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13-23 새 인류의 삶_사랑으로 행하라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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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13-23 새 인류의 삶_사랑으로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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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된 이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하나님이 받으심, 모두 주를 위해 행함, 모두 하나님께서 심판하심)를 제시한 후에 이 모든 일들을 사랑으로 행해야 할 것을 다각도로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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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묵상 : 형제를 어렵게 하지 말고, 너희 선한 것이 비방 받지 말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게 말고, 믿음을 따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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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1-15:13의 문맥 흐름 - 실제 :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인류의 삶

 A. 12:1-2 새 백성의 마땅한 삶 : 영적 예배

 B. 12:3-15:13 새 백성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

    1. 12:3-21 원리 제시 : 새 백성의 삶의 원리 제시  - 개별적, 공동체적인면 함께 생각하라

      1) 12:3-8 공동체 측면 : 지체의 원리

      2) 12:9-21 개별적 측면 : 사랑의 원리

    2. 13:1-15:13 새 백성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

      1) 13:1-14 로마 사회에서 사는 문제

      2) 14:1-15:13 로마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문제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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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15:13의 문맥 흐름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 말고 사랑으로 받으라

1. 14:1-23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고 사랑으로 받으라 

   1) 14:01-12 이론적 권면 : 연약한 자를 받고 비판하지 말라

   2) 14:13-23 실제적 권면 : 사랑으로 하라 

2. 15:01-13 우리가 그렇게 사랑으로 해야 하는 신학적 이유와 모델(예수) 제시, 권면

   1) 15:01-06 1차 권면과 설명 : 그리스도처럼 타인을 기쁘게 하라

   2) 15:07-13 2차 권면과 설명 : 그리스도처럼 서로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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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 크게 세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음(14:1-12)

1) 3절 결국 하나님이 그 모두를 받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셨는데 왜 네가 못 받아들이는가?라고 말하면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 6절 두 그룹 모두 행동을 할 때 주를 위해서 합니다. 다른 의도(개인적 욕망과 욕심 등)가  아니라 주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것으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3) 10-12절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심판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주의 자리에 올라 심판자로, 주의 뜻을 좀 안다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럼 악에 대해 조금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고 판단하며 실행할 수 있지만, 내가 심판자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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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21; 13:8-10에서 사랑의 원리를 중요하게 말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도 결국 로마교회 공동체 안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사랑의 원리를 통해서임을 기초로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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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해

(이 부분과 아래 팁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이진섭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갈등에 직접 필요한 답을 주고 나서(14:1-12), 이제 13-23절에서 그와 관련된 세밀한 권면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런 권면의 중심에는 12장 이후 계속 중요하게 생각했던 (12:9-21; 13:8-10) ‘사랑’의 원리가 녹아 있습니다(15절). 이 권면은 네 번에 걸쳐 진행됩니다. 첫째는 다른 신자를 함부로 판단하여 어렵게 하지 말라는 점입니다(13-15절). 각 사람은 자기 신앙의 소신을 갖고 판단합니다(14절). 음식 문제로 상대 마음에 상처를 주면 사랑으로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15절). 따라서 상대를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고 권합니다(13절). 둘째는 좋다는 일이 결국 비방거리가 되게 하지 말라는 점입니다(16-18절).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기에(17-18절), 좋은 일을 가지고 장애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16절). 셋째는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않도록 하라는 점입니다(19-21절). 음식 자체는 어느 것을 먹어도 되지만(20a절), 먹는 일로 형제를 넘어뜨리게 되면 좋지 않다고 합니다(19-20a,21절). 넷째는 결국 각 자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믿음으로 서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22-23절).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 Tip

14:13-23 바울이 이 문단에서 누구를 향해 권면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믿음이 약한 자’를 염두에 둔 것 같은 표현이 있는가 하면(예를 들어, 4:23), ‘믿음이 있다면서 비판하는 자’를 고려한 듯한 표현이 있다(예를 들어, 4:13b,15,21). 또한 ‘서로’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양쪽 모두를 생각한 듯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논조는 ‘믿음이 있다면서 비판하는 자’를 향해 주요 논지를 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14:20 ‘하나님이 이룩해 놓으신 것’은 원어를 직역하면 ‘하나님의 일’이다. 아마도 이 표현은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듯하다.

