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1:01-16> 평화의 왕이 오시리라

by 웃는사람 posted Jul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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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01-16> 평화의 왕이 오시리라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남은 자의 귀환에 대한 예언에 이어서 마침내 다윗의 위를 계승하며 여호와의 영에 다라 통치할 새로운 왕이 오시면 공의와 겸손과 성실로 다스리는 나라, 그래서 지상에 실현될 평화의 시대를 노래합니다. 민족들이 평화의 왕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에게 찾아와 그의 판단을 구하고, 세상에 흩어진 남은 자들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으로 묘사하고, 남북 왕조가 반목과 분쟁의 역사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다윗 왕조를 회복하게 될 것을 내다봅니다. 


# 다윗의 위를 계승한 평화의 왕이 메시아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약속대로 공평과 정의와 성실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인 줄 믿으며, 그 나라는 샬롬(평화)이 회복된 나라이며, 메시아를 중심으로 열방 가운데 흩어진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세우는 나라입니다. 


# 1-5절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와 정직과 성실의 나라입니다. 

잘려진 이새의 그루터기에 남은 줄기와 뿌리에서 한 싹이 나고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 왕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부분까지 살펴 공의로 심판하고, 정직으로 판단하며, 그의 말씀이 악인을 심판하고, 공의와 성실로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

이제 오실 왕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왕이시지만 단순한 세습 왕권이 아닌 전적으로 여호와의 주도로 세워지는 왕이십니다. 곧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는 왕인데 통치에 필요한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그리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겸비된 왕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시며 또한 통치하시는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왕들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여 재판과 통치와 판단이 굽어지는 일들 없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바로보고 판단하며, 무엇보다 여호와의 계획을 알고 통치하는 왕이십니다. 당대 아하스 왕은 눈에 보이는 위기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철저하게 시이라와 애굽의 위기를 정치적으로 파악하여 해결책을 모색하여 하며 정작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나오는 통치자는 현실 이면의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파악하는 왕이십니다. 

무엇보다 이 왕은 공의와 정직으로 통치하는 왕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소송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희생당해 온 때에 하나님은 이들(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이방인)에게 각별한 관심을 요구하시고 새 왕은 기존 왕들과는 달리 이들을 도와주는 통치자입니다. 그래서 힘과 권력이 아니라 예언자의 말(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을 따라 통치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강림하심으로 편결하고 통치하는 왕입니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왕, 여호와의 영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통치하는 왕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이제 몸된 교회요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이 땅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통치권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공평, 정의, 성실, 정직으로 살아가고, 무엇보다 우리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바로 순종하며 주님의 뜻하신 일을 돕고 섬기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오늘도 사랑으로 다스리시며 공평과 정직과 성실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따라 우리 삶의 자리에서도 이와 같은 열매로 주께 영광된 그 길로 즐거이 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 6-9절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여호와의 영에 의존하는 평화의 왕이 통치하는 때에는 사람과 사람 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까지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샬롬이 완전히 현실화 됩니다. 이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습니다. 

*

메시아의 공의로운 통치는 사회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의 정의와 신실함은 자연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다. 인간 사회에서 불의와 불법이 사라지고 평화가 회복되는 것처럼 자연계에도 폭력과 살인이 사라지고 평화가 회복됩니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이며 살았지만 평화의 시대에는 모든 피조물이 화목하게 더불어 살아갑니다. 여기에 묘사된 우주적인 평화는 이상적인 과거로의 돌아감은 아닙니다. 피조물간의 완전한 평화적 공존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9절)에 근거한 종말론적 사건에 속합니다(cf. 호 2:20). 여호와께 속한 자의 의로운 통치가 모든 종류의 적대적 관계를 종식시킵니다. 사람과 뱀 사이의 적대관계(창 3:15; cf. 9:2-3)가 해소되고 죄로 파괴된 창조의 원질서가 다시 회복됩니다. 

땅 위에서 이루어질 샬롬의 전제조건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역사와 자연계에 평화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물이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의 거룩한 산(시온/예루살렘)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 있기에(2:3) 나쁜 짓을 행하거나 패역한 행위를 범하지 않습니다(65:25b). 의로운 통치자가 여호와의 가르침에 일치하여 공평하게 다스리는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의 의지를 알고 이를 인정하기에, 그곳에는 더 이상 불의도 다툼도 싸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2:4).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성령님을 아는 지식 모두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충만하게 알아야 할 지식입니다. 이 앎은 단순한 지적 앎을 넘어서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고백되고 경험되고 적용되고 실천되어야 할 앎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세상과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거룩한 백성이 샬롬을 이뤄가는 삶의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 주님이 꿈꾸시면서 그토록 이루시기 원하는 나라입니다. 이미 이루시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 우리를 부르사 동행, 동역하게 하시니 날마다 즐거이 또한 겸손히 순종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 10-16절 하나님의 나라는 열방에서 모은 자들로 주의 백성 삼으시는 나라입니다. 

