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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02:13-20 복음과 함께하는 고난과 영광


바울 일행이 전한 말씀(복음)을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을 감사하며 그 근거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은 것(동족에게 동일한 고난을 받음)을 언급합니다. 동시에 유대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다시한번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를 떠난 것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다시 가길 원했으나 문제가 있었음을 말하면서 데살로니가교회가 자신의 면류관이며 영광과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 13절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으며 역사를 경험합니다. 

바울 일행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 일행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을 진실로 그러했음을 상기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역사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의 복음을 힘써 전하며 사랑의 원리를 따라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전했던 바울 일행은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상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들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반응한 교회 가운데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결국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전한 복음은 지금 교회가 세워지는 것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바울 일행은 이러한 역사로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에게 가장 큰 보람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영하며 그 말씀의 역사들을 통해 변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들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전해 주신 말씀을 대언하고 있다는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에 반응한다면 그 안에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말씀을 맡은 자도 이 사명과 정체성과 주권을 따라 바르게 전해야 하며, 그것을 듣는 이들도 이 말씀에 합당하게 믿음으로 반응할 때 그에 대한 역사는 말씀의 능력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길 빕니다. 



# 14-16절 하나님의 교회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형제라 부르고 그들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말미암아, 뜻대로, 도우심을 따라, 인도를 따라 등등)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 되었는데 그 내용은 고난 받음입니다. 이는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울 일행을 쫓아 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심지어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을 금하여 자기의 죄를 자신에게 채웁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노하심(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서(말미암아, 인도하심을 따라, 보호하심으로, 역사하심으로 등등) 데살로니가 교회도 자신들의 동족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성도들이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았던 것을 그대로 본받게(따라가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주 예수와 선지자를 죽이고 바울 일행을 쫓아 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바울 일행이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금하여 자시들의 죄를 채우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노하심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로마의 지배하에서 다른 주(主)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반역입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그래서 결국 유대인들은 이러한 반역의 죄를 물어서 예수님을 정치적으로는 로마에 반역한 자로, 종교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신성모독에 해당된다고 하여 고발하고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그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죄로 언급된 내용들을 보면, 우선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인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쫓아낸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적이 되어 급기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까지 금하여 자신들의 죄를 채우게 됩니다. 이러한 죄악의 관영은 곧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여정이 녹녹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여정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여정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동족들에게 고난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에 대해서 고대하던 이들이 정작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따르는 무리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심지어 오든 이들의 대적이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도 우리 주님을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대적하면서 이방인들에게 소외된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불만인 이들이 있을 수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죄에 대해서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행한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고난으로 시작되는 이 여정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 17-20절 하나님의 교회는 사역자의 영광(면류관)이요 기쁨입니다. 

바울 일행이 잠시 떠난 것은 몸이지 마음은 항상 함께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이 계속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했지만 사탄이 막았다고도 말합니다. 이어서 자신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앞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라고 말합니다. 다시한번 그들의 영광과 기쁨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바울은 다시금 데살로니가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습니다. 복음을 들은지 얼마 안된 어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함께하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다시 가려고 했지만 사탄이 막았다고 말합니다. 여러가지 많은 방해와 상황들의 변수로 인하여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들의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 그리고 영광과 기쁨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들은 바울의 면류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이러한 바울의 서신에 큰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과 열정 그리고 고백은 오늘 성도와 교회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을 점검케 합니다. 과연 얼마나 몸과 마음을 다해 열정으로 힘써 말씀을 전하고 거기에 더해 성도(교회)를 다시 만나고 보려고 노력했을까? 그들을 얼마나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양육하기를 힘썼는가? 과연 나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할만한 성도들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우리 주님의 강림하심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의 소망, 기쁨, 자랑, 면류관, 영광, 기쁨은 우리교회입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줏고 역사를 허락하신 주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에 

하나님께 듣는 마음, 하나님의 믕성으로 듣기 원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 속에서 묵상의 능력 경험케 하옵소서.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말씀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 볼 때

늘 교감케 하시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로 경중하며 믿음으로 행하여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으로, 그리고 영광과 기쁨으로

합당하게 살고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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