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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01-10 예수님은 약속된 그리스도이십니다


제자 파송 강화를 마치시고 다시 예수님께서도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전도하시며 고치심) 전하시기 위해 떠나가십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이 옥중에서 예수님께서 오실 그이 이신지 묻자 주님은 사역의 열매로 답변해 주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을 자신의 길을 앞서 준비한 선지자보다 나은 이로 소개합니다.


# 참고 : 11-12장은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서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불신앙과 대적과 거절의 반응이 있고 예수님은 계속 초청하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한편으로 예수님께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수용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기독론) 계속 증거됩니다.



# 1절 예수님은 제자를 파송하시고 또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10장의 제자파송 강화를 마무리 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에게 파송을 위한 지침들을 마무리하시고 다시 천국 복음 사역의 가르침과 전도를 위해 떠나십니다.

*

제자는 주님을 따르고 또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하신대로 주님이 가신대로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이들입니다. 특별히 열 두 제자들을 훈련하여 추수를 위해 보내시면서 주님은 천국 복음을 어떻게 증거하고 전할 것인지, 그리고 수반되는 어려움과 핍박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준비하게하고 위로와 격려와 힘을 주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후에 주님은 제자들만 보내지 아니하시고 친히 계속 천국복음 사역을 위해 떠나십니다. 다시한번 4:23, 9:35에서 언급된 천국 복음 사역의 두 가지 즉 가르침과 전도를 언급합니다. 치유사역은 이어지는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사역의 주제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친히 계속 사역하시고, 그것은 제자들과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단독으로 사역하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 그 모든 배후에는 주님의 지원과 응원이 있고 이를 함께하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의 부르심(소명)에 응답한 모든 이들은 다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10장에서 언급된 제자파송 강화의 말씀이 말씀 사역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만 제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같습니다. 참고로 사명은 교회 내에서는 직분의 형태로 세상에서는 직업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된 사명은 축복의 통로나 증인의 형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인데, 이것이 직분과 직업을 통해서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주심을 따라 우리 모두가 제자로 그리스도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은 사명자임을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이 하신 사역이 가르침과 전도와 고치심의 사역들입니다. 이를 통해서 천국의 도래를 선포하시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주님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갖고 계십니다. 그 이름대로 주님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시며, 또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마지막에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신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의 사명의 자리에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고 용기주시고 격려하시면서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증인으로 살며 하나님나라 선포하며 세워가길 원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신 사명을 기억하며 작은 일에서부터 증인되길 원합니다.



# 2-6절 예수님은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께서 오실 그이가 맞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듣고 본 것을 알리라 하면서 치유의 역사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증거(표적)로 제시합니다. 주님에 대해 오해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도 말씀하십니다.

*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도 베풀고 광야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옥중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그가 과연 오실 그이인지 묻습니다. 메시아 도래에 따른 역사들이 과연 있는 것인가? 자신은 여전히 감옥에 있는데 왜 도와주시지 않는 것인가? 왜 심판은 없고 오히려 심판받아야 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가?  하는 의구심들이 있기에 주님께 직접 물었던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인지 아님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 말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지는 이들을 언급한 구절들(사 35:4-6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의 사역에 이 일들이 성취되고 있다고 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기대로 실족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십니다. 요한은 실족하지 않으리라 예상하셨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아와 지금 오신 메시아 사이의 차이로 인해 시험에 드는 일이 없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는 당대 많은 이들이 기대한 정치적 메시아 또는 종말에 오실 메시아가 심판과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한 주님의 사역은 이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정치적 메시아 즉 자신들의 나라를 독립시켜서 새로운 왕국을 세우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또한 이방인들과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에서 독립과 심판의 모습은 요원하고 오히려 고난받는 메시아와 제자의 길, 그리고 심판 받아야 할 이들을 향한 구원의 선포등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 주님에 대한 이해가 날마다 발전 및 성숙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부단히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그 분에 관해서 배우고 알아가는 일이 부단히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앎이 전부인것처럼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됩니다. 삶에는 늘 우리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보다 더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은 역설과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더욱 우리 하나님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른 현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말씀 앞에 나아가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의 한계와 부족함을 확인하고 있는 그대로 내어 놓으면서 아는 것을 확인하고 강화하든지 아니면 고치고 수정하며 성숙해가고 변화해 가든지 그렇게 일평생 우리 주님의 신비 앞에서 조율해 가는 여정이어야 실족하지 않고 온전히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 7-10절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준비한 길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님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한 선지자들보다 더 나은 자라고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요한을 보러 광야에 간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같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갔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요한이 행한 사역은 결국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광야로 요한을 찾아간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광야에 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어떤 경치(풍광)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상징적으로 주관이 약한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세례 요한처럼 기대한 메시아와 달라서 흔들리는 경우가 있을터인데, 이 언급은 요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확인시켜 주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결국 왕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입니다.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결국 사람들은 가짜 왕이 아니라 진짜 왕 곧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한 선지자 요한에게서 말씀을 듣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다시한번 요한을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소개하면서 바로 그 요한이 증거하고 길을 예비한 이(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가 자신임을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10절).

*

지금도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이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묵상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은, 말씀을 듣는 자리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멋진 풍광이나(지극히 주관적인 오늘의 해석) 좋은 옷을 입은 이들을 만나서 하나님 아닌 것들의 도움이나 위로나 성공을 위한 연줄을 매는 것을 위해 처세와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나아가는 것은 말씀의 자리가 아니라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씀의 자리에 나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길 원합니다. 여전히 자신과 기껏 자신의 가정과 교회의 유익만을 구하는 이기적 목적인지, 아니면 정말 주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내가 원하고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들으러 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제자파송 강화 후에 바로 등장하는 세례요한은 제자의 길을 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따라 충성된 길을 간 사람입니다. 옥에서 비록 억울하게 죽었지만 마침내 오실 그이가, 자신이 예비한 길을 따라 오실 그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 갔을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알고 계셨고, 그가 사명에 충성된 이라고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지금도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제자, 구별된 제자 곧 거룩한 제자로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들을 주님도 찾으시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말씀에 갈한 영혼들이 도처에 있는 줄로 압니다. 우리가 알고 묵상하고 배운 말씀 통해서 만난 그 주님을 부지런히 증거하고 나누길 바랍니다. 여러 매체 삶 도구들을 활용하여서 증거하는 사역들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줄 압니다. 세상에 널린 소통의 도구들에 복음을 실려 보내는 이들이 되길 기대합니다.



# 기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사명 주신 하나님 아버지

열심히 배우고 듣고 고침받아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되어

천국복음의 소통과 전파의 사명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때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만날 때마다

주님의 조율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 지혜와 분별력과 수용의 마음들 주소서.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나를 빚어가는 일을

쉬지 않길 원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우리 주님을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길 원하오며

우리 삶의 이유와 목적이

늘 주님과 더불어 찾길 원하며

우리에게 주신 이 천국 복음을

허락하신 소통의 도구들을 통해

증거하고 흘려보내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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