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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08:14-22 치유하시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


배척당한 이들을 회복시키신 주님께서 소외된 계층인 여인(베드로의 장모)을 치유하시고 이러한 사역들이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신 것임을 요약적으로 마무리 합니다. 그런 주님을 따르려는 이들을 향하여 제자의 길이 좁은 길이며 우선순위가 바뀌는 길임을 가르치십니다.


# 14-17절 치유 사역은 예수님께서 약속된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증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치유해 주시자 곧 수종을 들정도로 회복됩니다. 이후로도 귀신들린자들과 병자들을 치료하시는데 이는 이사야의 말씀을 성취함을 뜻한다고 마태는 증언합니다.

*

나병환자, 이방인 백부장에 이어서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시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배척당한 이들, 소외된 이들로서 천국의 외인이라 생각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회복하여 천국백성 삼아 주십니다. 일차적으로 베드로의 장모는 그런 소외된 여인을 예수님께서 회복하시고 온전케 하심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물 때 사람들은 귀신들린자들과 병든 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온 모든 이들을 고치십니다. 이 또한 이사야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라고 요약합니다. 앞서 나병환자의 치유와 소외된 이들의 회복을 보여주면서 결국 격리 외면받던 이들이 주의 은혜로 고침을 받게 된 것을 보여줍니다.

*

짧은 구절로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한 사건을 설명하고 있지만 행간에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왜 하필 수제자라 하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까? 이 열병은 어떤 병인가? 예수님은 그의 손을 만지면서 어떤 말씀을 해 주셨을까? 굳이 이 부분에 없어도 되고, 다른 여인을 치유한 이야기여도 될텐데 왜 하필 베드로일까? 하는 등등의 의문도 듭니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열병이 가벼이 여길 병은 아니라는 사실과, 그렇게 열병에 걸린 것은 가족들과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는 데에 많은 고민을 갖게 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의 집이 예수님의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바 그녀를 치유하는 것은 단순한 치료에 그치지 않고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역에 중요했다고 보여집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긍휼을 베푸시고 이내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들었다고 나옵니다. 단순한 질병만을 치료한 차원을 넘어서서 장모님의 마음까지 치유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곧 베드로를 비롯한 가족 모두 주님을 따르는 데에 짐이 될 수 있었던 부분들을 치유해 주신 사건으로 보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가족의 아픔은 많은 부담을 줍니다. 이 사건과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사건(21-22절)은 우선순위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는 감내하고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내 팽개치고 무책임하게 살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장모를 치유하여 가정을 회복시키시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장사를 치루는 문제에 대해서는 때로 가족보다 더 우선해야 할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금 주어진 가족들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입니다. 이 가정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함께 가야하지만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알고 잘 섬기고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사명도 함께 생각하는 믿음, 우선순위에 대한 지혜로운 처신과 더불어 모든 것들의 기초위에 사랑이 있어야 함도 더불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면서 함께 치유사역들을 병행하시면서 귀신을 내어쫓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심은 연약한 우리들을, 하나님을 떠나 병든 우리들의 죄의 짐을 친히 담당하시고 대속하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참된 해방과 회복을 주시러 오신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인적인 주님의 치유로 우리의 온 몸이 주님이 받으실 만한 합당한 몸으로 거룩한 산제사로 온전히 받으실 많한 삶이길 원합니다.



# 18-20절 제자의 길은 내 뜻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무리들이 주님을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십니다. 이 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어디든 따르겠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사역이 진행되면서 많은 무리들이 주님께 나아오지만 아직 이 무리들이 주님을 바르게 알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여전히 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기 보다는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으로, 당장 눈 앞에 있는 문제와 아픔을 치유해 주시는 분 정도로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선생님, 주여)에서도 주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들이 주님께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 아직은 건강하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올 때 부족한 제자들은 자칫 교만해질 수 있으며, 잘못된 기대로 온 무리들은 또 그렇게 잘못된 기대가 깨지는 때에 실망하거나 좌절할 가능성이 있기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피할 것을 명한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이며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찾고 따르려 했을 때 왜 그러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이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시점에서 몰려운 무리들에게 결국 이끌려 교만하게 되거나 넘어지는 일들이 만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깊이 유념해야 할 모습입니다.