14:23 ‘믿음에 근거해서 한 것’과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란 표현은 모두 하박국 2:4에서 인용한 ‘에크 피스테오스’를 번역한 말이다. 바울은 먹는 것을 판별하는 문제도 결국 ‘믿음의 원리’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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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5절 형제에게 걸림이 되는 행동을 삼가고 사랑으로 행하라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안다면 비판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는 아예 서로에게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않도록 주의하라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곧 믿음의 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니) 배우고 알고 확신하는 가운데 스스로 속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속되게 여기니까 그 사람에게만 속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여 구원한 형제를 음식 문제로 망하게 하면 이는 결국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니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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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사도는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후에 하나님께서 선하게 만드신 것을 우리가 악하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된 지식과 죄악이 그러한 것들을 자꾸 오염시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연약하여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음식에 대해서도 믿음이 강하고 약한 자가 있다는 것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 속에서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 모두 삶(행동)의 근거는 사랑에 기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하셔서 이루신 일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 곧 사랑으로 행하는 백성으로 재창조(거듭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새 백성 삼으시고 대속한 형제를 다시 음식등의 문제로 망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논쟁하고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일은 사랑하며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됩니다. 결국 그것은 공동체의 지체의 원리에서나 사랑의 원리에서나 모두 형제를 향하여 이러한 문제들로 비판해서는 안되는 행동입니다. 더 나아가 아예 이러한 걸림이나 부딪힘이 되는 것들을 형제 앞에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는 믿음이 강한 자 뿐 아니라 약한 자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서로에게 적용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나의 약함이, 나의 강함이 형제를 사랑하는 데로 가야지, 오히려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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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행하라(15절)는 말은 결국 믿음(의 법)으로 행하라(23절)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믿음의 법은 불의한 우리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백성,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신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우리의 삶의 모든 동기는 사랑에 기인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형제를 비판(비방, 비난)하지 않고 사랑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성과 속에 대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형제와 교회 공동체가 주 안에서 형제요, 주님의 몸된 공동체임을 알고서 은사를 따라 사랑으로 섬겨가며 살고, 세상에서는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면 살아가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거듭나고 의롭게된 우리의 정체성을 알고 확신한다면 이제 우리는 새 사람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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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절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라

나는 옳다고 생각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형제에게 비방을 받을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법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먹는거나 마시는 것을 가지고 가네 못가네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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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과정과 결과까지 선해야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동기와 과정과 결과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선하지 않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못 알고 이런 사소한 문제(음식이나 날에 대한 논쟁)로 서로 비판하고 비방하다가 넘어지게 하는 것들은 결국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넘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입출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그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거룩에 대한 기준도 가지고 있고, 약속과 선택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의 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잘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일을 가지고 서로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법(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으로 사랑의 아들의 나라의 새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골 1:13-14) 이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모습이 의의 삶, 평강의 삶, 희락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서로 용납하며 섬기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평강을 누리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인도하시니 공동체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요약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의 삶, 곧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는 자의 삶이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드리는 영적 예배) 결국은 사람들에게도 칭찬 곧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공동체 내 외부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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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하면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결국 상처를 주고 성도를 넘어지게 하고 교회를 분란케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비방과 비난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과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우리 신앙과 삶의 기준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사소한 문제들을 가지고 성도를 정죄하고 비난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임재 안에 이루어지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됩니다. 부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과 삶의 모습은 무엇인지 날마다 우리의 언행심사를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추고 재고하고 묵상하고 고민하면서 결국은 사랑과 믿음으로 행할 수 있길 힘쓰며 그런 지혜와 능력을 성령을 통해 공급받고 인도받을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민하고 싸우고 있는 것이 사소하고 불필요한 논쟁으로 인한 것이라면 속히 털고 용납과 존중과 배려로 세우고 회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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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절 비본질적인 일로 하나님의 일(교회 공동체)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새 백성이 삶의 동기는 사랑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음식 문제로 하나님의 사업(일을 통해 세워진 교회 공동체로도 생각할 수 있다)을 무너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물이 다 깨끗하지만 거리낌이 있는 것이라면 악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지 형제를 거리끼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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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음식 문제가 아무리 설명하고 종용해도 납득하지 않고 수용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이들이 있다면 그 형제를 살리고 세우고 공동체의 분열을 막는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아예 고기와 포도주등을 마지지 말아서 형제들에게 거리낌이 없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강한 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위해 아낌없이 한없이 끝까지 양보하고 배려하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강자 편에서 이렇게까지 양보한다면 약자가 고마워하고 자신의 약함이 형제의 누림을 방해한다고 미안해 한다면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런 약자의 믿음의 자라기까지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믿음의 자란다면 혹여 깨닫고 감사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자람이 더디기에 강자 입장에서는 양보하고 배려하기가 그래서 덕을 세우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강자가 먼저 양보와 배려로 덕을 세우는 편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절대적으로 우선해야 합니다. - 북미간의 핵협상이나 남북의 관계에서도 한미가 강자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약자에게 계속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보다는 강자의 입장에서 덕을 세우는 일이 무엇인지 배려와 용납과 넉넉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들에서 보면 약자에게 일방적인 배려를 요구하고 강자는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될 수 밖에 없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어렵게 됩니다. 

