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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09:01-11 여호와의 긍휼과 심판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타락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응하십니다. 무기를 든 집행자들을 불러서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진행하되,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표를 주어 살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다 치라 명하십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죄악이 중하니 여호와께서도 더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고 그들이 행한대로 보응하십니다. 


# 1-2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할 자들을 직접 부르십니다. 

성전뿐 아니라 지도자들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우상숭배의 죄악에 대하여 마침내 심판하기 위하여 큰 소리로 심판을 집행할 자들을 부릅니다. 여섯 사람이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북향한 윗문 길로 오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차고 나와서 놋 제단 곁에 섰습니다. 

*

6명의 파괴천사(집행관)에 한 사람의 지휘자 같은 먹그릇을 찬 사람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따라 북향한 윗 문 길로 나아옵니다. 이들의 손에는 죽이는(무시무시한, 살륙하는) 무기가 들려 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또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심판할 자와 그렇지 않을 자를 구분하는 표를 그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파괴천사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선 곳을 놋 제단이라고 말합니다. 이 제단은 성전이 더럽혀진 상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원래 놋제단이 북향 문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이 다메섹의 제단을 모방해 새 제단을 만들고 이전의 놋 제단을 지금 북쪽으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모든 것들은 그 식양과 위치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임의대로 편한대로 이 모든 것들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의 신앙도 자기들 편한대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파괴천사들을 여호와께서 직접 불러 오게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그리고 장차 예루살렘을 심판이 여호와의 주권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방인을 들어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분도 여호와이시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도 여호와이시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을 행하시는 분도 여호와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에 바벨론을 통해서 이러한 심판이 진행될 것입니다. 

*

역사적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나 애굽의 득세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오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지는 상황들이 반복되는 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바벨론의 마르둑 신이 힘이 더 세고, 그러한 힘에 자신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에스겔이 증언하는 말씀은 결국 이 모든  심판을을 집행하는 분은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과 주관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 3-7절 여호와께서는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여 심판하십니다. 

그룹 사이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그곳을 떠나 성전 문지방에 이릅니다. 그리고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을 불러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면서 가증한 일에 대해 탄식하는 이들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하고 그 뒤를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지 말고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다 죽이되 이마에 표있는 자는 살리라 합니다. 이를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심판으로 인한 주검들로 성전 뜰을 채우고 성읍 중에서도 그렇게 행하라 합니다. 

*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성전이 거룩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제 그 영광이 떠나면 성전은 그 기능을 잃게 됩니다. 앞선 말씀은 하나님이 떠나시기 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내쫓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오래참으심 앞에 철저하게 타락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일들이 만연되어 도저히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하실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하고 결국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괴 천사들을 향하여 한가지를 명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들을 가슴아파하며 탄식하며 우는 이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이 진행될 때 이 표가 있는 사람은 죽음을 면하게 했습니다. 출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것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마에 인침을 받거나 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는 다는 것등에서 동이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이 표는 결국 외형적인 어떤 마크라기보다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손으로 행하는 일들이 어떠한 지를 따라 구분되는 것을 말합니다. 가증한 우상을 따르는 언행심사의 표가 있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행하는 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의인과 악인을 분명하게 구분하셔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은 성소에서부터 시작하고 성소 앞의 늙은 자들(장로와 지도자들 혹은 제사장들은 이렇게 부르며 그 이름에 걸맞게 살지 못한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로부터 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검으로 성전의 모든 뜰을 채우고 성읍 중에서도 그렇게 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드릴 제물과 향기로 가득해야 할 뜰이 심판으로 인한 부정한 주검으로 가득채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그곳은 더이상 성전이 아니라 부정한 곳이 되어버렸고,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증함은 결국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성전을 더럽히고 마침내 그곳에서 하나님을 내 쫓고 부정한 것으로 가득채워 멸망의 주검만 가득한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

우리 안에 거하시는 거룩한 성령의 임재에 민감해야 할 우리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으로 채워간다면 이는 성령을 소멸케하고 거역하는 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하고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명을 따라 먹 그릇을 차고 이마에 표를 하는 이는 이스라엘의 가증스러운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이들을 구분합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거룩한 길로 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고 그런 이들은 무리 가운데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함께 공존하고 있기에 심판의 날까지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올 때까지 이 의인의 길은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고 구분하십니다. 그러니 모두가 다 곁길로 간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고 어리석은 길로 행해서는 안됩니다. 분별하고 결단하고 인내하며 이 믿음의 길을 경주해 가야 합니다. 돈과 가증한 우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분명 하늘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알고 살아가는 이들의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주님만이 아시니 주님만 바라보고 가야만 하고, 주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결코 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합니다. 