그래서 한 서기관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건은 제자들에게 주님을 따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이 서기관이 일단 주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아직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문화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는 때이기에 주님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지는 서기관의 선택에 대하여 그의 문제를 통해서 제자의 길을 가르친 것입니다. 여우와 공중의 새 모두 거처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거처가 없이 다녀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주님을 따르겠다는 서기관의 고백은 아직 주님을 따름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나오는 호기로 충동적인 결단으로 지극히 이기적인 고백으로 보여집니다. 제자의 길은 한순간의 결단과 용기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주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고, 외로움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그래서 때로는 이 땅에서 아무런 보상도 없을 수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는 그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감수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

목회와 신앙의 여정 가운데 사람들의 인정과 하나님의 평가가 늘 일치하진 않습니다. 공동체가 작든 크든 마찬가지로 항상 주님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여정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렇게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는 늘상 한적한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시간의 성소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신과 공동체를 객관적으로 진단하여 자칫 휩슬려 주체할 수 없는 나락으로 치닫는 일들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일에 끌려서, 무리에 끌려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목회와 신앙과 삶의 여정이 아니라, 본향을 향하여 가는 나그네와 같은 여정 바로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음을 기억하면서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이 가신 그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만 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이 모든 여정을 감내할 능력과 지혜를 주님으로부터 받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21-22절 제자의 길은 우선순위가 바뀌는 길입니다.

제자 중에 한 사람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장사하고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자 주님은 그 일보다 우선 주님을 따름이 우선하는 일임을 주지시켜 주십니다.

*

아직 살아 있는 베드로의 장모의 질병은 고치심을 통해서 회복시켜 주시면서 우선순위에 대한 부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선순위가 주님을 따름이 먼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선 이 사건은 보편적으로 가족에 대한 처신을 가르치는 모델은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가족 부양의 의무나 가족을 향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면서도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구절은 아닙니다. 제자의 길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주님을 따름에 있지만 그것이 가족을 향한 의무를 소홀히 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를 오해한 많은 이들이 가정을 희생하여 혹은 무책임하게 방치한 채 주님의 일을 빙자하여 살아간 이들이 있는데, 그 주님의 일이라는 것을 가만 보면 진짜 주님의 일이기 보다는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으로 분주해진 일인 경우도 있음을 봅니다.

당시 문화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일보다 우선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유대 문화의 장례 절차는 2차에 걸쳐 진행됩니다.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루는 1차 과정과, 가묘된 뼈를 가족묘로 옮기는 2차 장례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일들 모두 중요한 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를 향하여서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어 우선한 일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신앙은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하게 합니다. 만일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 삶의 우선순위가 재편되지 않고, 최고 순위에 주님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면 아직 그 사람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재편되면 분주할 일상에서도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으며, 분주한 삶도 정리가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일이 없어도 분주하여 복잡한 이가 있고, 일이 많아 분주하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이가 있습니다. 우선순위에 대한 분별과 지혜의 유무 차이입니다.

많은 것들이 주인 노릇하려는 세상, 분주한 우리의 일상, 그리고 끌려가듯 살아가야 할 인생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는 주님과의 관계가 최고봉인 것을 기억하며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한 삶의 가치에 대한 정리 정돈이 우리 신앙여정에 매일 진행되지 않으면 어느새 쌓인 일들이 이리저리 걸림이 되어 분주한 일상에 매일 끌려가듯 살아가다 삶의 방향과 내용이 엉망이 되는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주님 앞에 서서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분주한 일상에서도 주님을 따름을 우선으로 하면서 지혜로운 처신의 사람이길 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치유하며 온전케 하신 주님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서

우리 가정의 주인이 우리 주님이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을 친히 담당하셨음을 믿으며

회복케하시고 고치시고 싸매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몸뿐 아니라 전인적으로 치유하고 회복하시는

주님의 그 은혜를 늘 경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지금 아픈 가족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사람들의 환호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바른 길 가야 하는 분별력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여정을 감내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풍성히 갖게 하옵소서.

분주한 일상에서도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는

믿음과 지혜로 충만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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