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07:12-26 신명(申命), 기억하라

by 평화의길벗 posted Jan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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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07:12-26 신명(申命),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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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이행하고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법도를 잘 지켜 행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서 누릴 것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베푸시는 인애와 더불어 다시금 진멸과 올무가 될 우상 숭배를 금하십니다.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도하신 여호와를 기억하라 상기시키고, 여호와께서 친히 진멸하실 것이니 끝까지 우상을 타파할 것에 대해 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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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6절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인애를 기억하고 헤렘하라.

여호와의 법도를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도 언약을 지키고 인애를 배푸실 것입니다.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고 번성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은혜로 베푸시고, 풍성한 수확과, 가축의 번식에 있어 만민보다 더할 것이며, 모든 질병에서 건지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진멸의 대상을 향하여 긍휼이 여기지 말고 그들의 신도 올무가 될 것이기에 섬기지 말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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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보배로운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의 택하심과 구별하심과 사명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입니다. 언약은 상호간의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무엇보다 주신 선물이 아닌 주신 여호와를 사랑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거하고, 그곳에서 부요를 누리고, 대적을 멸하면서 생육하고 번성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애로 말미암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것들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올무가 될 탐욕의 우상들을 멸하는 일에 긍휼을 베풀지 말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 결국 넘어지고 올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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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헤세드)는 자비, 사랑, 충성등의 의미로 번역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헤세드는 자비와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보일 헤세드는 충성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애와 우리의 충성이 이 땅에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고, 고통도 고난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이 부요할 때, 섰다 할 때, 족하다 할 때 늘 시험에 들거나 넘어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물질 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눈에 보이는 우상들에 미혹되어 올무가 되어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애를 기억하고 이러한 것들을 단호하게 헤렘(진멸)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의 방지 차원에서 그리고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헤렘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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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4절 여호와의 행적과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두려워 말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데 있어 염려되어 두려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을 아시고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과정에서의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합니다. 그러니 모든 민족을 향하여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히 진멸하리라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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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시작하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기억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지키면 복을 받게 될 것이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19절)합니다. 구원의 사건 기억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가늠하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돌아보면 답이 나옵니다. 미래는 두려움으로 오는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그 부분만 보고 가면 됩니다.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키고 인도 보호하셨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신실하시기에., 내가 먼저 배반하지 않는한 절대로 하나님이 먼저 배반하는 일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어떻게 행하셨는지 우리는 점검하면서 미래로 나가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대적에게 왕벌을 보내실 것이라(20절) 말씀하시며 두려움을 안겨다 줄 것을 친히  제거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왕벌은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 아닌 ‘두려움’ 그 자체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은 강한 민족들입니다. 덩치가 크고 국가로 세워져 있고, 성벽도 큰 난공불락의 요새 가진 민족입니다. 당연히 그들과 싸워야 할 이스라엘은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아시고 여호와께서 두려워 말라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에게 두려움 안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21절에서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께서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주면 대적들은 상식 밖의 행동을 보입니다. 그래서 혼비백산으로 물러나 패배하게 됩니다.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거룩한 전쟁의 모티브입니다. 여기에는 항상 ‘하나님의 두려움’이 많이 나타납니다. 대적을 이기는 방법이 이것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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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두려움’의 문제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염려와 근심이 커지면 두려움이 됩니다. 염려와 근심을 묵상하면 두려움이 배가됩니다. 우리 스스로 이 두려움을 떨치거나 극복하거나 이길 수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크고 두려운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경외를 중단한다면 모든 두려움이 엄습하게 됩니다. 

묵상과 기도는 기억을 소환하고 굳건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과, 지금도 함께하시는 것과, 이후로도 변함없이 신실하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구원과 임마누엘과 역사와 동행과 예비하심과 승리하심, 어제와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사랑하심, 천지 만물을 주관하심, 생사화복의 주관하심, 만왕의 왕되심, 창조와 심판하심, 영원하심, 성령을 보내심, 은사를 주심, 역사하심, 필요를 채우심… 등등을 기억하고 기대하고 신뢰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24절에서 한가지 가나안 땅의 일차적 전쟁의 대상은 왕들입니다. 그래서 왕들의 목록을 나열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인 가나안의 왕들이 심판의 일차적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의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우상숭배와 더불어 타락한 문화, 왕정으로 대변되는 억압과 착취의 구조 때문입니다. 그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세울 것입니다. 피라밋 지배 구조에서 하나님만이 왕되시고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공평하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그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다 평등한 사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적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보면 훗날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왕정사회를 헤렘하고 새로운 평등주의적 이상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는데 어리석게도 이스라엘이 이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결국 다시 가나안의 왕정으로 회기한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냥 뒷짐 지고 보고만 계셨는가? 아닙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다윗입니다. 가나안의 왕정으로 회기할 뻔한 역사를 하나님은 막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다윗언약입니다. 우리 인간은 계속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행하는데 하나님은 인류구원의 과업을 궁극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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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6절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는 것을 탐내거나 취하지 말라.

두려움 때문에 또는 탐욕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탐내지 말고 그것들을 취하지 말라 합니다.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여 그것이 올무가 되어 그것들을 집에 들일 경우 역으로 진멸 당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며 탐욕의 우상에 대해 단호하게 처신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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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는 가증한 것이니 이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라 합니다. 그러면 역으로 진멸의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헤렘의 규정을 어기면 그 자신이 헤렘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멀리하고 심히 미워하라 합니다. 훗날 아간은 이와같은 규정을 어겼기에 이에 대해서 초기에 단호하게 처리하신 것입니다. 초장부터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어긋난 처신으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 싸움이 금새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내로 경주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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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멸에 대한 비평적인 견해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할 때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영적 대상입니다. 악한 세력입니다. 진멸대상은 우선 내 안의 죄성, 가나안적인 문화, 우상 숭배적 요소, 쾌락 추구하는 마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거룩성을 지키는 것,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입니다. 교회는 생명 공동체이며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세속의 물결이 교회의 순수성 훼손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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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약속에 신실하시며 인애가 크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복을 주시며 번성케 하신 주님

우리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이 주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위급하거나 평안하거나 평범한 일상에서도

변함없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이어가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모든 법도를 잘 지켜 행하는

말씀위에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이게 하옵소서. 

올무가 될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

우리 앞에 닥친 어떤 것으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시며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성숙으로

시험을 위해 가다오는 것들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주님이 먼저 싸우시고 예비하심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억하고

탐욕을 부추기는 것들을 가증히 여기며

결코 호리라도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을

주님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신뢰하며

이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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