심판이 성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총체적 타락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타락이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진단하고 바로잡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전적으로 성소의 제사장과 지도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직무를 유기하고 백성을 거룩한 길로 선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같이 악을 행하여  더 가증한 일에 앞장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성소로부터 심판의 칼이 휘둘러지고 성전과 온 성읍이 심판당하여 죽은 주검으로 가득채워집니다. 환난에 환난이 더해지고 부정에 부정이 더 가중됩니다. 더이상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거룩한 전이 아니라 부정한 주검이 가득한 무덤입니다. 생명이 아닌 죽음이 가득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패역하다 하는 이 세대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구부하고 있는건가요? 가증한 일들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애통하고 있는건가요? 날마다 거룩한 전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과 소통하고 세미한 인도를 따라 언행심사에 거룩함을 덧입고 있는건가요? 생명의 말씀으로 가득차야 할 심령에 혹여 헛되고 헛되며 부질없는 것들을 주인삼고 주검으로 가득찬 것처럼 부정으로 가득채워진 언행심사는 아닌가요? 


# 8-11절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처절한 심판으로 인해 주검으로 가득찬 환상을 본 에스겔은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남은자가 하나도 없이 다 멸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죄가 중하기에 피가 가득하고 성읍에 불법이 가득하기에 이 땅을 버리고 여호와께서 보지 않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더이상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긍휼이 여기지도 않을 것이라고 그들이 행위대로 갚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그릇을 찬 사람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준행하였음을 보고합니다. 

*

에스겔은 지금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처절한 상황들을 목도할 때에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심판으로 처단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러다가 아무도 남은 자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면서 분노를 쏟으시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포로되었으나 이 백성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에스겔에게서 보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하나님은 더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했고, 오래참았으며 긍휼과 자비로 오랜 시간동안 그들에게 함께하사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결국 하나님을 저버리고 가증한 일을 총체적으로 행한 이스라엘의 죄악은 은혜의 하나님을 분노하게 한 불법으로 가득하고 땅에 불의가 가득하여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지경에까지 땅이 오염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긍휼을 거두시고 이와같은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대조적으로 심판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준행하였음을 보고합니다. 

*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기도 하지만 공의로우신 분이기도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불의함과 불법에 대해서 분노하십니다. 이제 가증한 일을 행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와 공의는 오랜 긍휼을 거두고 결국 심판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기다리심에 한계를 갖게 한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일부만이 아니라 총체적이라는 것이 더 절망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왜 그렇게 하시느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 하나님이 물으실 때에 핑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기회도, 능력도 주셨고, 또 실수하고 반복된 문제가 있어도 오래오래 참아 주십니다. 우선 그렇게 주님을 더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늘 우리의 인내는 하나님의 인내보다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한계에 다다른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행하시며 결국 그들이 행한대로 보응하신 것입니다. 심히 중한 죄에서부터 우리가 쌓아가는 부정과 불순종의 일들이 더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쌓이고 돌아설 수 없을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그래서 불법이 기승을 부리고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돌이시기 전에 주께서 명하신대로 준행하며 살아가는 길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 거둠의 기도

긍휼과 공의를 행하시되 오래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부르심에 속히 응답하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길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민감한

영적 감각을 허락하여 주옵시며

성령이 내주하시는 데 합당한 거룩함으로 채워주옵소서. 

가증한 일들과 부정한 일들에 대해 탄식하고

애통해 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과 감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행실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여

거룩함으로 채워가고 온전함으로 채우는 

오직 의인의 삶으로 채워가는 삶이게 하옵소서. 

우리 삶에 만연되어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가증한 일들을 직시하고 진단하여 돌이킬 수 있게 하옵시며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모든 부정에서 떠나고

공의로 행하시는 여호와를 두려워할 줄 아는 믿음 주옵소서. 

주의 긍휼을 거두시기 전에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신실한 삶으로 돌이키게 하옵시며, 

주께서 명하신 말씀을 따라 매일 매순간은

순종으로 거룩케 하옵소서. 

부디 가증한 죄에서 떠나 거룩한 길로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복있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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