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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34-42 갈등과 충성 그리고 제자의 길


세상을 향하여 천국 복음을 선포할 제자들을 향한 지침들을 마무리 하는 단락입니다. 이제 세상(제자가 가는 곳, 복음이 선포되는 곳 등등)에 나아가 본격적으로 천국 복음을 선포할 때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되는데 가족들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주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는 주님이 보내신 이들(사도)이기에 제자에 대한 태도는 주님과 동일시 됩니다.


# 34-36절 화평과 불화 사이에서

주님은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급기야 가족간에 불화하게 하여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십니다.

*

이제 사탄의 권세 아래, 거짓 왕의 치하에서, 그리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다른 가치관과 다른 세계관을 갖고 사는 세상을 향하여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충분히 갈등이 야기됩니다. 로마와 헤롯왕의 치하에서 복음은 반역과 반란적인 요소가 가득하고, 유대교 안에서는 이단적인 사상을 퍼뜨리는 자로 오인될 수 있으며, 이제까지 왜곡되고 변질된 신앙 전통에서 살고 있던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앙관을 전환해야 하는 혁명적인 전환을 야기할 수 없는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도모하시기 위해서 오셨으나 그 화평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주어지는 희생의 결과입니다. 그런 희생의 과정에는 검(劍) 곧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힘든 갈등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신앙관에 있다가 혁명적인 천국복음의 전파에 대하여 당연히 다른 생각을 갖는 이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일부러 화평을 깨고 가족과 불화하라는 목적이 아니라 참된 화평을 위해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타협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

지금도 하나님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는 믿음의 여정에서 가족과 겪는 많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극단적으로 적용한 이단들도 잘못 적용한 것이고, 또 이 말씀을 오해하여 가족을 원수처럼 대하면서 도를 넘는 언행도 삼가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싸움의 방식에 있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실과 사실을 전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수용하고 인정하고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전하느냐는 때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일전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말이어도 누가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가족간에 다른 신앙관으로 야기되는 불화의 때에 제자 또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긍휼을 잊어서는 안되며 싸움의 방식도 폭력이나 무력이 아닙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희생을 전제로 한 언행심사를 가질 때 가장 온유하나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가족과 언성을 높이고 이단들처럼 급기야 가족을 고발하고 이탈하고 파괴하는 행위들은 결코 가정을 허락하시고 세우신 주님의 뜻과는 무관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극단적으로 오해한 처사이기에 삼가해야 합니다.



# 37-39절 가족, 자기 사랑과 주님 사랑 사이에서

주님보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자기를 더 사랑하는 자는 주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가 오히려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먼저 이 말씀에 대한 오해를 먼저 언급해야 합니다. 소위 교회다닌다고 부모와 자녀에 대한 부양과 책임의 의무를 내 팽개치고 다니는 것을 합리화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 모두의 책임과 자세에 있어서 결코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예를 고르반의 이야기에서도 그리고 구약에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자녀를 향하여 애정어린 책임을 다하는 권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희생없는 사랑만 가족을 향하여 말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득불 신앙 여정과 제자의 길 특히나 사역의 여정에서는 가족과 주님 사이에서 충성의 우선순위에 있어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충성과 의무의 우선순위에 주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 삶의 최고봉이요 최우선 순위에 계시는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판단하는 데에도 믿음과 지식도 필요하고, 그리고 결단하는 데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때문에 당하는 수치와 고난과 핍박을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을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자기 부인’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제까지 제자의 길에 대한 한마디의 요약이 바로 이 표현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

제자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은 생명이 걸린 정도의 각오와 충성과 비중을 갖는 일입니다. 단순 자기 만족이나 위안과 평안을 위한 심신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삶의 전반을 재편하고 가치관과 세계관의 혁명적 전환과 삶의 모든 분야에서 새 사람을 덧입는 새 나라, 새 시대를 살아가는 일이기에 그 나라 그 백성 그의 제자로 살아가는 일은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기존의 모든 것들을 심지어 생명가지도 내려 놓아야 합당하게 새 나라를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도 아직 이러한 자기 부인이 없다면 아직 주님을 따른 회개가 이뤄지지 않음이요, 신앙 여정에서도 이러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다면 나는 지금 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길로 행하고 있는 것이요, 날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데에 대한 갈등이 없는 것도 역시 우리 신앙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속히 내가 선 자리와 내 삶의 방향과 내용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정말로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만든 우상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40-42절 영접과 상(賞) 사이에서

제자를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함이요, 주님을 영접함은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선지자와 의인으로 영접하는 이들은 그에 합당한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를 향한 작은 섬김 하나라도 주님은 귀히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처음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영접’에 대한 문제를 다뤘습니다. 우선 거절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제자 파송 권면의 마무리 부분에서는 영접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에 대한 보상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전령과 사신의 권위는 그를 보낸 이의 권위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주님과, 주님이 세상에 보내신 제자의 권위는 모두다 보내신 이의 권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이 세상 가운데 보내신 이인줄 믿습니다. 그 권위는 군림이 아니라 책임이요 충성을 요하며 담대히 나아가는 위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선지자의 이름과 의인의 이름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제자들을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말씀을 따라 사는 의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집으로 들여 대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제자들이 전한 천국복음을 인정하고 수용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賞)은 주님이 잊지 않고 보상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를 작은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은 자’는 천국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반응 하나하나에는 그에 따른 상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천국 복음에 대한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할 수만 있는대로 부지런히 전하고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고, 주의 말씀에 대한 매일의 묵상과 순종을 우리 주님이 기억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위로도 경각심도 그리고 신실함과 충성도 늘 고려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걷되 주님의 손을 붙잡고 또 즐거이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 보냄을 받아 우리 모두는 세상을 향해 천국 복음을 전하는 제자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주어진 권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가족과 세상을 향하여 긍휼의 마음을 품고서,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의 제자입니다. 부르셨기에 뜻이 있고, 보내시면서 능력을 주셨으며, 증거할 때에 상을 주시며 마침내 모든 일을 마칠 때에 칭찬과 영광이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에게 말씀 전하는 이들에 대한 반응은 곧 주님께 대한 반응과 같습니다. 이는 말씀에 대한 반응이 주님께 대한 반응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나는 주의 말씀을 잘 영접하며 생수 한 그릇 만큼이라도 반응하고 있을까요?



# 기도

우리를 제자로 불러주시고 세상에 파송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보내신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기 원합니다.

천국 복음을 증거하고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가족간에 지혜롭게 처신할 능력을 주시옵고

갈등 속에서도 불화 속에서도 긍휼의 마음을 갖고 말하고

행동에 있어서도 천국에 합당하게 처신케 하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극단적인 단절과 무력 그리고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알고서

주님 사랑을 최 우선으로 하되

그 사랑을 받은 대로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자이길 원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혼돈하는 어리석음 범치 않게 하옵시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반응에는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의 상벌이 있음을 기억하고서

거절이든 영접함이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상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이 길 가면서

책임과 의무에 충성하고,

주께서 주시는 위로와 능력으로

위로와 소망을 얻고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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