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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03:14-22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하시고 자칭 부자라 하지만 부족한 것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권하시길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사서 고치라 권하시고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고 징계하시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계속 두드리시며 함께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것을 누릴 것을 요청하십니다. 


# 14-17절 주님은 교회가 진실한 마음과 참된 행위로 단장하며 살기 원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은 아멘이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권이신 분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 신앙을 갖고 있기에 토해 버리리라 경고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칭 부자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곤고함, 가련함, 가난함, 눈 멈,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십니다. 

*

‘아멘, 충성, 참된’ 주님의 모습은 신실한 증인으로서의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의 근본으로 새 창조의 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라오디게아의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거짓되고 역겨운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되어서 그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라오디게아의 신앙은 열정도 냉정함도 없는 적당한 태도로 신앙에 대한 갈급함이 없이 수동적인 신앙으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적인 특성상 실제 골로새의 생수와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수가 먼 거리를 흘러오면서 석회질이 합유된 냄새가 역겹고 물도 미지근해 져서 그 물의 모습과 라오디게아의 신앙의 모습이 유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라오디게아는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으로 부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구성원들도 스스로 부자요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물질적으로 부요할 지 몰라도 그들의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며 오히려 나눌 수 없는 가난함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고 무엇이 주용한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있다고 말하면서 그런 자신들의 모습이 벗거벗은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책망합니다. 

*

경제적으로 부요해지는 경우에 많이 생기는 문제가 라오디게아 교회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고 오늘 한국적 상황과 유사한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입니다. 물질적 풍요는 경국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동일하게 풍요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도 경제적으로는 부요하지만 그들이 내면은 곤고하고, 움켜 쥔 것들을 나눌 수 없는 가련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열정과 냉정함 곧 상식적이고도 이성적인 사고들이 적절하게 작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위 말씀과 기도가 동일하게 작용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와 풍요가 이렇나 것에 대한 갈급함을 앗아가고 사람들이 더이상 내세에 대한 소망도 없고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외형과 겉모습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우선 잘 되는 것들에 빠져서 황금만능주의나 실용주의적인 데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러한 자신을 진단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씀 앞에서, 다시 기도의 자리에서 이러한 열정과 냉정함을 회복하여 우리의 곤고함과 가련함과 가난함과 눈멀고 벌거벗은 것에 대한 진단과 치유와 회복이 있길 기도합니다. 



# 18-19절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책망과 징계 통해 회개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권면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포기 하지 않고 책망하시며 징계를 말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살아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시면서 다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기에 그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며 주님과 더불어 먹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사랑은 때로 책망과 징계로도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향하여 때고 고난과 징계와 책망도 하시는 것입니다(아시아의 일곱교회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향한 애정을 갖고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고 온전하게 세우시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고난을 통과한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 부요하게 하고, 흰 옷(우상숭배와 음행에 동참하지 않은 거룩한 삶)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영적 분별력을 가지는 것)을 사서 눈에 발라 바로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을 ‘사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 가치에 맞게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내어놓거나 포기하거나 내려놓은 희생을 치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행함에 있어 주님은 즐거이 감당하길 원하십니다(밭에 감추인 보와와 진주를 발견한 이가 즐거이 돌아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다고 말합니다. 마 13장)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향하여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고 즐거이 우리의 모든 소유를 주님께 이전하고 주님의 통치와 인도를 따라서 함께 누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변함없이 회복해야 할 신앙입니다. 

*

나의 신앙은 진실한 믿음과 거룩한 삶과 영적 분별력을 제대로 갖고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신앙적으로 죽어버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연단의 손길이 없거나 징계가 없다면 나와 주님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과의 관계를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통하는 일들 그래서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는 동행함이 우리 신앙에 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을 따라서 즐거이 순종해 가는 여정이 우리 신앙의 일상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 음성을 듣고 그 뜻을 따라 즐거이 순종해 나아가는 삶이길 원합니다. 



# 20-22절 주님은 교회가 주의 음성을 듣고 돌이켜 주님과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은 주님의 보좌와 함께 앉게 하기를 주님이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약속해 주시며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말씀하십니다. 

*

이기는 자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된 우리는 주님이 이기셨기에 우리도 이긴 자입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중 이긴자에 대한 약속은 이미 주님이 교회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 안에서 주로 말미암아 약속된 것들을 함께 누리면서 그리고 장차 완성될 것들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우리 주님이 지금 보좌에 함께 앉아 통치하고 있듯이 우리도 상속자로서 그리고 대리 통치자요 청지기로서 주님이 허락하신 것들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 아닌 것들을 섬기고 종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신앙하면서 주의 나라의 대리 통치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음성을 귀기울여 듣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과 능력주심을 따라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주님이 꿈꾸시고 성령님과 더불어 춤추며 살아가는 그런 교회이길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열정과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병들어 버린 영적 상태에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역겨운 신앙속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을 회개합니다. 

우리 신앙에 진실한 마음과 참된 행위를 회복하길 원하오며

곤고함과 가련함과 가난함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 

우리의 모습을 바로 진단하여 부끄러워할 줄 아는 분별력도 갖게 하옵소서. 

불로 연단하는 일들과 

거룩한 삶을 향한 열정과 

영적 분별력을 바로 갖게 하사

열심을 내고 돌이켜 날마다 주와 동행하는 삶이게 하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청지기로서의 삶을 기억하고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따라

주님의 인도를 따라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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