음식의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고 다투게 되면서 서로 비방과 비난을 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베푸사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새 백성을 창조하여 세우신 공동체가 분열되고 무너지는 데까지 간다면 이는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니 속히 이러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 중한지 알아서 거리끼는 일이 없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혹여라도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덕을 세우고 역시나 사랑과 믿음으로 행해야 함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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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회의나, 사역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가정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언행이 덕을 세우지 못하고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강약의 차이를 또한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많은 다툼이 있습니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 보면 정말 사소한 문제일 뿐 본질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유익이 없는 일을 자신의 생각과 아집을 강요하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이제 우리 삶의 지혜는 그 근본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지식,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는 지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본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혜가 결국 사랑과 믿음으로 행하고 살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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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3절 믿음(의 법)으로 우리가 새롭게 되었음을 확신하며 살아라

자신이 가진 믿음의 분량을 따라 살아가는데 스스로 가진 기준이 결국 자신을 정죄하게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때 자신을 정죄하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심하고 먹는 사람은 스스로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이 이제 믿음(의 법)을 따라 새롭게 된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결국 여전히 죄아래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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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자기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출처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법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약속과 선택을 통해서 주시는 것이기에 앞서 믿음의 강약 곧 분량의 차이가 있고, 또 자라가야 하는 것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믿음이 많고 적다고 하는 것을 비난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적절하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결국 그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서 뭐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근거한 것이 아닌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3절의 ‘믿음’은 로마서에서 세 가지로 쓰인 믿음의 용례중에서 ‘에크 피스테오스’로 쓰인 표현입니다. 결국 ‘믿음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결국 14장 전체의 논쟁은 우리가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새 백성성되었기에 이것을 근거로 해서 믿는 자 곧 새 백성라면 당연히 나타나야 할 삶의 자세들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있고, 이전에 정죄하던 데에서 벗어나서 믿음으로 살게 되어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의심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다시 공로주의나 율법주의등 이전에 율법이 생명을 주고 살리는 법이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던 이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그래서 믿음의 법으로 하지 않기에 여전히 정죋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22-23절은 바울사도가 앞서 논의하고 설명해 온 복음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이 논쟁은 결국 사람들의 신앙의 내용과 삶은 죄와 사망의 법아래에 있느냐 믿음의 법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야 할 삶에 있어 하나님이 기뻐하실 영적 예배는 우리가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새 백성이 된 것을 알고 믿고 따르는 살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사랑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산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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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게 하여 주셨으니 이제 우리는 새 백성에 맞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의 내용들은 결국 주님의 나라를 세우고, 주님의 몸된 공동체를 온전하게 세우며,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며,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랑과 믿음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지금 많이 곁길로 가고, 너무도 멀리 가버린 우리의 신앙이 교회의 분열과 관계의 파괴 위기에 서게하고, 세상의 비난과 더불어 신앙의 존립위기를 맡게 된 결과를 낳았다면 그 믿음의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복음과 내가 소유한 나의 믿음이 바른 것이고 그 출처가 무엇이며 그 분량이 어느정도인지 점검하고 이 믿음의 나의 언행심사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우리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 있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감히 처방과 처신을 지혜롭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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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주께서 성속의 기준됨을 잊지 않길 원하오며

공동체안에서 행동의 동인과 내용과 결과가

사랑과 믿음으로 행할 수 있길 또한 원합니다. 

선하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일지라도

그것을 행함에는 덕을 세우고 

화평케 되는 결과가 나오도록 지혜롭게 처신하기 원합니다.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이 없게

무엇이 중한지 아는 지혜도 허락해 주시옵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삶이길 원합니다. 

형제를 거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기꺼이 배려하고 용납하고 절제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 원합니다. 

모든 언행심사가

사랑과 믿음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믿음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화평의 도구로 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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