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1-7 묻기 전에 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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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옳은 일에 재빠르게 움직이는 힘이 아니라,
칼을 뽑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여쭐 줄 아는 더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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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고치러 온 사람은 먼저 묻습니다. 보일러를 보러 온 기사도, 전기를 만지러 온 사람도 가방을 내려놓기 전에 묻습니다. 언제부터 그러셨습니까. 소리가 났습니까, 물이 샜습니까. 묻는 동안 그의 손은 가만히 있습니다. 성한 데를 뜯지도 않고 탈이 난 데를 고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멈춘 몇 분이 실은 수리의 절반입니다. 묻지 않고 바로 손을 대는 사람은 솜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급한 사람입니다. 급한 손은 멀쩡한 것을 헤집어 놓고 정작 탈이 난 자리는 지나칩니다. 오늘 본문에는 묻지 않고 손을 댄 사람들이 사십만 명 모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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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삿 20:1).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요단 건너편에서까지 왔습니다. 일제히로 옮긴 말은 직역하면 한 사람처럼입니다. 사사기를 처음부터 읽어 온 사람에게 이 장면은 낯섭니다. 이 책에서 이스라엘이 이렇게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드보라가 부를 때 지파들은 저마다 사정을 댔고, 기드온과 입다 때에는 서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칼을 빼는 보병 사십만이 한 사람처럼 섰습니다. 가나안의 병거 앞에서는 모이지 않던 백성이 동족을 치는 일에는 놀랍도록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의 이름은 여호와 앞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여호와께 드린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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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을 차례로 들어 보십시오.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3절). 내가 내 첩과 더불어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4절).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7절). 묻는 말도 있고 대답하는 말도 있고 재촉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만 건너갑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삿 1:1). 같은 백성이 같은 책의 처음과 끝에서 모였는데, 묻는 상대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 여쭙던 입이 사람에게 묻는 입이 되었습니다. 침묵을 거치지 않은 말은 아무리 많아도 소음입니다. 사십만의 소음 가운데 누구도 한 번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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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 앞에 모였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희끼리 말을 주고받는 동안 그분은 듣고 계셨습니다. 묻지 않는 백성 앞에서 하나님은 돌아서 가 버리지 않으십니다. 기다리십니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긴지는 뒷장이 보여 줍니다. 두 번 크게 지고 사만 명을 잃은 뒤에 그들이 벧엘에 올라가 저물도록 울며 금식하고 여쭐 때, 하나님은 아직 거기 계셨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삿 20:27). 묻지 않는 총회를 보시며 속으로 앓으시던 분이, 묻는 소리가 들리자 그날 곧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늦게 묻는 것이지 하나님이 늦게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묵상 앞에서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쭙기를 기다리시면서, 우리가 저질러 놓은 비극의 값까지 함께 견디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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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먼저 뺀 사람이 복음서에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는 묻지 않고 칼을 뽑아 한 사람의 귀를 베었습니다. 주님은 그 칼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마 26:52). 그 몇 시간 전 겟세마네에서 주님이 하신 일은 묻는 일이었습니다. 땀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아버지의 뜻을 여쭈셨습니다. 묻고 나서 손을 내미신 분이, 묻지 않고 손을 쓰는 우리를 대신해 그 손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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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른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들었습니다. 남쪽 하늘의 삼태성이 산 끝에 걸리는지, 첫닭이 어느 때 우는지로 날이 새는 때를 알았습니다. 모를 심는 날에는 개구리 울음을 들었다고 합니다. 드르륵드르륵 느긋하게 울면 아직 이르고, 딱딱딱딱 급하게 울면 그제야 일손을 멈추었습니다. 때를 아는 지혜란 부지런함이 아니라 손을 대기 전에 듣는 귀였습니다. 묵상이 기르는 것이 바로 그 귀입니다. 결정을 다 해 놓고 도장만 받으러 가는 기도가 아니라, 이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여쭙는 기도입니다. 한국교회는 옳은 일을 한다는 확신으로 너무 빨리 편을 가르고 너무 빨리 판결해 왔습니다. 가정에서 식구들이 한 사람을 두고 한편이 될 때, 일터에서 모두가 한 사람을 탓하며 서둘러 결론을 내려 할 때, 조금 더 알아보자고 말하는 한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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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러 온 사람의 손이 가방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그 몇 분을 기억하십시오. 그 멈춘 시간이 집을 살립니다. 오늘 묵상하시는 여러분의 손도 칼을 뽑기 전에 한 번 멈추고, 그 멈춘 자리에서 먼저 여쭙는 입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떠나지 않고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물음을 기다리고 계시니, 묻는 이에게 때를 아는 지혜를 주시는 주님의 평화가 오늘 여러분의 집과 일터에 머물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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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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