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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08:01-08> 마헬살랄하스바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문자를 서판에 새기게 하고, 이를 두 증인을 통해 공증하게 하시며, 이사야의 아들을 낳으면 이 이름으로 지으라 하고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길을 버리고 앗수르를 의지하자 오히려 앗수르에 의해서 먹히게 될 것을 예언하시며 그런 중에도 당신의 백성을 향한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 1-4절 하나님께서는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반드시 행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문자를 서판에 당시 통용하는 문자로 새기게 합니다. 또한 이것을 당시에 진실한 증인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서 공증하게 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지으라고 하며 그 아들이 다 부모의 이름을 부를 때즈음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력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

‘마헬살랄하스바스’의 뜻은 ‘노략이 속히 임하고 희생이 임박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심판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 통용되는 문자로 서판에 이것을 기록하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의미도 있고, 이렇게 새겨진 이름의 뜻을 반드시 실행하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도 당시 유력한 두 세 증인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아무나 세운 것이 아니라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실행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4절에서 아이가 태어나기 1년정도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호한 상태로 있다가 결국 이름을 해석하면서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이사야와 그의 아내 여 예언자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부르라고 명령하시는 것 역시 다메섹과 사마리아의 가까운 멸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서 일차적으로 이사야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 모두 하나님의 신탁에 온 가족이 모두 쓰임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그리 녹녹치는 않는데 아직은 본격적으로 그런 예언자의 고초가 드러나진 않고 있습니다. 여하간 유다를 위협하는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일이년 안으로 가까이 왔음을 보여줍니다. 

*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나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그것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세 번씩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강력하게 징조를 보며 장차 일어날 일의 실행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아하스 왕이 그랬듯이 그렇게 징조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은 자꾸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더 끌리고 그것을 더 의뢰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말씀과 약속들, 그리고 허다한 증인들과 역사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애써 우리가 외면하고 보지 않아도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신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런 역사에 동역자로 부르셨건만 우리가 고집스럽게 우리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려고 하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 5-8a절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로 행하는 유다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시리아-에브라임에 대한 신탁 이후 이번에는 유다를 향한 신탁을 전달하십니다. 하나님의 여러가지 징조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곧 오래도록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르신과 르발리야의 아들을 더 기뻐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앗수르의 유프라테스로 대변되는 왕과 그의 위력으로 유다를 뒤덮어서 모든 골짜기와 언덕을 흘러 유다의 목까지 차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에서 유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앗수르를 택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에브라임과 다메섹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운명과 유사한 재앙을 선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세차고 큰 강물(티그리스 또는 유프라테스)인 앗수르를 불러 유다의 산야를 뒤덮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유다는 목까지 물에 잠겨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심판의 대상으로 유다 백성이 언급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불러 자신을 버린 다윗 왕조와 유다 백성을 징계하십니다. 유다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지는 않지만 거의 죽음 직전에까지 갑니다다(‘목에까지 미치리라’).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 직전에 내몰리지만 하나님의 극적인 간섭으로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는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앞서 징조 ‘임마누엘’이 아하스의 불신앙으로 구원과 심판의 이중적 의미를 갖게 된 것처럼, 앗수르도 유다에게 이중적 역할을 담당합니다. 앗수르가 유다를 위협하는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멸망시키지만(8:4), 그것이 유다에게 기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유다 역시 - 다윗 왕조(아하스)의 불순종 때문에 – 여호와에 의하여 앗수르의 심판에 떨어지게 됩니다. 정치적 계산에 의해서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르신과베가의 의도가 성취되지 못하게 합니다 - 눈 앞의 위기는 벗어나지만, 아하스는여호와께 전적으로 의존하길 거절함으로써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지 못 하리라’[7:9]) 유다에 항구적이며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택한 다른 것이 결국 도움을 요청한 유다를 삼키는 아이러니한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지만 세상은 늘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돌변하고 변합니다. 그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주님을 의뢰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늘 주님보다 더 의뢰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두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탐욕이며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분을 의뢰할 것인가? 우리를 삼키는 것을 따라 자멸할 것인가? 선택은 뻔한 일이지만 실제 삶의 자리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일상의 자리에서 늘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 8b절 하나님께서는 진노중에도 긍휼의 날개로 그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다시 임마누엘을 불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십니다. 

*

여기에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넘쳐흐르는 홍수의 경우처럼 온 땅을 뒤덮는 펼쳐진 날개의 표상도 적군의 침략을 의미할까? 또는 여호와의 보호하시는 날개를 가리킬까? 전자의 경우 앗수르의 군대가 한 번은 유다 땅을 밑에서부터 뒤덮는 홍수로, 한 번은 하늘 위에서 먹이를 노리며 덮치는 거대한 새로 묘사됩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먹이를 노리는 새처럼 앗수르가 먹이를 찾아 유다를 침략합니다. 

그러나 호칭 ‘임마누엘’은 앗수르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소망이 남아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후자의 경우 8b절은 앞 절들의 연속이 아니라 단절로 유다의 구원을 기술합니다. 어미 새가 날개를 펴서 새끼 새들을 보호하듯이 여호와께서 그 날개를 펼쳐 당신 백성을 적들로부터 지켜주십니다. 그분께서 유다 땅에 함께 하시기에(임마누엘) 앗수르의 침략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제한적이 되는 것입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의 배려와 약속과 은혜 그리고 오래참으심과 많은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멸망의 길로 치달아 징계를 받는 중에서라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다시 품어 남은 자가 있게 하십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예루살렘이 경각간에 있을 때에 앗수르의 군대들이 내부의 사정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겉은 그렇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도 그 은혜 아니면 안됩니다. 우리는 늘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행하기 보다 우리 소견에 옳은대로, 욕망과 탐욕이 이끄는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큰 뜻 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목숨을 걸고 치닫고 맙니다. 제발 우리 눈을 떠서 주를 보게하시고, 온전히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인내로 경주할 수 있는 믿음과 영적 분별력을 구합니다. 


# 거둠의 기도

심판주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시는 징조를 통한 경고를

잘 분별하고 그 뜻을 지혜롭게 깨닫는

영적 분별력과 믿음의 눈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실행된다는 것을 믿고

날마다 주의 말씀을 상고하고 

그 뜻에 합당하게 반응하게 하옵소서. 

어려움도 약속도 속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기다릴 줄 아는 

믿음도 주옵소서. 

비록 천천히 더디 주의 약속이 이루어진대도

조급하게 헛된 것을 탐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토록 의뢰한 것들이

주님의 것이 아니면 결국

우리를 자멸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옵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늘 품어 안식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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