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1-21 떡 한 덩이

by 평화의길벗 posted Sep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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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8:1-21 떡 한 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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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이기는 법을 배워 가는 일이 아니라, 이긴 다음에도 그 떡을 누가 주셨는지 잊지 않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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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문에는 떡이 하나 나왔습니다. 미디안 병사가 꾼 꿈속에서 보리떡 한 덩어리가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먹던 거친 떡, 아무도 셈에 넣지 않던 그 한 덩이가 십삼만 대군의 장막을 통째로 엎는 그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떡이 나옵니다. 같은 낱말인데 놓인 자리가 다릅니다. 어제의 떡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표징이었고, 오늘의 떡은 사람이 구하다가 끝내 거절당한 한 끼입니다.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같은 말이 이렇게 다른 무게로 놓이는 것을 보며, 오늘 이 말씀을 펴 드신 모든 분의 하루에도 그 떡의 자리를 분별하는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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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났는데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이 요단을 건넙니다.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삿 8:4). 이 한 마디에 그들의 형편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밤새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쫓아 내려왔고 이제는 강까지 건넜습니다. 이긴 군대이지만 배는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숙곳 사람들에게 청합니다.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삿 8:5). 군량을 대라는 것도 아니고 무기를 내놓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치 끼니, 떡 한 덩이입니다. 그런데 숙곳은 그 청을 잘라 거절합니다. 조금 더 올라간 브누엘도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형제가 지쳐 손을 내밀었는데 두 성읍이 나란히 그 손을 못 본 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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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절보다 먼저 눈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자기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일곱 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너와 함께한 백성"이라 부르셨습니다. 곁에 나란히 선 동료라는 뜻입니다.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들은 기드온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드온은 "나를 따르는 백성"이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내 발에 있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동역자로 붙여 주신 삼백 명이 어느새 내 발치를 따라다니는 부하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묵상은 늘 낱말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게 합니다. 부르는 말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서 무엇인가 이미 기울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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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기는 앞 대목에서 이미 보입니다. 에브라임이 거세게 항의하자 기드온은 놀랍도록 지혜롭게 응대합니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삿 8:2). 끝물 포도는 제대로 거둔 수확이고 맏물 포도는 힘들이지 않고 주워 모은 것이니, 당신들이 뒤에 거둔 공이 내가 앞서 세운 공보다 크다는 말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노여움이 풀립니다. 다툼을 이렇게 가라앉힐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입이 숙곳을 향해서는 들가시로 살을 찢겠다고 합니다. 힘 있는 큰 지파 앞에서는 한껏 몸을 낮추고 변방의 작은 성읍 앞에서는 곧바로 칼을 듭니다. 앞의 낮춤이 지혜였는지 계산이었는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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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대목에서 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곱 장에는 내려가라, 시험하라, 두렵거든 내려가서 들으라 하시는 음성이 계속 들렸습니다. 그런데 요단을 건넌 뒤로는 그 음성이 단 한 번도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명령도 없고 만류도 없습니다. 묻지 않았으니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여전히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엄숙히 맹세하지만(삿 8:19), 그 이름은 이제 자기 결단을 정당화하는 자리에 놓입니다. 말씀이 빠진 그 자리에 슬그머니 사람의 판단이 들어앉는 것, 그것이 이 장에서 일어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서운 변화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묵상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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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곳과 브누엘이 잘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같은 민족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들은 승산을 따졌습니다. 아직 네 손에 잡히지도 않은 왕들 때문에 우리가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형제의 피곤을 저울에 올린 것입니다. 이 대목의 묵상이 편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이 기드온의 잔혹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돌아온 그는 소년을 심문해 일흔일곱 명의 명단을 받아 내고, 들가시와 찔레로 장로들을 징벌하고, 망대를 헐고 성읍 사람들을 죽입니다. 사사기에서 자기 동족을 죽인 첫 사사가 이렇게 생겨납니다. 성경이 이 대목에서 그를 여룹바알이 아니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삿 8:13)이라 부르는 것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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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죽은 숙곳의 장로가 일흔 명이었다는 사실도 그냥 지나칠 숫자가 아닙니다. 훗날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형제 일흔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입니다(삿 9:5). 아버지가 놓은 돌 위에서 아들이 같은 일을 합니다. 이긴 다음 날의 선택이 집안에 그렇게 오래 남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합니까. 광야에서 주님도 떡 앞에 서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말에 그분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답하셨고, 훗날 손수 떡을 떼어 오천 명을 먹이셨고, 마지막 밤에는 자기 몸을 떡이라 하시며 떼어 나누셨습니다. 떡을 거절당했을 때 칼을 든 사람과 스스로 떡이 되어 주신 분이 여기서 갈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힘은 떡을 빼앗는 데서 나오지 않고 떡이 되어 주는 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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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조심할 자리도 그곳입니다. 어려운 일을 함께 치르고 나면 반드시 누가 더 수고했는가라는 셈이 따라오고, 도와주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 명단을 적어 두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숙곳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서게 됩니다. 어제는 떡 한 덩이가 굴러 들어와 장막을 엎었고, 오늘은 그 한 덩이를 얻지 못해 사람이 무너집니다. 같은 떡인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는 사람이 구했습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이루시거든 그 떡을 누가 주셨는지 먼저 떠올리시고, 무엇을 거절당하시거든 그 자리에서 칼을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들린 것이 칼이 아니라 나누어 줄 떡이 되는 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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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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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CO2oa3gUD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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