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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08:01-13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영원히 살아계신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는 사람이 세운 장막이 아니라 하늘 성전에서 우리를 위해 예물과 제사를 드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이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설명하기 위해서 첫 언약의 부족한 점과 새 언약의 우월성을 예레미야 31:31-34의 인용을 통해서 밝히며, 옛 성전과 옛 언약보다 뛰어나신 하늘 성소와 새 언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1-6절 예수님은 하늘 성전의 대제사장이시며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의 요점은 천사와 출애굽 지도자들보다 뛰어나시고 레위적 계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지금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참 성전에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땅에 있는 제사장의 예물과 제사 드림은 하늘 성소의 본을 따른 모형과 그림자로서 세워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직분으로,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

땅에 세워진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땅의 성소에서 예물과 제사를 반복해서 드렸습니다. 이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그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워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주께서 세우신 하늘 성소에서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사 율법이 아닌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 곧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드린 예물과 제사는 친히 제물되시고 희생하신 제사임을 밝힙니다(9:1-14).

*

율법과 옛 언약이 좋지 않다거나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거나 더 좋은 약속이라고 새 언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율법과 옛 언약에는 한계가 있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7절 이후에 옛 언약의 한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왜 더 아름다운 직분,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지는 이후로 계속 설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율법과 옛 성전과 옛 언약에서 보여준 것들은 모두다 하늘 성전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따라 예물을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들도 결국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해결되어야 할 중보적 과정들을 보여주지만 반복적으로 해야 하기에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 성전이시며 아름다운 대제사장이시며 더 좋은 약속과 언약의 중보자로 세워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계신 하늘 성소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옛 성전과 옛 율법과 옛 언약이 가진 시간과 공간의 한계들을 극복하여 이제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자로 거룩한 산 제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7-13절 예수님은 옛 언약을 대체하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첫 언약의 부족함을 예레미야 31:33-34절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첫 언약을 통해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국 언약 안에 머물지 않고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법은 돌판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에 기록하고, 각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누구든지 주를 알 수 있고, 불의함의 죄에서 용서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 세워졌으니 첫 언약은 이제 폐하여 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

인용된 예레미야의 말씀은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옛 언약에 불순종하여 패망한 선조들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귀환하여 살아갈 때에 이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을 향하여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셔서 이제 세우는 새 언약은 심비에 새겨져서 이전에 돌판에 새겨진 율법에 불순종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심비에 새겨져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 이하 김필회교수님의 예레미야 강의노트에서 발췌

시내산 계약(옛 언약)의 파기는 단순하게 갱신에 의해 회복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교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필연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몰라서가 아니라 의지적으로 거절하며 그분께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길을 갔습니다다. 이러한 계약 파기의 결과로 이스라엘과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판 이후에 이스라엘과 유다의 새로운 출발이 가능할 수 있을까?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에 있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예레미야 31:31-34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의지적임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능력이 없음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 의존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는 내적 능력이 전혀 결여되어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불순종을 말하기 이전에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심판/멸망 이후의 새로운 출발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야훼의 용서로 시내산 계약이 갱신된다 해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이를 준수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원천적으로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근본적인 내적 변화가 불가능한데 관계 정상화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하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본문은 이런 당혹스런 문제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계약은 시내산 계약의 갱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는 조건적인 시내산 계약하고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계약입니다. 새로운 계약에서는 그 의무 규정이 더 이상 돌비(신 9:9-16)에 새겨지지 않고 각 사람의 사고와 의지와 결정의 자리인 마음 속에 기록됩니다. 야훼께서 계약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계시 의지를 각 사람의 마음에 두어 계약에 따른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무능력과 죄가 근본적으로 치유되어 야훼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마음에 야훼의 의지가 각인 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알 수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

오늘 우리가 자발적, 자의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은 이것을 마음에 기록한 것이라 안하고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배우지 않고도 주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심의 은혜인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지금 새 언약의 중보자로 말미암은 은혜 가운데 있는데 다시 유대교로 회기하려고 하거나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리고 언약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고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부족한 신앙에서 깨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아가는 일들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

우리에게 더 좋은 약속으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를 세워주신 하나님 아버지

불순종으로 멸망할 수 밖에 없던

우리의 불의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하나님으로, 우리는 주의 백성으로 삼아

우리 주님을 바로 알고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이 복된 길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롭고 산 길이요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줄 알고

또한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세운 성전의 대제사장은

예물과 제사를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영단번의 제사에 친히 희생제물이 되어 대속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영원히 인도하신

주님의 대제사장 되심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이제 거룩한 백성으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새 백성으로, 새 사람으로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허락하심도 또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 알아가는 일을 즐거워 하며

우리 심비에 새겨서 성령으로 순종케 하신 능력을 따라

새 언약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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