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04:44-05:10 신명(申命), 첫 두 계명

by 평화의길벗 posted Jan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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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04:44-05:10 신명(申命), 첫 두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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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설교의 시작을 알리며 먼저 요단 동편 지역의 정복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임을 돌아보고 이어서 십계명을 선포합니다. 지금 설교하는 규례와 법도(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를 잘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언약을 오늘 듣는 이들과 맺은 거심을 강조합니다. 언약이 모든 세대를 포함하는 뜻입니다. 이어서 첫 두 계명을 재해석 해 줍니다. 

# 신명기의 역사적 배경과 성령으로 성경읽기

신명기는 세 가지 역사적 배경을 염두하고 읽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둔 모세 당시와 요시야 왕 당시,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요시야 왕 당시는 연합을 강조했고, 바벨론 포로기는 소망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읽을 때 꼭 한 시기만으로 특정지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각 본문이 시대마다 주어지는 메시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신명기를 읽으면 메시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꼭 모세 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죽은 말씀이 됩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말씀으로 적용되는 능력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가르치거나 선포할 때도 똑같이 성령의 조명으로 인도하심을 따라 해석하고 전해야 합니다. 

또한 구약의 율법은 어느 한순간에 주어지기보다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거기에 필요한 규정이 만들어 지기도 하고, 상황이 변하게 되면 재해석되고 보충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많습니다. 복음서에 네 개의 책이 있듯이, 전승에 있어서의 차이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복음서를 일치시킬 수 없습니다. 시간적인 장소 차이 등등을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에 어긋납니다. 각각의 책이 말하고 강조하고 설명하려고 하는 부분을 문맥을 따라 찾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령께서 저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왜 이렇게 구성하여 말씀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 있어서 성령이 빠진 설교는 아무 의미 없는 인간의 소리에 불과합니다. 설교는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기록한 말씀을 풀어주셔야 각 사람의 마음에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 됩니다. 가령 천명이 모였는데 같은 설교를 하는데도 다 다르게 받습니다. 한번 선포한 메시지가 똑같이 천명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의 말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빼면 성경해석도, 전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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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44-49절 하나님은 은혜 베푸신 후에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증언하고 선포한 규례와 법도입니다. 이제 요단 동쪽에서 다시 이들에게 율법을 선포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다 먼저 싸우셔서 아모리 족속의 왕을 쳐서 기업으로 얻은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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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출애굽 이후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주어진 천국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는 또 다른 은혜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에 주었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 요단 동편 벳브올 맞은편 골자기도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의 왕을 쳐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서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출애굽과 마찬가지고 가나안에서의 삶의 태도 역시 하나님의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허락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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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의 말씀을 준행하며 사는 것은, 우리를 새롭게 하신 주의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건, 복을 더 얻는다거나 거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살리시고, 생명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다라 사는 삶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 아닌 것들의 종노릇 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의 길에 회의가 들 때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 이후로도 변함없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 다시금 영적 긴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늘 기억하는 지혜로운 인생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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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1-5절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규례와 법도를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며 살길 바라십니다.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 합니다. 또한 이 언약이 호렙산에서 세운 것인데 조상 뿐 아니라 여기 살아 있는 우리와 세운 것이라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 중간에 서서 이 말씀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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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라는 동사의 나열을 통해서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설교는 듣는 것이고, 성경공부는 열심히 배우는 것입니다. 묵상은 자기가 깨달은 바를 지켜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표현은 신명기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연속성을 나타내는 수사기법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지금 신명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모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이전에 시내산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태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마치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이 호렙산의 언약을 경험하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 세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호렙산의 언약체결은 과거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세대를 포함해서 구속력이 있는 사건으로 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또는 기억을 통해서 내가 바로 그 과거의 역사적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더불어 그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재화하여 나를 향한 말씀으로 듣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과거의 단회적 사건으로 머물지 않고 신학적으로 모든 세대의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 요단 동편에서 그랬고, 다윗에게도 그렇고, 출바벨론에서도 그랬고, 예수님의 세례와 거라사 광인을 치유하는 곳에서도 그랬고, 많은 이들의 회심의 과정에서도 그랬고, 신약 서신서의 회심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역사 이래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구원받은 모든 이들의 사건이 출애굽 곧 구원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이 사건에 참여합니다. 과거의 사건은 기억과 의식을 통해 현재화 되고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며 과거의 해방의 사건으로 돌아가서 그 사건이 오늘 현재의 사건으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결정적인 출애굽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 때의 사건에 참여합니다. 2천년의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건에 참여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한 그 군중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백에서 우리의 구원 경험이 출발됩니다. 이것이 현재화 되도록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이 사건이 적용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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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로 주의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는 복있는 자로 살기원합니다. 