그 날에는 여호와의 영에 의존한 왕이 만민의 기치(깃발)로 설 것입니다. 그래서 열방이 그에게로 와서 그의 판단을 구할 것입니다. 또한 주께서는 다시 그의 손을 펴서 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처럼 행하실 것입니다(11-12절, 15-16절). 남북왕조도 반목과 분쟁의 역사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다윗왕조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13-14절). 

*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메시아의 통치에 모든 민족이 참여합니다. 민족들은 자신들의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메시아를 찾아와서 그에게 판단을 구합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재판하는 왕-메시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서 분쟁의 공평한 심판자를 찾습니다. 왕-메시아는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지 않고 정의와 신실함으로 통치하기에 민족들은 자발적으로 그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합니다. 

이전에 심판을 위해 손을 들어 이스라엘을 쳐 흩어지게 하셨던 여호와께서 앗수르와 애굽을 포함하여 온 세상(사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모으기 위해 손을 드십니다. 앗수르, 애굽, 바드로스, 구스, 엘람, 시날, 하맛, 바다 섬들 모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이며 이스라엘의 심판의 도구이면서 위협했고 포로로 끌려갔던 나라들입니다. 이들 사방에서 여호와께서 남은 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올 수 없기에 여호와께서 기치를 세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미래의 구원은 흩어진 자들의 귀환뿐만 아니라 남북왕조의 화해와 통합을 그 내용으로 갖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형제애에 의하여 에브라임과 유다 사이의 오래된 갈등과 대립이 극복됩니다. 에브라임의 질투는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질투를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뒤늦게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 안에 들어온 예루살렘 성전의 우월성과 특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유다를 괴롭혔던 요인들이 제거됩니다. 에브라임이 유다에 대하여 더 이상 질투하지 않는 것처럼 유다도 에브라임에 대하여 더 이상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14절에 언급된 나라들은 아람을 제외하고 모두 다윗이 정복한 나라입니다. 아람은 약탁행위를 중지하고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며 화친한 나라입니다. 회복된 나라는 다윗이 세운 왕국의 경계선이 회복된 나라입니다. 남북이 하나되어 다윗 왕국을 회복하기 위한 전단계로 이러한 나라들을 향해 진격합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다윗과 같은 왕이 나와서 평화와 영토가 확대되어 제2의 다윗의 통치가 이뤄질 것을 내다 봅니다. 거듭 메시야는 구약에서 다윗과 같은 인물입니다. 

절대 권력 밑에서 종노릇 하던 이스라엘이 절대 권력을 행하던 바로로부터 탈출은 정치적 현실로서는 불가능했지만 하나님은 이루어 내셨습니다. 후에 앗수르나 바벨론으로부터 유다(이스라엘)가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다면 앗수르나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위해 큰 길이 있게하셔서 출애굽때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

신앙의 경험은 현재화 가능하다. 과거의 구속사가 그냥 있는 이야기 아니라 그러한 경험이 오늘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 동력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기억하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을 때 좋은 경험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오늘 어려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은 하나의 규범입니다. 절대권력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방시키는 기본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도 이전에 이렇게 사단의 종노릇 하던 데에서 길을 만드신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주의 나라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구원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거룩한 주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되게하시고, 정의와 평화를 누리고 또한 실현하며 살아가게 하셨으니 이스라엘의 실패한 광야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승리하신 광야에서처럼 우리도 이긴 자의 길로 행하는 것이 우리를 불러 주의 백성 삼으신 우리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불러 거룩한 백성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절망적 상황에서도 약속을 이루시며

신실한 메시아를 보내사

공의와 정직과 성실로 다스리는

주의 나라 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으로 우리도 충만케 하옵소서.

그래서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이웃과,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탐욕과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여호와를 아는 바른 지식으로 충만하여

온전히 행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아래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

주의 거룩하신 통치와 인도하심 따라

온유와 겸손으로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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