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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09:01-10 완전하고 영원한 희생제사 1


옛 언약의 희생제사를 대체하는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제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첫 언약에 있는 섬기는 예식과 장막의 모형과 그림자의 한계를 우선 제시하면서 예수님의 희생제사와의 상관성과 차이점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9:1~10:18 옛 희생제사보다 뛰어난 아들의 희생제사

1)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사(9:1-14) - 소제 : 매일 제사 + 속죄일 제사 + 피 :

결과 - 정결하게(9:14)

2) 희생제사와 죽음(9:15-28) - : 결과-죄를 제거하심(9:26, 28)

3) 희생제사의 효용성(10:1-10) - 속죄일 제사 : 결과-거룩하게(10:10)

4) 희생제사의 최종성(10:11-18) - 매일 제사 : 결과-완전하게(10:14)



# 1절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습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예식, 규례, 10절)과 세상에 속한 성소(장막)가 있습니다.

*

섬기는 예식은 6-10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제사인데 그 중에서 대속죄일의 희생제사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대제사장을 통해서 대속의식을 행하는 것이 제사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성소(장막)은 2-5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섬기는 예식을 진행하는 거룩한 장소로서 본문에서는 성전보다는 광야의 장막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상징이 가장 큽니다.

*

섬기는 예식 곧 예배와 이 예배를 위해 마련된 장막 모두 공통적으로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구별된 것들입니다. 대제사장에 의해서 드려지는 희생제사와,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차례  휘장으로 가려진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이러한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의 온전함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대제사장 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취된 예배와 성막의 의미들이 우리의 예배와 주님의 몸된 성전됨의 삶에도 적용되어 주님의 뜻을 따른 거룩한 삶의 예배와 주의 임재가운데 거함에 대한 삶의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 2-5절 첫 언약의 장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첫 장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의 기물들(등잔대, 상, 진설병)과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의 기물들(금 향로, 언약궤)을 소개합니다. 특별히 언약궤 안에 있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을 언급하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을 소개하지만 그 의미들을 설명하고 있진 않습니다.

*

성막안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일차로 성소까지는 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지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나 지성소 모두 정결의식을 거친 후라야 들어갈 수 있으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차례만 들어갈 수 있는 제약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소와 언약궤를 강조하기 위해서 특별히 금으로 만든 향로와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언약궤 안에 담겨진 불순종의 역사를 생각나게 하는 내용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나도 지팡이도 돌판도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이지만 모두 광야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상기하게 하는 물건들입니다. 이러한 불순종한 역사를 상기하게하고 그런 이스라에를 끝까지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속죄소의 그룹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지성소가 신비로운 공간임을 드러내고 중요한 곳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

죄인된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또 이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막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으며 누구나 아무때나 들어갈 수 없는 제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 하에 보여주는 장막의 한계입니다.

이후에도 언급하겠지만 주님은 친히 성전이 되시고 이후로 우리를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삼아주셔서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직 장막의 위엄과 한계를 아는 자만이 우리 주님께서 휘장을 찢어 내어주신 새롭고 산 길,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아무때고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도록 열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믿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 6-10절 첫 언약의 장막에는 섬기는 예식(예법, 규례)이 있습니다.

장막에 들어가서 섬기는 예식은 정해진 법이 있습니다. 둘째 장막인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들어가서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해 피로 드리는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이 장막은 결국 모형과 그림자로서(물론 실재하지만) 첫 장막에서 드린느 예물과 제사로는 섬기는 자를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육체의 예법으로서 한시적으로 진행되는 제도입니다.

*

성막의 희생제사 중에서 특별히 대속죄일의 희생제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는 대제사장 자신과 백성의 죄를 위하여 반드시 피의 제물을 가지고서야 들어가서 대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물로는 온전히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없습니다. 앞서도 인간 대제사장의 한계를 설명했듯이 연관해서 동물로 드리는 피의 제사로는 섬기는 자를 온전하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할 수 있는 분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희생 제물이 되신 제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들,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도 분명한 방법과 뜻이 있습니다.  옛 언약의 장막에서 드려진 많은 제사의 상세한 규례들도 이렇듯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드려질 때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하는 길만이 유일한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며, 예배하는 자를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은 예배,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는 예배는 결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들, 언제 어디서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나 또한 그런 예배와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와 삶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하며,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라야 주님이 받으시고,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적용하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꾸만 우리의 예배와 삶이 열매 없는 형식과 우리의 욕망이 투여된 우리만 즐거워하고 정작 그 예배의 주되시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는 상관도 없고 받지도 않는 제의적인 종교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삶의 내용에 있어서는 당연히 좋은 열매와 무관한 삶으로 맛을 잃은 삶, 아무런 영향력도 능력도 없는 삶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예배의 삶을 지금 살고 있는건가요?



# 기도

성막과 섬기는 예법을 가르치셔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내어주신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몸된 성전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매일 매순간을 살아가야 할 진대,

구별됨과 거룩함을 무시하고

우리의 소견에 옳은대로 좋은대로만 행하여

불법한 삶이 있거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임재가운데 살아가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몸된 성전으로서의 삶에

소홀했음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의 불순종의 역사를 회고하며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사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불의하고 불순종한 삶들을 반복하지 않길 원합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제의와 실제 우리의 삶이

주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 산 제물되기 위해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그 뜻에

합당하게 언행심사들을 채워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예배하는 삶이 주님이 받으실 만한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삶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거룩한 성전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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