날마다 그 말씀이 그런가 하고 상고(질문)하며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기 원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는 듣는 마음을 원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 말씀을 먹고, 말씀을 살아내며 말씀을 맡은 자, 말씀을 살아내는 자, 말씀을 증거하는 자, 말씀을 선포하고 사는 자 되기 원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 이 말씀의 사건이 오늘 여기에 주어진 말씀으로 잘 알아듣기 원합니다. 우리 가족들도 그런 묵상의 능력을 소유하여 지금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서 순종하며, 이 험한 세상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로 해아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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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6-10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은혜 베푸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계명을 주신 여호와께서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분이라는 전문을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제1계명을 통해 독점적 사랑을 요구하고, 우상을 금합니다.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의 죄는 삼 사대까지, 여호와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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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을 먼저 주시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이를 구출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구출하여 살리시고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구원의 사건을 언급하고 율법을 지키는 내용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역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제1계명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배타적인 관계를 설정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파트너에게 독점적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나만을 사랑하고 다른 신 사랑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욕심이 많으셔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니 우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른 신 같이 섬겨서 잘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겨서 잘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나만 섬기라 그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데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만든 이 인간들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유비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 아버지와 아들보다 더 친밀한 관계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신명기는 여러 곳에서 남편과 아내로 묘사하며 그만큼 관계가 친밀해지고, 신앙적으로 친밀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신명기가 오경의 결론입니다. 오경은 이스라엘의 영적 성장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이야기처럼,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앞으로 만들어질 이스라엘의 이야기의 패러다임입니다. 그래서 오경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제 2계명에서 야웨의 형상화를 금지합니다. 야웨 하나님을 형상화시키는 것의 문제는 인간의 한계, 눈에 보기 원하고, 보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약점이 우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안보이는 하나님을 자꾸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진짜 본질적인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안보이는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면 타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성전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진짜 성전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아직도 눈이 열리지 않았기에 예루살렘 성전이 진짜 성전이라 착각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이미 예루살렘 성전은 진즉 그 기능이 척결되었습니다. 플라톤은 그것을 깨닫고, 이땅에 있는 것은 하늘의 모조품이라 말하며 이데아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금송아지로 만듭니다. 아론도 여로보암도. 하나님의 모습을 송아지 형태로 백성들에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송아지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에 그룹들이 송아지로 나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만들어 놓고서 이것이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한 신(야웨신)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서 신명기 저자는 우상숭배와 똑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어떤 틀 안에 갖히시는 분 아닙니다.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인간은 내가 만든 틀안에 가두고 절대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틀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형상 뿐 아니라 가치, 신학적 틀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신학적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둘 수 없습니다. 신학으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이 분명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따질 수 있는가? 그래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유하심. 인간의 가치 철학 교리 신학으로 하나님을 우리가 가둬두려는 시도를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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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는 배타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는다 합니다. 죄가 없는데도 자식을 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니다. 이는 신앙의 공동체성의 표현입니다.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공동체가 같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잘못되면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당대 3-4대가 한 가족으로 구성되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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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를 해방하셔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도,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하는 것도, 섬기지 말라 하는 것도, 모두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자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온전한 순종 즉 사랑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은혜를 천 대까지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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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구원하시고 세우시며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말씀하시고 함께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먼저 구원하시고 살리시고 새롭게하셔서

거룩한 주의 백성 됨과, 그 백성의 거룩한 길을

가르쳐 주시고 듣게 하시고 순종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지키기를 즐거이 감당케 하옵시고,

날마다 말씀을 맡은 자로 잘 증거하고 또한 듣게 하옵소서. 

말씀의 뜻을 찾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주야로 즐거이 묵상케 하옵소서. 

우리 가족들 모두다 묵상의 능력을 소유케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에

오래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역사해서

오늘 여기에 함께한 말씀으로 듣고 순종케 하옵소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 되신 주님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다른 신을 만들지 말라 하셨으니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원하옵서. 

외형적 우상 분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리는 많은 

탐욕으로 인한 겉치레가 많은 우상을 만들게 되니

온전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도 사랑하기 원하고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으니 즐거이 순종하기 원하고

여호와를 사랑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복주시고

천대까지 베푸신 은혜를 소망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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