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08:11-20 신명(申命), 잊지마라

by 평화의길벗 posted Jan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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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08:11-20 신명(申命), 잊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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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잊지 말라는 말로 인클루지오(감싸기 구조; 강조를 위해, 11절+19-20절)되어 있습니다. 풍요로 인해 풍요를 주신 하나님을 잊고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가나안 족속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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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절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고 여호와를 잊지 않도록 삼가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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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을 지키지 않는것은 여호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기억하지 않기에 당연히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잊으면 당연히 그의 명령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기억한다면 그의 계명도 지킵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여호와를 기억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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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배우며 각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는 그분의 명령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그분의 명령도 지킵니다. 기억과 순종, 믿음과 행함, 예배와 삶, 기도와 실천, 앎과 지킴은 모두 다 함께여야 온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며 온전함으로 나아갈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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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절 여호와께서 복주셨기에 지금 우리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누리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배부르고, 좋은 집을 짓고 살며,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증식되며 소유가 풍부하게 되면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를 잊게 됩니다. 그래서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인도하시며, 거칠은 광야를 지나게 하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를 먹이심은 이스라엘로 겸손히 행하며 복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생하는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교만해진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재물 얻을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맹세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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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고 살만해지고, 풍성해지면 어느새 자기 능력으로 그 모든 풍요를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풍요가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가나안 땅이 주는 유혹 첫째는 우상숭배의 유혹는, 둘째 풍요입니다. 풍요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인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위험과 가나안 사람들의 군사적 위협보다 더 무서운 것은 풍요의 위험입니다. 대부분은 풍요 때문에 무너집니다. 모세는 그것을 우려하고, 이스라엘 역사를 경험한 신앙의 선진들도, 히브리서도, 예언자들도 가나안의 풍요를 비판적으로 그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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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곧 약한 영적 체질로 허약한 교회로 된 것이며, 외적으로는  풍요로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빈곤이 한국교회를 이렇게 허약하고 부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위협에도 흔들리고, 조그마한 이단적 사상에도 쉽게 흔들리는 허약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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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이 한국 땅에서 건강하게 자라가길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풍요를 간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오히려 위험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부족해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풍요를 추구하는 신앙을 조장하는 것이 오히려 성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갖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주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다 누릴 것 누리고 천국가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을 했으면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는 광야의 영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혹독한 환경, 거기에서 탁월한 영성이 생겨납니다. 사막의 수도자들의 그 예입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그런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중세의 기독교 위기의 상황에서 수도사들이 기독교 영성을 지켜낸 것입니다. 한국이 부강하게 되고 풍요롭게 되니까 마치 우리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런 것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있는데 그것을 잊으면 이스라엘처럼 됩니다. 그것을 잊고 멸망의 길로 갑니다. 우리도 그 경계(기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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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절 여호와를 잊으면 멸망한 민족들처럼 진멸의 대상이 되기에 여호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림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은 풍요로움 때문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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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풍요로움 때문에 하나님을 잊고 다른 신을 절하면 너희가 반드시 멸망한다고 강조합니다. 빈말이 아니고 그렇게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 앞에서 여호와께서 멸망하는 민족들(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같이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실제 이스라엘의 운명은 그렇게 됨을 증명합니다 .이 경고를 가슴에 깊이 새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마 하나님이 우리를 멸망시킬까? 왜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전이 여기 있고, 섬기는 제사가 있는데 우리 나라를 멸망시킬까? 했는데 그 설마가 사람잡고 멸망시키고 말씀한대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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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를 망각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신행(信行)불일치된 신앙은 이미 사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제대로 알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믿지도 않고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일 또한 그렇습니다. 그분의 뜻을 알려고도 않고 순종은 커녕 믿고 알고 사는 일이 불일치 하는 일은 역시 불신앙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우상처럼 섬기며, 자신이 필요할 때만 소환하고 주님이 아니라 종부리듯 섬김이 아니라 부리듯 믿는것 역시 멸망의 길입니다. 보배로운 소유로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의 내용과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함께하심과 사명에 있어서도 무관심하다면 이 또한 하나님을 망각한 멸망과 심판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히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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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 삶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뜻을 망각하고

자유케하신 은혜에서 떠나서

다시 주님 아닌 것들에 종노릇 하며 살아가는

모든 멸망의 삶에서 돌이키기 원합니다. 

무리의 모든 삶이

주님의 허락하심과 채우심으로 말미암은 줄 알고

여기까지 도우신 주님의 인도와 보호와

복주심과 양육하심의 은혜인줄 알고

감히 내 능력과 힘으로 가능한 줄 착각하는

교만된 맘은 결코 생각지도 말게 하옵소서. 

여호와를 기억하고

여호와께서 우리의 모든 소유를 허락하셨음을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역사의 전철을 밟는 어리석음에서 떠나고

날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에

신실함으로 반응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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