은혜를 거역한 패역함의 결과는 유기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선지자들과 예수님이 파송한 이들을 돌로 치는 이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자녀들을 모으려고 했으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거절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루살렘은 황폐화되고 버려져서 더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너희 집’이 될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제 철저하게 심판을 당하여 주님이 다시 영광가운데 오실 때까지 주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

이 구절은 24장의 예루살렘 심판의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더불어 앞선 7화에 대한 최종적 결과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파송한 자들 곧 의인들을 돌로 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거절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와 왕되심과 보호하심에 대한 거절과 배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그리고 오래 참으시며 기다려 오셨다는 사실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하셨다고 비유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려는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도록 선지자를 보내고 이제 친히 오셔서 하나님을 떠나 흩어진 자녀들을 다시 주님의 보호 아래, 주님의 나라로 부르고 초청하여 모으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끝끝내 거절하고 심지어 선지자들과 의인을 죽이고 이제 그 아들까지 죽이려 하고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선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최종적인 요약과 그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 집(예루살렘 성전이 이제 하나님이 집이 아니라 ‘너희 집’이 됩니다)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이상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심 곧 유기해 버리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는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때(AD 70년)라고도 할 수 있고, 재림의 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까지 이스라엘은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돌아온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성전 멸망의 때로 우선 보는 것이 24장의 말씀의 해석과도 일관성 있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오래참으시는 그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고 끝내 거절하는 이들에게는 마침내 심판이 주어집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서 우리를 은혜로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 품에 품으시고 지켜 보호해 주시며, 기다리고 기회를 주시고 가르쳐 지키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살라 하십니다. 이러한 초청과 부르심에 응하지 않고 배은하며 거절하고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몸된 공동체를 주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삼으셨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 끝은 결국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을 영접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있나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깨닫고 있나요? 하나님의 싸인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뜻을 알고 있나요?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그 은혜를 누리고 있나요? 하나님이 붙여 주신 이웃을 사랑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해, 주님과 더불어, 주님만으로 족하며 우리를 그 품에 안으신 그 사랑안에 주님 뜻 이뤄가며 끝까지 함께 거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기도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며

우리를 주 품에 품으시고

우리를 오래도록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오래 참으신 사랑으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타인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면서

나는 결코 그들과 다를 것이라 착각하면서

외식과 탐욕과 기만으로 살았던 죄를 고백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사

나를 다시금 깨우시고 온전케 하려 하신 그 손길을

외면하고 거절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주님 뜻 순종으로 이뤄가는 삶이길 원합니다.

우리네 삶의 끝이 있음을, 한계가 있음을 아는

지혜로운 인생이게 하옵소서.



https://youtu.be/yuEJKSJz5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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