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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07:10-25>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아하스를 향한 두 번째 신탁은 이 어려운 시기에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으로 자신이 만든 자구책을 믿고 이를 거절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임마누엘 통해 대적들이 곧 황폐해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를 이마저도 거절할 때에는 결국 심판을 통해 철저하게 멸망하게 될 것을 천명하십니다. 


# 임마누엘과 아이들의 이름 : 참고로 7-8장에 나오는 세 아이의 이름과 아하스의 에피소드가 서로 연결됩니다. 아하스를 향한 메시지가 이들의 이름을 통해 전달되고 있습니다.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마헬살랄하스바스(약탈, 노략, 희생이 임박했다)라는 이름은 결국 아하스의 반응에 따라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부정한 인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구원에 대한 기쁨, 심판에 대한 긴장이 임마누엘 앞에 보여지는 인간의 반응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이 세가지 반응이 이어져 있습니다. 


# 10-13절 임마누엘이 교만하고 부정한 자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하스에게 어떤 것이든지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구하지 않고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이사야는 이전에 사람을 괴롭히고 이제 하나님을 괴롭히느냐고 말합니다. 

어떤 징조라도 구하면 들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유사한 다른 예를 찾을 수 없는, 매우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무제한적인 요청은 아하스와의 개인적 관계보다는 다윗 왕조와 유다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과 중요성에서 기인합니다. 르신과 베가의 계획이 실패하리라는 처음 신탁(3-9절)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앗수르에 의존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아하스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윗에게 왕조의 보존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의 의도에서 다윗 왕조의 몰락을 보셨기에, 왕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탁의 진정성을, 당신의 구원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징조라도 구하면 이를 들어주겠다고 제안하십니다. 그분의 파격적 제안은 간접적으로 모든 피조세계가 그분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징조’는 지금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 말씀의 진정성(실행)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는 간접적이지만 단호하게 정치적 영역에서의 여호와의 주권을 거부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마련한 친앗수르 정책이 먹힐것이라는 계산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자구책과 눈에 보이는 나라와 왕의 도움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아하스 왕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방법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어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기만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요청하라고 하시는대도 그걸 믿지 못하고 거절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성이 나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복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그랬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가 그랬으며,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도 그랬습니다. 부정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게 된데는 죄 때문이고 이 죄는 곧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니어도 믿을 구석이 있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구하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이 죄인이며, 그런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죽게 될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회개하면 살겠지만 애써 외면하고 모른채하고 교만하게 굴면 결국 자멸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스알야숩 곧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이름이 승리의 소식이 될지, 패배의 소식이 될지는 지금 아하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스알야숩을 이사야와 동행시킨 하나님의 뜻은 그 이름의 존재 자체로 아하스 왕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셨다고 봅니다. 


# 14-16절 임마누엘이 택한 자들에게는 구원과 보호, 위로와 소망으로 다가옵니다

아하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가 좋고 나쁜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기도 전에 아하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해져서 대적들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합니다. 

*

주께서 보여주신 징조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생명을 낳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함께하심과 역사하심을 깨닫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조속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는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입니다. 아하스는 지금 이 총체적 국난을 나름의 외교력과 자구책을 통해서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일하시면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가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이 또한 그리 멀지 않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죄인된 인간은 죽을까 두려워하지만 그런 연약한 인간을 살리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임마누엘은 복음입니다. 모든 죄를 대속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니, 불가능한 역사를 가능케 하시는 그 일을 속히 이루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니 주께 의뢰하는 것이 가장 큰 위로와 소망과 기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주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함께하시겠다 하심은 우리로 살게하고 복되게하고 누리게 하심입니다. 그러면서 주의 일에 동참케 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로서...


# 17-25절 임마누엘이 죄인들에게는 감찰과 심판, 긴장으로 다가옵니다. 

17절에서 여호와의 심판으로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가 앗수르에 의해 위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강력한 군대를 동원해서 피할 수 없이 샅샅히 이스라엘 온  땅을 다 점령하여 사람들을 포로로 끌려가고 수치를 당하게 할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포로가 되니 이제 이 땅에는 적은 양식으로도 먹고 남을 만큼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땅은 찔레와 가시가 나서 들짐승들이나 돌아다니고 다시 경작할 수 없을만큼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아하스와 남유다와 아버지 집 곧 다윗가문이 대상이라면 남유다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모두를 포함해서 이 심판이 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도구는 애굽이나 앗수르를 통해서 심판하시되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상당수의 사람들이 죽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털이 깍이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아하스는 여호와의 말씀 곧 도움을 거절하고 앗수르를 통해서 다메섹과 에브라임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눈앞의 작은 위협을 피하기 위해 더 큰 위험을 불러온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의 포악한 침략과 노략과 약탈은 비옥하고 가치 있던 온 땅을 황폐하게 농사도 사람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더럽혀진 땅을 쉬게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죄인된 인간을 옮기시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병들고 오염되고 황폐해져 가고, 어느날 그 땅이 더이상 소출을 내지 않게 되면 인간은 자신들이 오염시킨 그 땅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

마헬살랄하스바스 곧 약탈이 입박했다는 것은 심판의 임박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임마누엘이 결정적으로는 심판을 위해 오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모든 말씀들이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행한대로 보응하시고 심판하시는 주님앞에 긴장 가운데 늘 깨어 살아가야 하는 사명도 함께 갖고 살아갑니다. 


#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헬살랄하스바스 - 우리는 어떤 아이의 이름과 함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까요? 탐욕으로 말미암은 죄악으로 두려워 하며 살아갈 것인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복음으로 오신 그 은혜에 기뻐하며 살아갈 것인지. 다가올 심판에 보응을 기억하며 긴장가운데 살아갈 것인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한 반응에 따라 이 길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그토록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뜻을 겸손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즐거이 순종하며 늘 깨어 살아갈 수 있길 빕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으로 점철되어

사망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살리사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로 살게하심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길로 행하지 않게 하옵소서. 

날마다 우리와 함께하사

영생을 살게하시고, 온전한 길로

거룩한 길로 행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우리의 삶이 행한대로 심판받는 

그 날이 속히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늘 깨어서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모든 것들

눈에 보이는 많은 유혹들

움켜쥔 탐욕의 사물들을 버리고

온전히 주만 바라며

주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주의 말씀과 함께 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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