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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07:11-19 멜기세덱 계열과 부활의 능력을 따라 세워진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는 시편 110편 4절 말씀에 대한 설명입니다. 레위 계통이 아닌 유다지파의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 것인지 말하고, 율법의 한계를 극복하여 불멸의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 7장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1) 1-10절 : 레위적 제사장들보다 뛰어난 멜기세덱

  2) 11-19절 : 멜기세덱 계열을 따라 임명된 더 나은 제사장 예수님

  3) 20-28절 : 레위적 제사장들보다 뛰어나신 예수님


# ‘완전함(텔레이오시스)’_양용의의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책 p185에서 발췌

  ‘완전함’이라고 번역된 단어 ‘텔레이오시스’는 히브리서에서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로서 누가복음 1:45에서는 ‘성취’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본 문맥에서도 이 단어는 종말론적 성취의 의미가 강해보인다. 곧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 제사를 통해, 죄가 실제로 제거되고 양심이 깨끗케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는 목표가 성취됨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히브리서에서 ‘완전함’이라는 개념이 지금까지는 그리스도께 적용되었는데 (2:16; 5:9; 참조. 7:28),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처음으로 적용된다(참조. 5:14; 6:1- ‘장성함’)



# 11-12절 하나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으로는 온전함(텔레이시오시스;성취)을 얻을 수 없기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는 한계로 인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사 직분이 바뀌어졌기에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

온전함(완전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간 제물과 인간의 흠없음을 말합니다. 온전한 제물과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은 자신을 위한 정결예식을 치루고 난 후라야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레위계통의 제사장과 율법이 온전함을 얻을 수 있게 했다면 굳이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세워진 멜기세덱을 통해서 율법 이전에, 그리고 비레위적인 인물인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에 그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이제 레위계통과 율법으로 할 수 없는 완전함을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앞서 멜기세덱이 그림자로서 실체를 예표한다면, 이제 율법도 결국 그 한계를 극복하고 제사 직분이 바꾸어진 것처럼 성취될 율법으로 바뀌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완전(온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 곧 아론의 반차로 세워진 대제사장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아브라함도 자리잡기 전에 이미 멜기세덱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세워주시고 신비롭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 반차를 따라 오신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을 성취하셨으니 율법은 폐지 또는 대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완전함 또는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율법(로마서는 이 때의 율법을 행위 보응의 법이나 죄와 사망의 법 등에 대한 대유법으로 사용합니다)이 아니라 흠없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 13-17절 하나님께서는 비레위적 인물이신 예수님을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14절 우리 주께서는)은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고 유다지파에 속한 분이십니다. 이 지파는 모세가 제사장직과 연결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혈통의 계보를 따라서 난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의 반차(열)을 따른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것입니다.

*

우리 주 예수님은 유다지파에 속한 왕적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직과 무관하시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세워진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 세워진 제사장이기에 아론 제사장 계열로 세워진 것과 다른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아닌 능력의 법을 따라 세워지셨고, 계명이 아니라 생명의 법을 따라 세워지셨으며, 육체에 속한 사라질 수밖에 없는 법이 아니라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불멸의 능력의 법을 따라 세워진 제사장이십니다. 그래서 아론의 제사장직과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갖고 있습니다. 아론의 제사장직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계속 계승되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워진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우월성과 차별성은 앞서 온전함의 여부로 비교했는데, 여기에서는 영원성의 여부로 차별을 설명합니다.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은 결국 죽음으로 말미암아 계속 계승 반복되어야 하지만 불멸의 생명의 능력으로 된 법은 이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법으로 또 다른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레위지파가 아닌 비레위적인 유다지파에 손한 대제사장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셨기에 우리 주님은 왕적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 18-19절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고 더 좋은 소망인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하게(성취) 하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전에 있던 계명 곧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하기에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더 좋은 소망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세워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것 곧 온전(완전)하게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으려면 온전해야 합니다. 율법과 아론 계열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은 그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를 완전케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율법의 연약함과 무익함 곧 한계(죄를 제거하고 완전케 할 수 없기에)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율법은 폐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 이 율법의 기능이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함 곧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율법의 기능과 한계는 모두 우리를 온전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율법이 가리키는 바 더 좋은 소망 곧 불멸의 생명의 능력의 법을 따라 세워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완전케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새롭고 산 길을 따라 살게 된 것입니다.

*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언제 어디서고 나아가고 교제하며 예배하고 안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가시고 내어주신 새롭고 산 길로 말미암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소망이신 이 길을 통해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고, 안식하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은혜의 보좌 앞에 살게 된 것입니다.



# 기도

우리에게 새롭고 산 소망의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

죄와 사망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약속을 따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한 제사장

곧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인

율법의 연약함과 무익함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새롭고 산 길

곧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그 길을 따라

순종으로 안식하며 주와 동행하길 원합니다.

오늘도 이 생명과 안식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여정으로 채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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